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세계교회ㅣ기타

만민에게 복음을: 마카오 - 이제는 마카오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06 ㅣ No.189

[만민에게 복음을 - 마카오] 이제는 마카오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1837년 6월 7일 아시아 최초의 교구 인 마카오에 어린 조선 신학생 3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1836년 12월에 자신들의 고향을 떠났으니, 무려 6개월 동안 걸어서 중국 대륙을 거쳐 이곳 마카오라는 중국 남부에 붙어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천주교와 마카오 천주교의 인연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복음 전파의 역사 상황에서 보자면 당시 마카오와 한국은 지금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마카오는 이미 아시아에서 최초의 교구로 설립될 만큼 천주교 교세가 상당한 지역이었다.

물론 이는 1557년 포르투갈이 중국 명나라로부터 당시 광동성 향산현에 속했던 마카오를 매입함으로써, 자연스레 포르투갈의 국교인 천주교가 자유롭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 당시 아시아 전교를 갈망하던 수많은 수도회와 선교회들이 저마다 이곳 마카오에 아시아 전교 기지를 세운 것이다.

이들 가운데 당시 조선에 성직자들을 파견했던 파리외방전교회도 속해있었고, 이런 연유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3명의 조선 신학생이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이처럼 마카오 교회가 박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한국교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아시아 교회의 큰형님이라는 이전의 명성이 무색하리만큼 한국교회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지금 나를 포함한 한국인 수도사제 3명과 수사 1명이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이곳 마카오에는 우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속의 신부, 수사들 외에도 다른 수도회 소속의 한국인 수사님들과 수녀님들이 더 계신다.


환락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도시

현재의 마카오 교구는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많이 노쇠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이곳에 파견된 동기를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찾을 수가 있다. 사실 마카오의 면적이 한국의 서울시 종로구 정도이기에 인구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

마카오의 현재 인구는 통계적으로는 55만 정도라고 발표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70만 정도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유동인구도 많을 뿐만 아니라, 불법체류 주민 또한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금 마카오 교회의 천주교 신자 수는 인구 대비 백분율을 적용하여 1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내가 처음 이러한 신자 수를 들었을 때, 약간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아마 한국에 계신 교우들도 마찬가지로 의아해하시지 않을까 싶다. 포르투갈의 영향력에서 거의 국교로 시작된 교회인데 왜 복음을 받아들인 교우의 수가 이렇게 미미할까라는 의구심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그것도 우월한 국력을 배경으로 들어온 종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카오는 유럽이 아닌 중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카오의 본 주민은 당연히 중국인이다. 이들에게 천주교는 강한 힘을 앞세워 들어온 서양의 종교였던 것이다.

둘째로는 턱없이 부족한 교구 사목자들의 수에 있다고 보겠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파견되어 온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 마카오에는 사제성소가 미미하다 못해 아주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근래에 들어와서 나타난 현상이다. 또한 이것은 지금의 마카오의 분위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마카오는 꽤나 유명한 도시가 되어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많은 화려한 도박장들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릴 만큼 마카오는 그야말로 환락의 대명사가 되어있다. 특히 마카오는 밤이 되면 그야말로 한눈에도 환락의 도시임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

바로 이러한 마카오의 분위기가 지금 마카오 교회가 사제성소의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인 것이다. 마카오의 경제 수입은 거의 모든 부분이 이러한 도박사업에 의존되어 있고, 그만큼 마카오의 젊은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는 곧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영혼의 나태함과 연결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마카오 카지노라는 악명하에 보지 못하는 마카오의 성스러움 역시 함께 공존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마카오에 있는 성전들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그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인구의 10퍼센트 정도의 교우들 또한 모두가 몇 대를 이어오는 신심 깊은 오래된 신앙인들이다.

현재 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줄어드는 그들의 사목자의 수를 안타까워하며 걱정을 하고 있다. 마치 목자를 잃어가는 착한 양들처럼….


이젠 한국교회가 기도할 때

이곳에 파견된 우리는 현재 바로 이들을 위해,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 안에서 살고 있다. 또한 그들과 함께 마카오 교회의 앞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명 되지 않는 주일학교 친구들과 함께 예수님을 배우고 체험하고, 그동안 사목자의 손길이 부족했던 노인들과 병자들을 더 열심히 찾아간다. 또 이들의 문화 안에 완전히 동화되려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말로 얘기하고, 나누며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 급하게 병자성사를 주려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한테 들었던 말이 정말 큰 힘이 된다. 한참 기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한국 사람임을 밝혔을 때 기사님이 했던 말이다. “한국 사람이시라고? 에이, 장난하지 마쇼. 말투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영락없이 광동사람이구만. 그렇게 한국 사람인 척하고 싶어요?”

이곳 교회를 위해, 이곳 신자들을 위해 이곳에 온 나로서는 그 어떤 칭찬보다 듣기 좋았던 말이다. 아마 그 옛날 박해를 받던 조선교회를 위해 이곳에서 조선교회로 들어갔던 서양 신부님들도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분들은 안타깝게도 생김새가 동양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서양인인지라 그런 기회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마카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우리 한국 신부들과 수사님, 수녀님들은 그분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살고 있다고 위안해 본다. 요즘 이런 걸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하던가?

새벽에 일어나 성당 문을 열고 미사를 준비하면서 늘 이곳 마카오에서 복음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많은 교우들이 순례를 오신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 그리고 이곳에 온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돌아가신 최방제 신학생의 자취를 찾아서….

그분들에게 늘 잊지 않고 부탁드리는 말이 있다. “이젠 한국교회가 마카오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이인호 베드로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 200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고 그해 8월 3일에 마카오로 파견되어 마카오 교구 성 안토니오 본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월호, 이인호 베드로]


2,17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