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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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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14 ㅣ No.608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여행] (1)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

성경 속 예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흑인 죄수들


이번 호부터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을 격주로 연재한다. 대표적 대중문화인 영화 속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표출되는 복음 메시지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또 그 메시지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제시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영화와 그리스도교 영성의 접목 혹은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획이다. 서석희 신부는 전주교구 소속으로 교구 홍보국장을 지내고 현재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영상예술)에 수학 중이다.
 

1.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화를 볼 때 성경이나 성경구절이 나오면 '왜 하필이면 그 시점, 그 지점에서 인용되는가?'하는 측면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성경구절 인용은 대부분, 단순한 의미로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거나, 부분적으로 영화의 시퀀스나 장면 안에서 뭔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인용된다. 때로 영화를 코믹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성경 내용을 변형시키기도 하지만,-케빈 스미스 감독의 '도그마'(Dogma, 1999)-그런 내용마저도 영화의 전체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 속 성경구절의 역할과 비중, 곧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그 성경구절이 어떤 역할을 하고 영화 주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Amistad, 1997, 155분)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가 소재
 
2. 영화 '아미스타드'는 1839년의 실화를 근간으로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쿠바로 끌려와 다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팔려 '화물'로 실려가던 흑인 52명이 반란을 성공시킨다. 반란 주모자인 싱케이를 비롯한 흑인들은 고향으로 가려 했지만, 살아남은 백인 2명의 계략으로 미국 법정에 살인 혐의로 서게 된다. 이들로 인해 미국법정은 노예제 존폐를 둘러싼 토론장이 된다. 난생 처음 배운 영어로 외친 "기브 어스 프리"(Give Us Free)는 결국 좌절되고, 그들은 감옥으로 돌아가 다시 판결을 기다린다.
 
그들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그들과는 무관한 노예 문제를 둘러싼 미국역사의 갈등 지점에 서게 됐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흑인 모두가 노예인 것이 아니라 자유인도 있었다. 또 스페인과는 다르게 영국이나 미국은 노예제를 점차적으로 완전히 폐지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이런 가운데 미국은 북부와 남부가 첨예하게 대립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미스타드호의 반란과 흑인들 문제는 그들을 '화물'이나 '노예'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인'으로 취급할 것인가에 대한 공방으로 치달았다. 이는 곧 북부와 남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싱케이와 잠바 일행은 백인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갇힌 감옥 앞으로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몰려와 기도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 눈에는 '주문을 외는 것'처럼 보였다. 십자가를 들고 가스펠송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싱케이 일행에게는 '슬픈 광대들'로 여겨졌다. 어느 날 이들 일행은 감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슬픈 광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잠바는 그들에게서 성경책을 받게 된다. 중간 중간에 삽화가 그려진 성경책이었다.

 

- 성경책을 보고 있는 싱케이와 잠바.

 

 

물론 아프리카인인 잠바가 영어 성경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경의 주요 장면을 그린 몇 개의 삽화를 보는 것뿐이다. 잠바와 동료들은 성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끼워 맞춰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처음 그림은 유다인들이 사자들에게 던져진 장면이다. 그러자 책을 들고 있는 잠바가 설명한다. ①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어…. 고난투성이 삶이야."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자 아기 예수가 마리아, 요셉, 목자들에게 둘러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잠바가 또 설명한다. ② "근데 그때 이 아기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던 모양이야." 옆에 있던 동료가 묻는다. "이 아기는 누군데?" 그러자 잠바는 책장을 넘겨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그림을 펼쳐 보이고는, 예수님 머리 위에 있는 후광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③ "나도 몰라. 하지만 이 사람이 가는 곳마다 해가 따라다녀."
 

성경 속 삽화 통해 힘과 용기 얻어

 

예수 탄생 장면을 그린 삽화.

 

 

다음 그림은 예수님이 병들어 아픈 듯한 사람들을 만져주는 장면. ④ "여기 이 사람이 손으로 사람들을 고쳐주고 있어."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려는 무리들 사이에 서 계신 장면이 나오자, ⑤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어…"하며 또 넘긴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축복해주는 장면이 나오자, ⑥ "아이들도 따스하게 받아주고…." 그들은 삽화를 보며 계속 이야기한다. ⑦ "이 사람은 바다 위로도 걸어 다닐 수 있어. 그런데 사건이 터졌어. 이 사람이 잡힌 거야. 뭔가 죄목을 쓰고." ⑧ "봐, 여기 이렇게 손이 묶여 있잖아." "뭔가 사고를 쳤나 봐."
 
그들은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장면을 본다. 옆에 있던 동료 싱케이는 ⑨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잠바." 하고 돌아서려 한다. 그러자 잠바가 다시 말한다. "하지만, 봐, 이게 끝이 아니야." 둘은 다음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다. ⑩ "사람들이 시체를 내렸어…. 그리고 동굴에 넣었어. 우리가 하는 식으로 천으로 싸서."
 
다음 그림에서는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와 함께 계시는 장면에서 ⑪ "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난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지. ⑫ 그러다 결국은 하늘로 올라갔어."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영혼도 거기로 가는 거야.”

 

세 개의 빈 십자가.



그리고 이들은 맨 마지막으로 ⑬세 개의 빈 십자가가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멎는다. 그들은 자기들을 고국에서 여기까지 데려온 세 척의 빈 배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돛을 응시한다. 마치 세 개의 십자가를 연상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 힘든 순간에 알 수 없는 "그(=예수)"에 대해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 이들이 성경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이들을 판결할 재판관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두 장면이 하나로 이어지고 교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옥에 비치는 빛이 어우러지면서 희망이 감돌고 있다.
 
3. 영화에서 십자가 세 개와 배 세 척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성경을 통째로 인용하고 있다. 아울러 이 영화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며 성경 속 예수님과 '같은 처지'임을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을 구약성경 탈출기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결부시킨다. 또 '부유한 자를 내치시고 가난한 이들을 들어 올리시는'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의 의미와 결부시킨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적 삶과 고난에서 예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장면은 나아가 예수님이 그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음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며 관객들도 뜻 모를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흑인 죄수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함과 엄숙함이 흑백 삽화에 배 있는 것이다.

 

세 십자가와 대비되는 배 세척.

 

 

영화에서 하느님 메시지 듣는 기회
 
4. 성경을 인용하는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 '아미스타드'를 통해 인용된 성경구절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 의미를 획득하는가를 살펴보았다.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이란 말이 있다.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히고 만다'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그렇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의미를 얻게 되면, 그것은 깊은 묵상이나 삶의 차원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논리적 차원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인용될 때 우리는 유심히 눈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영화 속에서 하느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영화 속 성경구절에 주목해서 영화들을 살펴볼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5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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