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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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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7 ㅣ No.651

[서석희 신부의 영화속 복음여행] (19) 사라진 것에 대한 소중함 -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

떠난 자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존재의 의미와 가치


- 잠파노와 젤소미나.


1. 유난히 수줍고 가슴이 답답했던 고교시절, 아무도 모르게 늘 혼자서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당시 전주 시내에 오직 하나뿐이었던 클래식 음악감상실 '필하모니'가 바로 그곳이었다.

대형 스피커 두 개가 앞 벽면을 차지하고, 그 중간에 있는 삼각대 이젤에는 작은 칠판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그 시간대에 흘러나오는 곡들이 순서대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곡 제목을 체크해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음악에 빠졌던 것을 생각하면 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곳을 떠난 이후 몇 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학창시절과 비교해 변한 것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많이 왜소해지고 낡아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문득 생각이 나서 '필하모니' 간판이 걸려 있는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음악감상실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미술학원이 들어서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는 중이었고 아직 공사 중이라 간판을 내리지 않은 거였다. 순간 뭔가 모르게 치밀어오는 심정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왜 필하모니가 없어졌느냐?"고 항의했다. 적어도 그 순간 심정으론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이 그곳에 있어야 했다.
 
그런 어이없는 항의를 받은 어떤 분의 반문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평소에 많이 사랑해주셔야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 그렇게 항의할 만큼 거기에 애정을 가졌던가! 그러면서도 음악감상실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다림의 세월을 버티다 사라질 수밖에 없었을까? 그 많은 시간을 텅 빈 공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채워야 했던 '그곳'의 슬픔이 그제야 와닿았다. 뜻 모를 서운함에 거리를 걷던 필자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착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곳을 잊은 채 뭔가에 붙들려 지냈던 세월의 회한 속에 이제는 혼자가 된 것만 같았다. 흔히 인생을 '길'로 표현하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소중한 것을 하나 둘씩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길로 되돌아가 "미안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먼 길을 와버린 듯했을 때, 영화 '길'이 생각났다.
 
이번 회차에서는 좀 쉬어가는 의미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Federtico Fellini)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 1954)에 주목하고자 한다.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해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 '길'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볼 때마다 인생이라는 '길'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또 '오! 젤소미나'라는 구슬픈 주제곡과 함께 시정 넘치는 흑백화면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무엇보다도 '길'은 거칠고 힘센 서커스 차력사 잠파노에게 학대받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순진무구한 백치 젤소미나의 만남과 사랑과 이별을 우리 인생을 상징하는 '길' 위에서 그려낸 로드무비이다.
 
차력술을 보이는 잠파노.


2. 여주인공 젤소미나. 마음씨는 천사같이 순수하고 착하지만 어딘가 약간 부족한 그녀는 가난 때문에 오토바이로 순회하며 공연하는 곡예사 잠파노에게 팔려 '곡예여행(길)'을 떠나게 된다. 야수 같은 성질에 덩치까지 큰 잠파노는 오토바이에 젤소미나를 태우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가슴으로 쇠사슬을 끊는 등 차력 묘기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잠파노는 포악한 성질을 부려가며 젤소미나를 성추행하고 광대 재주를 가르친다. 젤소미나는 그의 욕설과 매질이 무서워 순순히 따르며 재주를 익히려고 애를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잠파노를 사랑한다. 젤소미나는 잠파노가 자신을 소유물로 여기면서 학대를 일삼는데도 생기를 잃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는 잠파노의 가혹함에 여러 번 도망치려 하지만 잠파노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어느 서커스단에 입단했다. 거기에는 줄타기 곡예사인 마토라는 청년이 있었다. 마토는 야만스런 잠파노와는 아주 다르게 젤소미나에게 자상하고 친절했다. 또 젤소미나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준다. "세상엔 하찮은 돌멩이 같은 것이라도 쓸데없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지. 네가 아무리 머리가 모자란다고 해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야"라면서 "어쩌면 잠파노와 같이 있는 게 너의 운명(길)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해준다. 젤소미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가혹하게 대하면서도 마토에겐 질투를 느낀다. 어느 날 잠파노는 곡예사 마토와 다투게 된다. 그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잠파노는 젤소미나와 다시 정처 없는 '여행(=길)'을 계속한다. 그러다 길에서 우연히 마토를 만난 잠파노는 홧김에 그와 싸우다가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젤소미나는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마토의 죽음을 슬퍼하며 밤낮 울기만 해 잠파노에게는 결국 귀찮은 존재가 되고 만다. 마침내 눈 내리는 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몰래 길거리에 버려두고 혼자 '길'을 떠난다.

