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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에 만난 사람: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조그라포스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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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16 ㅣ No.187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에 만난 사람]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조그라포스 대주교

“하루빨리 영적 · 신앙적으로 한 형제 되길 바랍니다”


- 정교회 한국대교구 제2대 교구장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서는 이론이나 생각 등을 살펴보는 것에 앞서, 분리되기 이전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알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첫 달을 보내는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는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하면서도 서로 갈라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이다. 일치기도 주간이 시작되는 1월 18일은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주교좌를 정한 기념일이고, 기도 주간이 끝나는 25일은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다.

일치기도 주간을 맞아 1054년 두 교회가 분리되기 이전까지 하나의 전통 아래 한길을 걸어온 정교회를 찾아 형제 교회가 생각하는 일치의 의미를 돌아보는 장을 마련한다.

“꿈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교회들이 다시, 처음부터 이어져온 그리스도교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 아현동 정교회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에서 만난 정교회 한국대교구 교구장 암브로시오스-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한국명 조성암(趙聖巖)) 대주교는 인터뷰 동안 몇 차례나 자신의 꿈을 내비쳤다. 그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순간 순간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에서는 비장함마저 전해져왔다.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을 역설하는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수없이 되뇌었다.

“하나로 이어져 내려오던 교회가 1054년 정교회와 가톨릭으로 분리되고, 16세기 이후 개신교가 분열된 후 많은 것들이 각 교회 안에서 바뀌어 내려왔습니다. 일치점을 찾기 위해서는 분열 이전 1000년 동안 면면히 내려온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기반을 두고 거기서부터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숱한 이론이나 생각 등을 살펴보는 것에 앞서 그리스도교가 분리되기 이전 하나의 교회로 이어져 내려오던 시대 실제 신앙생활의 모습을 함께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는 조그라포스 대주교의 제언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스도교가 분리되기 이전 이탈리아 로마를 비롯해 터키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안티오키아,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에 있던 5대 교회는 저마다 나름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신앙을 고백해왔습니다. 이들 교회들은 서로 동등한 가운데 첫째로 로마 교회를 인정했습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로마 교회를 비롯한 5대 교회의 동등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가운데 첫째로 로마 교회를 인정한다는 조그라포스 대주교의 설명은 일치의 길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면이 적지 않다.

“초대 교회 때를 돌아보면 교회들 안에서 로마 교회는 권력에 의한 첫째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 있어 첫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은 형제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조그라포스 대주교의 말은 갈라진 형제들을 여전히 경쟁자 정도로만 여기고 적대시까지 하는 한국 사회 풍토에 일침을 놓는 듯했다.

“최초로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회의를 보더라도 사도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베드로 사도가 아닌 야고버가 회의를 주재한 이 자리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지혜를 보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교회 역사는 형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일치를 위해 정교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력을 소개한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치운동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는 신학적 원인들에 대해 먼저 논의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나가고, 각 교회 차원에서 설교와 가르침들을 통해 일반 신자들에게 확산시켜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이러한 과정에서 사랑과 진리를 푯대로 세울 것을 힘주어 말했다. “일치를 위한 논의 자리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이득 등 사적인 유익을 생각지 않고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진리를 토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서 대화를 나누고 노력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리에서도 진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리에서 비켜선 채 자기만의 주장을 가져간다면 일치를 위한 만남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일치운동의 풍토가 척박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에 이어 애정어린 제안도 이뤄졌다.

“일치를 위한 모색이 사회활동에만 중점을 두기보다 신학적 모임에 좀 더 중심이 놓여야 합니다. 신학적 기반이 튼튼할 때 자연히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사업도 뒤따르게 됩니다.”

서로에게서 좀 더 배우고 알아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일치의 지평이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한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가톨릭 형제들을 초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교회 예배는 초대 교회로부터 2000년 동안 이어져오기 때문에 굉장히 풍부한 영성과 전례가 있습니다. 정교회 예배 안에서는 초대 교회 안에서 부르던 성가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지금도 그리스어로 드리는 정교회 예배는 그 당시에 쓰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슷한 형제 교회로서 하루빨리 영적 신앙적으로 한 형제가 되길 바랍니다.”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암브로시오스-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한국명 조성암(趙聖巖)) 대주교


1960년 3월 15일, 사도 바오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리스 아테네 남쪽 에기나 섬에서 태어난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아테네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성경 사본이 많이 보관돼 있는 이집트 시나이산의 성카타리나 수도원에서 2년간 도서관과 성화갤러리 관리를 맡았다.

이후 아테네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선임 트람바스 대주교의 요청을 받고 사제가 부족한 한국교회를 위해 1998년 12월 한국에 들어왔다. 정교회 고문직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발칸어과 교수로 활동한 그는 2005년 12월 21일 질론의 주교로 서품되었고, 2008년 5월 27일 한국의 대주교로 선출돼 제2대 한국대교구장으로 사목해오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됐을 때 자신의 성인 조그라포스에서 ‘조’를 따고 이름인 암브로시오스에서 ‘암’을 딴 데다가, 성스러울 ‘성’자를 앞에 덧붙여 직접 한국 이름을 지을 정도로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교회일치(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이란?

“교회일치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


교황청 일치위원회가 펴낸 ‘교회일치운동의 원칙과 규범의 적용에 관한 지침서’(1993. 5. 25)는 ‘교회일치운동은 성령을 통하여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일치에로 인도하고자 원하시는 하느님의 설계에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교회의 신비에 대한 신앙에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신자들에게 ‘분명히 사랑을 가지고 모든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손을 뻗치고 그들을 서로 갈라놓는 것이 무엇이든지 진리 안에서 극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라’고 요청한다.

천주교를 비롯해 교회일치에 나서고 있는 그리스도교 교단들은 교회일치운동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기 전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11)하고 기도하신다. 이어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제자들이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자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렇듯 교회일치는 갈수록 거세지는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되고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사상이 교회일치운동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한국교회 일치운동 발자취

우리나라에서 교회일치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5년 7월 4일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교회일치운동을 결의하고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를 설립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어 1968년 일치기도주간을 맞아 처음으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합동기도회를 열고, 교단 대표자 간담회도 개최했다.

일치운동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일 가운데 하나가 성서 공동번역 사업이었다. 한국교회는 1968년 가톨릭과 개신교 대표로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해 1971년에 공동번역 신약성서를, 1977년에 공동번역 구약성서를 펴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된 1990년대 들어 교회일치에 대한 인식과 참여도는 떨어졌고, 각 종단이 성장 위주의 공격적인 선교정책을 펼침으로써 타 종단에 대한 거부감마저 높아져 일치운동은 뒷걸음치는 모습마저 보였다.

2000년 대희년을 기점으로 교회일치운동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해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발족시키는가 하면 에큐메니컬 포럼을 개최하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직자는 물론 신학생 등이 다양한 교류 행사를 이어오면서 일치의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상에서는 갈라진 형제들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 팽배해있는 게 현실이어서 일치운동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실제 일치운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직접 참여하는 사례는 더 적어 유년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신문, 2012년 1월 15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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