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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순교, 지식과 삶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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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368

[레지오 영성] 순교, 지식과 삶의 거리

 

 

지난 달 한국 가톨릭교회는 참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였습니다.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아시아 청년대회를 치렀고, 이 대회에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큰 기쁨이었던 것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께서 복자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복자위에 오르신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며 “과거 박해시대에 순교자들은 어떻게 신앙에 목숨을 걸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 시대보다 성서를 보기도 어려웠고 미사와 성사도 참여할 수 없었을 텐데… 수많은 영성서적과 교육을 받고 있지만 왜 선조들의 신앙의 모습을 따라가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당에 있을 때 순교자 성월이 되면 신자들에게 박해시대에 살았다면 이러한 순교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몇 분만 손을 들고 다들 고개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있어 신앙이 몇 번째 순서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야기 나누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왜 우리의 신앙은 순교자들처럼 성장하지 못 할까요?

 

 

지식보다 신앙에 내 삶을 투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

 

사실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신앙에 내 삶을 얼마나 투신하는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단지 알고만 있는 것으로서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식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을 알지만 세상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그것을 향하여 자신을 던집니다. 

 

그러다보니 부유함이 우상시되고, 내면적 아름다움보다 외면적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신앙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고 자신을 투신할 때, 우리는 신앙의 기쁨을 느끼고, 은총 속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신앙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학식이 매우 뛰어난 한 신부님이 시골 본당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당 지역이 너무 외지인지라 어르신들이 매우 많았고, 그 중에서는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도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어르신들이 신앙 교리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체조배를 하며 그 답을 찾으려고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먼저 와있는 한 할머니가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한글도 모르시는데 밑에서 무엇을 꺼내 한참 보고 있기에 무엇을 보나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할머니의 등 너머로 보니 여러 색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속으로 ‘아니, 손자들에게 색종이를 접어주시려면 집에서 하실 일이지, 왜 성당에 와서 그러시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체조배가 끝난 후에 나가시는 할머니를 붙잡아 “할머니, 성체조배하러 와서 색종이 가지고 뭐 하시는 거예요?”하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부끄러운 듯 웃으며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는 글을 모르다보니 미사 때 복음과 강론을 열심히 기억하려고 해요. 그래서 신부님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빨간색을 꺼내놓고, 부활을 이야기할 때는 하얀색을 꺼내놓아요. 이렇게 하고나서 나중에 다시 성체조배할 때 그 색종이를 꺼내놓고 묵상을 해요.”

 

그 신부님은 할머니의 미소를 보며 자신의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답니다. 오히려 신앙의 지식은 그 신부님이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그 어르신들이 더 하느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을 행할 때 더 큰 은총임을 체험해

 

신앙이란 이렇게 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삶이 거기에 정향(定向) 되어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원합니다. 이 은총은 신앙을 살아갈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복자위에 오르신 124위의 순교자들은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보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교육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분들은 신앙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복자-복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우리는 아는 것을 행할 때 더 큰 은총임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9월호, 김태현 마태오(신부, 인천교구 사목국장, 인천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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