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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문화 비평: 세시봉, 젊음을 욕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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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0-29 ㅣ No.593

[문화 비평] 세시봉, 젊음을 욕망하다!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세시봉 가수 윤형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의 빛바랜 기억들을 흔들어놓더니, 그만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갇혔던 내 내면의 ‘어린 왕자’가 다시 살아난 듯 가슴이 환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복고바람이 불고 있다. 모든 것이 첨단인 이 시대에 웬 복고일까? 창작의 한계인지 문화의 퇴행인지 또는 중장년층의 지갑을 노린 상술인지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저마다 복고풍으로 인한 희망과 긍정을 논하기도 하고 과거로 퇴행하려는 안일함을 탓하기도 한다. 또한 그저 힘들고 고달파서 찾아온 현상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불어오는 복고 트렌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최근 들어 그 열풍은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들의 복고에 대한 열광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소셜네트워크 혁명’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스마트폰 광풍 속에 찾아온 ‘복고 신드롬’을 다만 경제위기로 말미암은 불안감으로 보기에는 중장년층의 열기가 너무도 뜨겁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열광하고 어디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첨단과 복고와의 소통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자화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젊음’을 돌려주는 ‘복고’를 욕망한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 못 다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부모님 금혼식 때 아버지는 아픈 몸을 추스르고, 있는 힘을 다하여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하며 구슬프게 이 노래를 불렀다.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말미암은 궁핍함으로 ‘젊음’은 사그라졌고, 이제 겨우 살아볼까 했는데 호호백발 노인이 되어있으니 원통하기 그지없다는 아버지의 한탄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하여 눈물이 났다.

 

누구나 젊음을 지키고 싶고 돌려받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복고는 많은 중장년과 노년에게는 더없는 위로와 즐거움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청춘합창단’ 오디션 신청자격이 52세 이상 중장년층이었다. 그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시위를 하는 듯 목소리만으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또한 60대의 세시봉의 노래를 듣다보면 마치도 ‘젊음’을 돌려받는 느낌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건강장수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늙음’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요즘 장노년층의 성형수술이 일반화되면서 효도성형이 인기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보톡스 시술을 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온갖 화려한 장식을 하고 다니는 중장년의 여성들이 마치도 “나는 아직도 젊거든….” 하면서 우기는 것 같다.

 

그러나 복고바람을 타고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만의 인생지도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개천에서 ‘용’을 찾아주는 ‘복고’를 욕망한다

 

최근 들어 방송에서 복고-오디션 열풍이 불고 있다. 대부분의 오디션 곡이 추억의 명곡으로 부상하면서 그 열기는 중장년층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디션 경쟁으로 말미암은 성공신화가 ‘악’인 ‘가난’을 물리치고 ‘선’인 ‘부’를 차지하는 전래동화의 선악구조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리얼리티가 담긴 인생역전의 감동 스토리를 더해 희열과 감동을 준다.

 

언제부턴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비관하곤 했다. 그런데 오디션 무대를 통하여 환풍기 수리공이나 껌팔이 소년이 일약 스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대중은 열광한다.

 

게다가 중장년층과 노인도 참여할 수 있는 ‘청춘합창단’, 잊혔던 세시봉의 부활, 중년의 임재범과 인순이의 저력을 과시하는 무대를 통해, 옛것이라 잊고 있던 개천에서 찬란한 불을 뿜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바라보듯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물론 그저 ‘바라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점점 바라보면서 누리는 쾌락과 즐거움에 익숙해져 있다. 최첨단 기술이 보여주는 ‘리얼’은 3차원 공간을 누리듯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무한도전’ ‘놀러와’ ‘황금어장’ ‘1박2일’ 따위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열광한다. 가상과 증강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진짜’를 욕망하는 아이러니한 이중의 심리적 욕망을 드러낸 셈이다.

 

‘복고’ 역시 ‘리얼’이다. 지난 시간을 더 극대화하여 배의 감동으로 돌려준다. 그러나 재구성하여 담아낸 첨단의 그릇은 ‘진짜처럼 느끼게 해줄 뿐’ 우리의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짜의 효과를 몇 배로 부풀려 주는 테크놀로지의 ‘이야기’에 중독된 우리는, 진짜인 나와 이웃의 이야기에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이야기보다는 진짜처럼 느끼게 해주는 리얼버라이어티에 눈물을 흘리고 환호하면서 가슴속에 묻어둔 신화 속의 ‘용’을 찾으려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는 ‘복고’를 욕망한다

 

첨단의 기능과 복고의 감성은 ‘자기애’를 강하게 자극한다. 젊은 시절 너무 가난하여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중장년층의 사람들은 이제야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한다. 소셜네트워크로 인한 블로그와 페이스북, 카카오톡이나 트위터를 통하여 ‘나’를 봐주기를 바라는 욕망이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다.

 

첨단의 기술과 함께 찾아온 복고문화 상품은 중장년층을 소비의 주역으로 만들면서 ‘자기애’를 마음껏 펼치게 해준다. 그들은 생물학적인 나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몇 살로 보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중년의 추억을 파는 상술은 최악이며 자칫 자기중독(self-holic)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복고를 통한 ‘자기애’는 잊어버린 ‘나’에 대한 보상과 집착으로 소비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소년인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자신의 육적인 모습에 갇혀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첨단 미디어는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물리적인 틀에 넣으려 한다. 결국 우리는 감각의 균형을 잃고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이 우상이 되어 내면의 ‘나’를 만나지 못한다.

 

‘자기사랑’은 채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결핍되고 집착하게 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를 보듬어 안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너는 너인 것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해!”

 

 

쿨하게 ‘안녕’이라 말하자!

 

‘잘살아보세!’ 하며 허리끈을 졸라매고 달려왔다. 그런데 전보다 부유해지긴 했어도 가슴속에 찾아드는 것은 허한 바람뿐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기타를 치고 인생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했던 세시봉 친구들이 반갑지 않으랴.

 

그저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 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고, “온종일 걸어다녀도 즐겁기만 한”(‘길가에 앉아서’, 김세환, 1974년) 그 시대가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그러나 광풍이 되어버린 ‘복고’의 그림자 속에 상실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너무도 크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자기 자리에 있을 때만 그러하다. 그러니 ‘젊음을 돌려달라.’ 애걸하기보다 쿨하게 ‘안녕’이라 말하자. 앞으로 잃을 것만 남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에 적응하는 길이 최선의 선택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분은 오로지 하느님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가까워지는 그분께 마음을 돌리자. 어차피 차비가 없어도 가야 할 종점이 아니던가?

 

* 김용은 제오르지아 - 살레시오수녀회 수녀. 뉴욕대학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지금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현대사회와 미디어’를 가르치며, 광주에 있는 ‘빛고을청소년문화의집’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세상을 감싸는 따뜻한 울림」(비전코리아), 「3S 행복트라이앵글」(위즈앤비즈)이 있다.

 

[경향잡지, 2011년 10월호, 김용은 제오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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