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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에게 복음을: 파푸아뉴기니 - 고래 배 속에서 요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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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2 ㅣ No.192

[만민에게 복음을 - 파푸아뉴기니] 고래 배 속에서 요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날은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공소지역, 모기에 뜯기며 웅덩이 물로 샤워를 한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며 사방이 탁 트인 초가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한 뒤 다시 본당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에는 힘이 없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밭을 지나니 이젠 자갈길이다. “차를 이 근처에 대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한 번 시작한 불평은 줄어들지 않고 투덜투덜했다. “조금만 더 가자. 저기 내 차가 보인다.” 그렇게 힘들게 차가 있는 곳까지 왔다.

시내에서 본당까지 포장도로로 세 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로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내 차는 온갖 먼지와 진흙으로 뒤덮인다. 강을 건너려면 보트를 타고 다시 한 시간 정도 더 가야 하기에, 강기슭에 차를 세워둔다.

본당 사제관에 주차할 수 있다면 가끔 세차라도 할 텐데, 그럴 수 없어 내 차는 언제나 지저분하다. 그렇게 흙먼지, 진흙범벅인 차를 다른 공소 신자 집에 세워두고 이튿날 돌아와 보니 깨끗하게 세차가 되어있다.

수도가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면서 동네 아래 흐르는 시냇물을 떠오고, 작은 코코넛 바가지로 물을 뿌려가며 그 고운 손으로 차를 닦았을 것을 생각하니, 그냥 눈물이 핑 돌면서 피로가 싹 가신다. 길 위에서 느꼈던 그 뜨거운 햇살도 잊혔다. 불평, 투덜거림이 부끄러웠다.

공소 미사 뒤 신자 한 분이 한 포대 가득 넣어준 망고를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준다. 얘가 닦았는지 쟤가 닦았는지 모르지만, 그냥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요나 예언자의 이야기에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 내일 강론을 준비하려고 성경을 펼쳐본다. 요나 예언자,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왜 이렇게 일이 돌아가도록 하십니까? 이런 죄인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요. 아니 그래 결국 용서하실 일을 나에게 힘든 발걸음을 하게 하셨습니까? 이런 모순투성이인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요나 예언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아니 도대체 어수룩한 제 말솜씨로, 이들의 풍습을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전하는 당신 복음이 과연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신 일, 당신 뜻대로 당신 힘으로 이루어질 텐데, 제가 하는 것이 도움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하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요, 당신 일을 하는 것인데, 그럼 조금 도와주셔야죠.

이거야 원, 저기 저 보트를 타고 당신 말씀을 전하려고 세 시간 걸려서 공소에 갔건만, 비가 내려서 미사에 몇 명 나오지도 않고, 저번에 저쪽 공소에서는 보트의 모터가 고장이 나 그냥 오도 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다 가까스로 다른 카누 빌려서 밤새며 오는데 비까지 내리시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묵상이 하소연이 되어간다. 그런 요나 예언자가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접고 하느님 뜻대로 니네베로 간 것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간을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고래 배 속에서 요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때, 그곳에서 요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기에 하느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일까?

누구나 인생살이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자신의 뜻대로 되겠느냐마는, 이곳 파푸아뉴기니, 내가 사목 활동을 하는 보스문 본당(26쪽 사진)에서는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말 드물다. 시내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라 일컬어지는 200km에 이르는 도로에는 휴게소는커녕 제대로 된 주유소 하나 있지 않다. 주유소는 물론 거의 모든 현대적 기반시설, 편의시설은 모두 시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 시내에서 차로 네 시간, 보트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내 차, 내 보트가 있어 다섯 시간이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자면 하루 밤낮을 꼬박 새야 한다.) 보스문에는 조그만 구멍가게조차 없다. 아, 있긴 하다. 피터네 집에 가면 설탕을 팔고, 존 집에 가면 과자를 파는 그런 식이다.


