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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에게 복음을: 필리핀 -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요셉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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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01 ㅣ No.196

[만민에게 복음을 - 필리핀]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요셉 성인


페페 씨와 그의 딸 조이(당시 9세)를 만난 것은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의 ‘카리타스 마닐라’에서 에이즈 사목을 시작할 때입니다. 페페 씨는 에이즈 감염자인 막내딸 조이와 함께 ‘감염자들을 위한 정기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이가 사는 집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마닐라 외곽지역이었는데, 그는 다른 이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여러 준비작업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른 에이즈 감염자들을 돕겠다며 봉사일을 자청하였습니다.

페페 씨에게는 조이 말고도 두 딸과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조이와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자매입니다.

조이는 엄마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었는데, 조이의 엄마는 조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에이즈의 합병증인 기회감염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에이즈 감염자 가족의 삶과 신앙

에이즈 감염자들을 위한 정기모임은 가족들도 초대해서 함께합니다. 모임의 목적은 그들이 감염자로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흔히 자신들이 에이즈 바이러스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많은 경우에는 가족들에게도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 외로움과 편견 때문에 죽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이해받는 것입니다.

나눔과 함께 이분들이 자신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각종 치유 프로그램도 함께 하곤 합니다. 모임 때마다 페페 씨는 조이를 데리고 참석하곤 했습니다.

조이는 같은 또래의 어린이가 없어 지루할 터인데도 자기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때로는 노래와 춤으로 모든 이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페페 씨는 마을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모임이 있을 때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는 이유는, 다른 감염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 아울러 어려운 상황일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에이즈 병동에 입원해 있는 외로운 환자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같은 이유로 페페 씨는 대중 앞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가족으로서 자신의 삶을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페페 씨가 마닐라의 한 성당에서 에이즈의 날 행사 때 감염자 가족을 대표해서 나누었던 그의 삶과 신앙의 증언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안나의 선택

페페와 그의 아내 안나는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운 그들에게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부부간의 금실이 좋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교육과 부양 문제로 종종 말다툼을 하곤 했습니다.

결국 안나는 주변의 이웃처럼 2년 계약 간병인 자격으로 중동에 취업신청을 했고, 드디어 아랍 에미리트 행 비자를 받았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항공권과 직업 소개비용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살던 집과 토지를 팔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안나는 1989년 2월 5일 가족의 희망찬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아랍 에미리트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병인으로서 그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나는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불법 노동자의 길을 택했고 밤낮으로 상점 점원이나 계산원 따위의 일들을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희망은 악몽으로

불법 노동자로서 안나는 특별수당 없이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것 말고도 종종 고용주들로부터 온갖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1993년 어느 날 그녀는 한 고용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임신한 채 결국 필리핀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안나가 임신한 상태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진심으로 그녀와 배 속의 아기를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는 깊은 슬픔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며칠 뒤 타블로이드 신문에 해외 노동자 가운데 3명이 에이즈 감염으로 송환되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안나라는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신문기사 때문에 안나는 몇 달 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그녀의 친척, 이웃친구들이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페페와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온 가족은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와 잘못된 상식으로 사람들은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쉽게 에이즈에 감염된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 두려움과 함께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온갖 편견과 차별은 감염자들을 더없이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조이의 출생

안나와 페페는 여러 차례 혈액 검사를 받아야 했고 검사 결과 안나가 감염자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안나는 임신한 몸이라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생활고 때문에 보험 외판원 일을 하였고 어느 날조이가 태어났습니다.

출산 후 안나는 끊임없는 두통과 독감에 시달렸습니다. 안나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그녀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희망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그녀는 식욕을 잃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페페와 아이들은 그녀가 점점 죽어간다는 것을 알았고, 페페는 그녀의 죽음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받아들였습니다. 안나는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임종을 맞이합니다.


딸이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딸

조이는 아버지와 그녀의 다른 형제자매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잘 자랐습니다. 밝고 영리한 조이는 자라면서 온 가족, 특히 아버지인 페페를 자랑스럽게 했습니다.

하지만 조이 역시 에이즈 감염으로 결핵과 폐렴을 앓아 자주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아랍인의 외모 때문에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건강상의 이유로 자주 결석을 해야 했지만 조이는 공부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조이의 꿈은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조이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조이는 열세 살이 되던 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 성인은 마리아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요셉 성인은 아내인 마리아를 사랑하셨고 예수님을 자신의 친자식으로 키우고 사랑하셨습니다.

페페에게 사랑하는 아내 안나가 겪었던 폭력과 사회의 편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고통이었지만, 그는 사랑으로 아내를 감싸고 임종할 때까지 돌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아닌 조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여 아내를 사랑했듯이 진심을 다해 키웠습니다.

페페는 자신이 겪었던 불이익과 불행을 오히려 사랑으로 되돌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서 요셉 성인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의 소중함과 아울러 고통 속에서 함께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장은열 골룸바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로 필리핀(1990-2008년)과 미얀마(2008-2012년)에서 지역 공동체, 에이즈 사목 등의 활동을 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장은열 골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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