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5: 제4-5장은 생태문제를 해결할 청사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7 ㅣ No.774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5

 

제4-5장은 생태문제를 해결할 청사진

 

 

이번 글은 「찬미받으소서」 제4장과 제5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를 시작한 1월 호에서 언급했듯이, 회칙의 전반부는 생태계 파괴의 현실(제1장),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근거와 입각점(제2장), 생태계 위기를 불러일으킨 가치관에 관한 문제(제3장)를 제시하였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후반의 세 장은 당면한 생태문제를 해결할 청사진을 제시한다. 환경과 사회를 아우르는 전망에서 제시되는 온전한 생태론을 제4장에서 다룬 뒤, 생태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과 행동방식을 정리하고(제5장), 마지막 장에서 뿌리에서부터 변화가 가능한 회심(제6장)을 촉구한다.

 

 

인간과 생태를 동시에 고려하는 생태관

 

먼저 온전한 생태론을 다루는 제4장을 살펴보자. 회칙의 문제의식은 인류가 환경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위기가 복합된 하나의 위기에 직면했다(139항 참조)는 데서 출발한다. 이때 회칙이 제시하는 온전한 생태론은 자연 안에서 인간이 지닌 고유한 지위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생태론을 말한다(15항 참조).

 

이는 생태 중심적인 생태론도 아니며, 인간 중심적으로 환경을 이용대상으로 보는 생태론도 아니다(139항 참조).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 근거해 생태계를 보호할 책임을 부여받은 인간이 피조물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생태론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선물로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온 세계를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155항 참조).

 

온전한 생태론에서 환경(자연)문제는 인간 삶의 모든 분야, 곧 경제, 정치, 문화와 긴밀한 관계 안에서 성찰한다. 이에 따라 사회제도의 건전성이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되며, 공동선의 추구가 고민의 중앙 자리에 놓인다. 회칙이 공동선의 실현에서 역점을 두는 부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과 연대성이다. 이때의 연대성은 동시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넘겨주려는 확장된 연대성을 말한다(162항 참조).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환경인식이 사회교리의 지평선상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곧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이라는 사회교리의 원리가 환경회칙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으로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조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자연은 가장 가난한 형제로 받아들여지며, 인류의 모든 죄로 말미암은 피해를 가장 결정적으로 받는 대상으로 인식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생태계 문제를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의 통합적 지평에서 조명하는 회칙은 개인과 집단의 선택과 성찰을 촉구한다. 사회의 삶과 존속이 가능한 조건에 대하여 발전, 생산, 소비의 모형들에 대한 시각 전환(138항 참조)과 모든 결정을 창조된 세계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세계라는 입각점에서 고민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특별히 회칙은 개별 생태계의 재생력을 감안한 지속 가능한 이용을 논의하고, 연대와 민간 우호를 포함하는 사회제도의 건전함을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회칙에 따르면,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제도가 지역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국제적인 삶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각 지역사회의 건전함이 실현되는 것이 생태문제 해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142항 참조).

 

인간 생활의 영역 전반과 연관된 통합 생태론에서 소비주의적 관점과 기술 중심주의는 인류가 가장 주의와 경계를 해야 할 점이다. 이는 소비주의적 관점이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기술 중심주의적 사고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우에는 생태문제의 본질과 무관한 증상만을 다룰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143-144항 참조).

 

 

어떻게 접근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제4장을 통해 통합적 생태론의 지평과 입각점을 제시한 회칙은 제5장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한다.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은 국제정책뿐 아니라 개인이 참여하는 대화와 행동을 위한 제안이다. 회칙은 이러한 제안이 현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천명한다(163항 참조).

 

회칙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교회가 제시하는 대화는 특정 이익이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사안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솔직하고 열린 토론이다.

 

한편, 지난해에 개최된 ‘파리 환경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회칙에서 교황님은 이제까지의 세계 환경회담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을 정면으로 지적하셨다. 그 지적의 핵심은 정치적 의지의 결여이다. 이는 1992년에 개최된 ‘리우 환경회의’ 때부터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감시와 정기검사,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를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음으로써(167항 참조)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칙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 공동선보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나라들의 입장 때문에 빚어진다고 진단한다(169항 참조).

 

그런데 환경 관리의 책임에서 교황님이 제시하시는 공동 책임은 획일적이고 균등한 책임이 아니다. 회칙은 공동의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문제 발생의 정도에 따른 차등 책임의 부과를 주장하며(170항 참조), 선진국들의 자발적 책임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교황님은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민의 빈곤 퇴치와 사회 발전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며,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술 이전, 기술과 재정 지원을 통해 도움을 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하신다(172항 참조).

 

전체적인 맥락에서 회칙은 각 나라들이 앞날을 설계하고 보호하는 데 공동선에 비추어 행위 규정을 마련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관련하여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정부는 선거권자들의 이해에 부응하여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외 투자를 위협하는 조치로 국민들을 쉽사리 자극하려 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 환경에 관한 장기적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178항).

 

이에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복음의 기쁨」 222항을 언급하며 회칙은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회칙이 제시하는 정책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원료 사용의 절약을 통해 산업의 생산방식을 촉진하는 것과 에너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거나 오염을 가중시키는 상품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에 이른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려면 정책의 연속성과 정책 결정과정의 대화와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생태계를 고려한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요청된다.

 

회칙은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여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자고 제안한다(191항 참조). 더 나아가 경제의 의미와 그 목표를 더 나은 세상과 전체적으로 더 높은 삶의 질을 이루어낸 것과 관련한 발전의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194항 참조). 이에 따르면, 이윤 극대화의 원칙을 고수하는 경우 미래 자원이나 환경의 건강을 희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동의 환경자원을 이용하는 데에 드는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이용자가 온전히 부담하고, 투명하게 이를 공개해야 한다(195항 참조).

 

 

아시아 국가의 환경문제와 한국교회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생태와 환경문제를 다룬 최초의 회칙이어서인지, 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기에 따른 후광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교회 안팎에서 회칙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많은 이가 가장 많이 언급하고 인용하며,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내용은 아마도 이번 글이 다루는 제4-5장일 것이다. 강대국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약소국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는 점이나, 마치 자본주의 이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 몇 구절이 일부의 활동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분명, 회칙은 급박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새롭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회칙과 차별성을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인간학이나 사회교리 측면에서의 뿌리와 가지, 열매는 크게 변함이 없음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통합적 생태론과 온전한 생태론이 생태 중심적 생태관으로만 받아들여질 때 회칙 전체의 치밀한 구조적 완결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같은 행동을 전개할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회칙이 분명하게 언급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겨주신 선물로서의 세계라는 인식’이 없다면 동일한 행동의 결과는 다른 열매를 맺을 것이다. 회칙을 근간으로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교회의 환경운동 단체들의 숭고한 활동과 노력을 경하하며, 회칙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풍부한 교회 전통의 양식이 더욱 풍성한 열매와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한 투신의 힘으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 지역에 속한 한국교회는 회칙을 연구하며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남미 주교회의와 아시아 주교회의가 지금까지 환경문제를 자신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관련하여 신앙의 눈으로 처절하게 반성하고 고민했는지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단 하나의 구절도 인용되지 않은 한국 주교회의와 한국교회의 문헌은 우리 교회의 사목이 당면한 신학적 과제에 관하여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얼마나 게을리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 교회의 자화상이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유흥식 라자로]



3,23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