조금이라도 협조를 해주셔야죠

많은 분이 묻는다. “아니, 그럼 뭐를 해서 먹고 살아요?” 내 대답은 간단하다. “수렵 채취!” 낚시로 고기를 잡고, 열매가 열리면 따서 먹는다. 세고라는 나무는 잘라 속을 파서 잘게 으깬 뒤 묵처럼 만들어 먹는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기,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태양열 집열판을 두고, 발전기를 돌리며, 빗물을 탱크에 받아서 쓰노라면, 혼자 전기 기술자가 되기도 하고, 배관공이 되기도 해야 한다. 어휴, 혼자 주임신부, 본당수녀, 사무장, 식복사 노릇을 하기도 바쁜데 말이다.

이러니 조그마한 일이 벌어져도 혼자 생각해 둔 시간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시내에 물건을 사러 가면서, ‘아이 정도면 들어가 저녁을 먹고, 이러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해 두었다가도, 갑자기 타이어 펑크가 나서 낑낑거리며 타이어를 갈고 나면 밤중에 도착하기도 한다.

‘음 이 정도면 본당에 3시쯤 도착하니, 빨래하고, 식사 준비하면 되겠는 걸.’ 생각했다가도, 비가 와서 보트가 도착하지 않고, 강가에서 모기에 뜯기며 남의 집 처마에서 멍하니 비가 멈추기만을, 보트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제 손빨래는 안녕이구나.’ 세탁기를 구입해 가지고 온 날 혼자 좋아서 실실 웃었는데, 두세 번 썼을까, 갑자기 고장이 난다. 먹거리가 다 떨어져서 시내에 가 장도 봐야 하고, 회의도 참석해야 하는데, 길 중간에 부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다시 돌아와야 했다. 신자 재교육을 한다고 여러 번 공지한 뒤, 강의 내용을 컴퓨터로 열심히 작업해 놓았건만, 교육 이틀 전부터 갑자기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 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협조를 해주셔야죠. 아니 협조가 아니라 망치지만 말아주셔요. 이거야 원.”

그런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 계획이 엉망이 될 때마다 하느님의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낑낑거리며 혼자 타이어를 갈고 있을 때, 지나가던 청년이 땀을 흘리며 도와준다. “신부님은 좀 쉬세요. 제가 할게요.” 하며 씩 웃는다.

부족전쟁으로 먹을 게 없어 맨밥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본 신자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날마다 생선, 민물새우, 채소며 과일을 잔뜩 들고 온다.

하느님을 알려준다며, 컴퓨터의 놀라운 기술, 현대 기술을 다루는 내 솜씨를 자랑하고자 했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로 강의를 했건만, 성당을 꽉 채운 신자들, 두세 시간의 긴 강의 속에서도 열심히 받아 적고, 손들어 질문하는 그들의 열성에 자주 놀란다.


나를 바꾸는 것은 그분의 큰 품속

고래 배 속에서 요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깜깜한 고래 배 속, 너무 어둡고, 냄새나는 그 속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 절망의 시간, 그 고통의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는 다시 하느님께 돌아간 것일까? 아니, 그 시간이 절망의 시간, 고통의 시간이었을까?

너무 크고, 너무 깜깜하여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그 큰 고기, 고래 배 속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사실은 하느님의 그 큰 품 안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뜻, 내 고집만을 움켜쥐고 어쩔 줄 모르는 그 요나를 꼭 껴안아주시는 그 따뜻함이, 그분 가슴속 내음이, 그 사랑이 요나의 고집을 버리게 한 것은 아닐까? 절망이고 고통인 줄 알았건만, 온갖 더러움으로 범벅이 된 그를, 살며시 닦아주는 그분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마치 진흙범벅이었던 내 차를 신나게 웃으며 닦아준 우리 공소 아이들처럼….

어둠인 줄 알았는데, 절망인 줄 알았는데, 그곳은 기쁨의 빛으로 환했고, 희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이들에게 해주는 말을 과연 이들이 잘 알아들을까. 말뿐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들을까.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곡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몇 번씩 고민한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 이들을 바꾸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말, 심오한 이론, 문화도 중요하지만, 내가 품고 있는 희망, 웃음, 행복이 그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요나를 회개시킨 것이, 그리고 나를 바꾸는 것이 그분의 큰 품속이었듯이 말이다.

* 현대일 루도비코 - 서울대교구 신부. 한국외방선교회 준회원으로 2008년부터 파푸아뉴기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현대일 루도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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