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선교ㅣ복음화

선교영성(宣敎靈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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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3 ㅣ No.304

[영성의 샘] 선교영성(宣敎靈性) I

 

 

1.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행동 그 자체입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행동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할 세상을 향한 지상명령입니다. 선교는 아울러 우리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신학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선교는 누군가가 파견 되고 보내어지는 모험과 위험을 안고 있는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불러 일으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출애 3,12; 이사 1,5. 3,19; 예레 1,8; 에즈 1,6. 3,9)

 

첫 번째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니…”(마태 5,19) 예수께서는 새로운 임무를 그들에게 주십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새로운 선교에로 초대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열둘을 당신의 동료들로 부르시어 그들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들은 또한 마귀들을 제어하는 권위를 받았습니다.”(마르 3,12-15) 루카 복음사가는 또한 부르심, 선발, 그리고 선교에 대하여 밀접한 관련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새벽에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자신의 사도들로 선발하셨다.”(루카 6,13) ‘사도란 보냄을 받는 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결코 그들 자신들의 뜻이나 힘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힘으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선교자는 세례자 요한의 삶과 모습처럼 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요한 3,30) 선교는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과 똑같습니다. 즉,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그 하늘나라의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모습은 그분의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며, 예수님의 메시아적 선교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마태 3,16)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나타나십니다.(마태 3,17)

 

“너희는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사도 1,8) 사도들의 가장 필수적인 선교는 예수님 부활의 증인들이 되고(루카 24,48; 사도 2,32. 3,15. 4,33. 13,31. 22,15), 그분의 공적인 생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증인들(루카 1,2; 요한 15,27; 사도 1,22. 10,39)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구원과 인간을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일에 대한 증거이며 확인입니다. 즉, 그 증거와 확인은 케리그라(구원선포), 교리교육, 하느님 나라의 실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재는 하느님의 자녀들로서의 새로운 존재성, 우주적 형제애, 정의, 연대,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는 이들에 대한 옹호와 사랑으로서의 새로운 삶의 모습과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증거자(證據者)로서의 선교

 

신앙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선교는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즉 말과 행동들을 통해서 증거자가 되고 형제적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도 복음으로 충만된 공동체를 살고 이루기를 원하셨는데,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삶의 증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증거자들이고 설교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1요한 1,1-3 참조)

 

복음을 전하는 것은(마르 3,14),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임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나타나시었습니다. “때가 이르렀으니…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과 입술로 삶에서 늘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마태 28,19) 말씀의 설교는 제자들의 직무에 있어서 첫째가는 사명이었는데, 그 사명은 그 외의 다른 어떤 직무들에도 분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사도 6,2-4)

 

그러나 사도직 선교는 그 조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안에서는 사도적인 선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로운 선교입니다.(마태 10,8) 가난을 요구합니다.(마태 10,9-10) 평화를 가져갑니다.(마태 10,11-15) 박해도 감수합니다.(마태 10,16-25) 공공연히 말하고 전하며,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이들을 두려워 않습니다.(마태 10,26-32) 가족 안에서의 반대도 각오합니다.(마태 10,34-37)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합니다.(마태 10,38-39)’ 선교의 조건들은 제자들의 조건들을 확인케 하는데,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과 길들 안에서, 그분의 운명과 선교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우리는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선교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3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선교

 

(1) 예수님 선교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은혜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는 이미 밝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2) 예수님과 초대교회는 그들의 임무 안에서 그리고 임무들을 위하여 오로지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하여 힘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기도 안에서 성령의 현존으로 양육되었습니다. 선교, 성령, 기도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3) 초대교회의 선교는 정치적이고, 참으로 혁명적이었습니다. 이 선교의 혁명적인 본성은 새로운 관계성들 안에서 널리 퍼졌는데,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고, 일치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즉 로마인들, 그리스인과 바르바라인, 자유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서로의 사랑과 봉사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모든 관계성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4) 하느님 나라를 위한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상적인 세상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지향들을 희망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보다 정의로운 큰 세상을 이루지도 못했고, 여전히 압제와 가난과 배고픔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우리 모두의 기다림과 기도와 더불어, 오늘날의 선교에 있어서도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고 모습인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들과 약함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과 구원을 전하고 선교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자신의 길들과 방식들로, 자신들의 한계 안에서, 자신들의 최선과 열정을 다했습니다. 또한 많은 고통, 반대, 그리고 박해들도 그리스도인 선교의 한 모습이고 또한 동행임을 우리는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쌍백합, 제20호, 2008년 봄호,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

 

 

[영성의 샘] 선교영성(宣敎靈性) II

 

 

1. 선교와 영성

 

