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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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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유익한 심리학15: 대화와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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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28 ㅣ No.1099

[유익한 심리학] (15) 대화와 소음

 

 

우리에게 대화란 무엇일까? 의사를 소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의사전달의 정보 전달인가? 아니면 의사전달을 통하여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인가? 복잡한 언어체계를 발달시킨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자기 세계를 확장해왔다. 영성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추상과 상상의 사고능력과 언어능력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세계다. 많은 사람이 영적 갈망에 참된 진리와 가르침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한편으로 많은 사람은 말 같지도 않은 헛된 소리 속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대화는 단순한 ‘소통’이 아니다. 질서와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나’로부터 나와 ‘너’에게로 들어갈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이해와 공감은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여 대화 이전의 자기보다 더 심오한 ‘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진솔하지 않은 대화는 대화가 아니고, 일관성 없는 말은 말이 아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도 하나의 대화다. 언어·비언어 모두를 통하여 우리는 대화하고 자기를 만들어간다. 진솔성은 대화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며, 일관성과 명료함은 중요한 요소다. 일관성이 없는 말은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명료하지 않은 말은 대화를 멈추게 한다. 양육에 있어 양육자의 일관성과 명료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양육자의 아이는 매우 불안정한 내면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어떤 이들은 타인을 통제하거나 지배하기 위하여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명쾌한 논리 구성도 없이 마구 말을 뱉어낸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과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주변에 쉽게 동조하는 인간의 비겁함이 만나면 정의는 왜곡되고 진실은 커튼 뒤로 숨어버린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유린하기란 너무도 쉬운 환경이 주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간 존재의 문제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대화는 폭력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하여 자기 존재의 확장과 자아실현이라는 삶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도구 삼아 타인을 착취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며 존재는 소외된 채 자신과 무리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맘몬(부와 재물 소유)에 의한 세속화는 인간의 유일한 특징인 대화 능력을 타락시켜버렸다.

 

특히 탈 중심주의 현대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들과 대화를 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가족관계를 꾸준히 형성해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지경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대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서로의 존재가 멀어질 대로 멀어졌는데 하루아침에 대화하자고 해서 되겠는가? 그렇게 상대방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으면서 대화를 시도하니 큰 착각을 하는 거다. 자기에 대한 과대망상처럼 마치 대화하려는 자기 생각이 기특하고 좋은 의도이니 따라올 거야 하고 생각하는 자아도취적 망상이다.

 

존재가 멀어지면 대화는 포기하는 것이 낫다. 대화보다 존재에 관심을 가져라. 존재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른다면 자신의 미성숙함을 깨달아야 한다. 대화는 인간의 행위다. 짐승들이 흉내를 낸다고 대화가 아니다. 표현이 거칠어졌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심한 말도 아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참혹하다.

 

대화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존재에 관심을 가져라. 말을 섞는다고 대화가 아니다. 인간에 대해 관심 없이 나오는 말은 ‘헛된 소리’에 불과하다. 사람의 마음은 존재에 관심을 두는 소리에 반응하게 되어있다. 헛된 소리를 주고받는 소음은 공허한 고요만 느끼게 할 뿐이지만, 말 없는 대화에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자기 방어를 위한 무의식 중의 헛된 소리는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우니 참으로 안타깝다.

 

[2022년 11월 27일(가해) 대림 제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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