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침묵하고 계시면(타조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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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4 ㅣ No.850

[레지오와 마음읽기] 침묵하고 계시면(타조증후군)

 

 

타조는 새이긴 하지만 키가 2.4m나 되고, 무게도 155kg 정도 된다. 게다가 날개는 퇴화하여 날 수 없지만 시속 90km까지 달릴 수 있다. 말이 시속 60~70km로 달린다고 하니 말보다 빠른 셈이다. 또한 발길질 한 번에 커다란 동물을 단숨에 죽일 수도 있다. 이런 타조가 맹수에게 쫓기게 되면 같은 곳을 뱅뱅 돌다가 모래나 바위틈에 고개를 처박는다고 한다. 머리만 숨기고 커다란 몸뚱이는 드러난 상태이기에, 마치 적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을 빗대어 ‘위기가 닥쳐오는데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행태’를 ‘타조증후군’이라고 한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엘리자베스 모리슨과 프랜시스 밀리컨 교수는 대학연구소에서 학술회의를 진행하던 중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회의 중에 제기된 안건에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침묵하는 것이었다. 두 교수는 이런 현상이 다른 조직 안에서도 일어나는지 궁금하여 영리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구성원의 침묵에 관한 실험 연구(An Exploratory Study of Employee Silence)’라는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부서장들의 85%가 어떤 안건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어도 침묵했고, 15%만이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고 한다. 특히 윗사람이 제안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윗사람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안건일 경우 더 많이 침묵했으며, 혹여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그들 중 50%는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불만이 있는데도 침묵하고, 설령 자신의 의견을 말하더라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현상 말이다.

 

이에 대해 두 교수는 문화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조직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라고 분석한다. 즉 사람들은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괜히 분쟁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가 되고 싶지 않아 침묵한다는 것이다.

 

 

위기에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행태, ‘타조증후군’

 

실제로 우리는 힘 있는 사람이 혼자 이야기하고 상대나 구성원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는 현상을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직장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친구 모임, 심지어 커플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듣는 사람들은 말하기 불편한 일은 애써 꺼내려 하지 않고 더러는 이를 배려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에는 여러 가지 심리가 깔려 있다. 말을 해봤자 별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이나, 이야기했다가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왕따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윗사람에 대한 복종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적 특성 등이다. 그로 인해 자기 생각 말하기를 꺼리게 되고 타인의 의견에 따르는 게 편하다고 여기게 되며, 나아가 타인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태도야말로 이익보다 폐해가 더 크다. 특히 조직의 경우 서로 간의 소통 부재로 어떤 계획이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일이 잘 안될 가능성이 커진다. 더구나 침묵하는 이들은 구경꾼의 태도를 지니게 되어 조직에 대한 주인 의식은 달아나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당장 어려움을 피하려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더 큰 위기를 자초하게 되어 조직과 관계를 큰 위험에 빠트리게 한다.

 

P자매는 5남매의 셋째로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온순하고 조용하며 착하다는 말을 들었던 그녀는 혼자 연로한 부모님을 모셨고, 그 어려움을 위로받으려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과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는 바로 입단하였고 레지오 간부가 되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며 자신감이 붙었는데, 꾸리아에서 처음으로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꾸리아에서 ‘주일학교 수련회 보조금을 의연금에서 지출하자’는 안건이 나왔는데 그녀가 ‘레지오의 물질구제 금지 원칙’을 이야기하였고, 덕분에 돈이 아닌 밥을 해주는 봉사로 결정되었다. 이후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은 행복하게 단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어려서부터 ‘네가 생각하는 게 그렇지’ ‘너는 아무 생각도 없냐’ 등의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늘 주눅이 들어 남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어요. 그날의 꾸리아 안건도 레지오 정신에 맞지 않는 듯하였지만 처음에는 용기가 없어 선뜻 말하지 못했습니다.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모든 평의원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발언해야 한다’는 교본 내용이 떠올랐고, 저는 어렵게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제 발표 뒤로 다른 평의원들도 의견을 내며 안건이 활발하게 토의되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제겐 큰 변화의 시작이 되었어요.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저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제 마음속 긴장과 불안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Pr. 단장은 단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격려하고 경청해야

 

침묵이 금일 때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 없이 말을 하게 될 때는 침묵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회의 중에 구성원의 침묵은 독이다. 회의의 본질은 그 단체의 업무나 문제에 대해 구성원끼리 솔직하고 자유롭게 토의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회의에서 다수의 침묵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다. 특히 ‘전체의 침묵이 때때로 소수의 웅변에 의하여 가려지고’(교본 240쪽)마는 경우나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발언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상’(교본 240쪽)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활발한 의견 교환이 아닌 소수의 주장에 다수가 끌려갈 뿐이기 때문이다.

 

쁘레시디움은 더욱 이런 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쁘레시디움에서 단장 역할이 중대한 만큼 평단원의 의견 제시가 자유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장은 단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하며 잘 경청하여야 한다.

 

내가 몸담은 조직은 말을 해봐야 소용없는 분위기이며, 잘못하면 왕따를 당할 수 있어 두려운가? 혹은 괜히 잘못 말했다가 나의 무지만 드러낼까 불안하고 나아가 관계만 어색해질까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나는 눈앞의 위기에 머리를 숨기는 타조처럼 개인적인 위험을 피하려다 조직 전체의 위기를 불러오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모님을 닮고자 하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다음 말을 명심해야 한다. ‘성모님이 침묵하고 계시면, 아무도 기도하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기도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게 될 것이며 남을 도와주게 될 것입니다.”(성 안셀모, 교본 373쪽)

 

‘모든 평의원은 –중략- 자기 의견을 발표하여 조직체가 활성화되도록 힘껏 공헌해야 한다.’(교본 240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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