선교 혹은 복음화는 생명과 한 인간에 관하여 말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그리스도, 생명의 주님에 대하여 말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의 증인들을 통하여 소통되어야 합니다. 그 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깊은 체험이 요청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들을 선포할 수 있는데, 즉 우리가 체험한 것들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선교사는, 자신들의 약함과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가치들에 따라서 살아야 하며, 하느님의 표징과 현실들을 넘어서는 표징들로서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봉사자들과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하느님 사랑의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선교사들의 생활 증거의 목표는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체험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특별한 양식들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난 후,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은 빛났습니다.(탈출 34,29 참조)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이 각자 그들의 삶의 방식들 안에서 다양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자신들의 기도와 관상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때, 자신들의 얼굴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전 존재와 삶 안에서 하느님을 반영(反影)하고 투영(投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2. 아시아 교회와 선교영성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들의 삶 안에서 증거하고 투영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아시아의 교회 : Ecclesia in Asia, n. 23 b 참조)

 

‘아시아의 교회’(Ecclesia in Asia : April-May 1998, Vatican : themeJesus Christ the Savior and his Mission of Love and Service in Asia - 아시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과 봉사의 선교) 문헌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와 행동의 참된 선교사 영성을 필요로 합니다.” 선교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행동, 기도 안에서의 행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기도와 행동 안에서의 깊은 하느님 체험이 없는 선교사는 영성적인 영향이나 선교사로서의 성공은 거의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다음 말씀을 들어봅니다.

 

아시아는 각자의 개인들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적인 것들을 목말라하는 위대한 종교적인 것들의 고향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소명 받았는데, 그래서 깊은 영적인 것들뿐 아니라 인간적이고도 사회적인 관심들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아시아 교회에 관한 문헌 : Ecclesia in Asia n. 23b 참조)

 

한편 아시아 주교 대의원회의 구성원들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입고 영감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선포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할 거룩한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하는데, 그 신자들의 거룩한 삶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또한 선교입니다. 사랑의 불은 오로지 그 자체가 불인 것에 의하여만 지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기쁜소식을 전하는 아시아에서의 복음 선포는, 만일 주교들, 사제들, 축성된 삶을 사는 이들, 그리고 증거자로서의 평신도들 각자의 삶에 달려 있습니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 지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다 더 널리 전하고자 그들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가까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그 모든 복음 선포는 불과 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아시아 주교대의원회의 준비의안 8장, 바티칸 1998)

 

아시아 주교 대의원회의(시노드) 문헌은 선교의 상호관계성에 대하여 상기시키는데, 즉 인간 증진의 임무와 기도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정의, 자비, 연민의 일들은 기도와 관상 등의 성실한 생활들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아시아 시노드 준비의안, 19항, n. b 참조)

 

“아시아의 교회’(Ecclesia in Asia)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교사들의 종교적이고 수덕적인 원칙들과 훈련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기도, 단식, 그리고 여러 형태의 수덕주의는 매우 높게 평가됩니다. 포기, 이탈, 겸손, 단순, 그리고 침묵은 모든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높은 가치로 여겨집니다.”(Ecclesia in Asia, n. 23 b 참조)

 

 

3. 하느님 체험을 통한 선교영성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체험으로 양육되고 새로워지는 영성 없이 증거자와 봉사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증거자와 봉사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는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도 아브라함이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으며 감동받은 것들’에 대하여 증거자와 봉사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기 때문에 그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한 그분의 모습과 닮음, 일상 안에서의 성경의 말씀들, 그리고 전례와 성경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증거와 봉사의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라고 있는데, 사제들이나 교회의 봉사자들이 단순히 효율적인 관리자나 경쟁적인 전문가들, 혹은 여러 방면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보다도,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의 길을 알려주는 영적인 인도자, 거룩한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사제들이, 수도자들이, 봉사자들이, 성취자, 특별한 사람들이나 전문가들로서 보다도 하느님의 겸손하고 행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선교영성에 새롭게 우리 자신들을 비추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하느님의 자비와 조화, 이탈과 자기를 내어줌,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고통, 그리고 창조의 통합을 위한 존중’ 등이 강조되는 그리스도 체험에 뿌리를 두는 그러한 선교영성에 비추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 선교영성은 선교하는 이들로 하여금, 연대와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의 헌신, 정의와 평화, 창조의 통합, 인간권리들과 자유 등을 추진하게 하는 영성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연대는 사랑 안에서,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그분을 위한 사랑 안에서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삶은 점차로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사랑하는’ 증거와 봉사가 됩니다.

 

선교영성은 사제와 수도자들, 교회 증거자들과 봉사자들의 영성을 통합하고 믿음과 생활, 존재와 행동, 사랑과 행동 사이 이분법을 해결하며, 축성생활, 선교와 공동체 생활 사이의 다리를 놓게 합니다. 선교영성의 새로움 없이는 사제와 수도자들, 교회의 증거자들과 봉사자들의 선교는 세상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쌍백합, 제21호, 2008년 여름호, 윤양호 클레멘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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