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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명동 사순특강4: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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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6 ㅣ No.137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사순특강 (4 · 끝) 꿈은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꿈은 우리의 꿈

 

 

어떤 꿈을 안고 사는가? 꿈은 현실과 다르다. 우리가 평소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 기대하는 것을 꿈이라고 한다. 또는 나의 꿈, 미래의 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혹시 건강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프지 않아도 누구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바란다. 혹시 평화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억눌린 이들은 자유를, 어려움에 닥쳤을 때는 기쁨의 꿈을 꾼다. 또 누구나 생명, 사랑, 행복을 꿈꾼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고자 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선물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꿈을 꾸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꿈꾸는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선물을 주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꿈꾸게 하시면서 당신의 엄청난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예수님을 통해 안내해 주셨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처럼 살면 하느님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또 우리가 당신 뜻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선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능력도 주셨다. 이해를 돕고자 공동번역 성서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리 2,13).

 

지난 시간에 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남녀 간 이성적 사랑과 그냥 마음이 가는 우리의 정(情) 같은 사랑,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22,34-40)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내 자신도 그 뜻을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9월에 시복된 끼아라 루체 바다노의 예를 들어보자. 그의 행적에 특별한 것은 없다. 포콜라레운동에서는 ‘예수님이 원하시면 나도 원한다’는 마음으로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함께하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끼아라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

 

젊은 나이에, 18살에 하느님 품에 올라간 끼아라는 암에 걸려 죽음을 깨닫게 된 순간에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나도 원한다. 주님께서 내가 죽기를 원하시면 나도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말하며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 다가왔음을 느낄 때 극심한 절망에 빠져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만 끼아라는 그러지 않았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인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하느님이 원하시면 나도 원한다는 그 마음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감정이 아닌 신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하고 말씀하셨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임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무조건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에게 ‘치유’를,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빵’을 주셨다.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을 때는 ‘포도주’를 주셨고, 어린이들이 다가올 때는 ‘끌어안아’ 주셨다. 또 죄인들에는 ‘용서’를, 사도들에게는 ‘믿음’을 주셨고, 바리사이들에게는 ‘충고’를 해주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함부로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는 ‘채찍질’을 하시고, 당신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는 ‘요한 사도’를 아들로 주셨다. 예수님 사랑은 이렇게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웃이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나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잘 해주는 것이 예수님 사랑이다.

 

우리 힘만으로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이웃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편하고 쉽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와서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내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그냥 도구로서 예수님 사랑을 베풀어주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17일, 두봉 주교, 정리=서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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