광대 차림의 젤소미나.


3. 그로부터 5년 후 젤소미나를 버리고 떠났던 그 해변 마을에 잠파노가 나타난다. 그는 젤소미나보다 더욱 매력적인 여자와 함께 있었지만 어쩐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해변을 산책하던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트럼펫으로 즐겨 불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너는 한 여인을 통해 젤소미나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가 해변에서 한 여자를 발견해서 집에 데려왔는데, 늘 울기만 하고 제대로 먹지도 않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여인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미풍에 휘날리는 빨래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얘기만을 전하고 잠파노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카메라가 주시하는 것은 젤소미나에 대해 말해주는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녀가 말하는 내용과 담 너머에서 그것을 듣는 잠파노 표정이다. 늘 학대하고 괴롭혔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그녀가 있을 거라며 그의 마음에 머물렀던 젤소미나, 그리고 귀찮아서 버렸던 젤소미나의 죽음에 대해 듣는 그의 표정은 읽어내기 힘들 만큼 만감이 교차한다.
 
그날 밤, 잠파노에게 처음으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연민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카페에서 잔뜩 술에 취해 손님들에게 괜한 시비를 건다. 밖으로 내쫓겨 해변으로 내동댕이쳐진 그는 "나는 아무도 필요 없어, 혼자가 좋다고!”라고 소리친다. 그들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아니 젤소미나에 대한 기억을 향해, 그보다도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소리치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반항 같은 것이었다.
 
잠파노는 해변에서 비틀거리다가 모래밭 위로 쓰러지고 가쁜 숨을 내쉰다. 잠파노는 바다를 응시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탄식한다. 그리고 갑자기 무슨 생각에 사로잡힌 듯 모래사장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사랑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젤소미나가 자신을 사랑했었고. 젤소미나가 자신을 필요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이 그녀를 필요로 했음을 마음 속 깊이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야 그는 따스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젤소미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였는지 깨닫는다.
 
야만적으로 그려졌던 잠파노가 인간적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보인다. 어디선가 젤소미나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의 두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흐른다. 그는 엎드려서 "나는 이제 정말 혼자야"라며 영혼의 암흑 속에 고통스러워한다. 이제 그를 진정한 사랑으로 구원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의 잠재의식에서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젤소미나'는 없는 것이다. 카메라는 '이제 정말 혼자가 되니까 행복하니?'하고 묻듯이 울부짖는 잠파노를 응시한다. 이어 시야로부터 점점 멀어지다가 냉정하게 페이드아웃 된다.


4. 영화 '길'은 실제 우리 삶을 지탱해주지만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 존재하기에 쉽게 가치를 저버리는 '그 무엇' 혹은 '그 누구'라는 구원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공기와 물처럼,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같은 믿음(?)에서 비롯된 무례한 삶의 자세, 비가 오면 언제든지 우산을 펴들고 기다려주는 구원의 존재, 사라졌을 때라야 비로소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깨우쳐 준 그들에게 바치는 슬픈 오마주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일상 속에 가려진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너무도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하는 우리 부모와 부부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기도하는 은인일 수도 있다. 나아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처럼 무례하고 버릇없는 아들이 떠난 순간부터 노심초사 말없이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길'은 희생과 구원 의미를 깊이 묵상하게 할 뿐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묵상하게 한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28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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