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루카복음 12,32-48 충성스러운 하인과 불충한 하인(2016. 8. 7. 연중 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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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08-06 ㅣ No.2122

여러분 작은 양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여러분에게 기꺼이 주십니다. 여러분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는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마련하여 재물을 하늘에 보관하시오. 하늘에서는 재물이 축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도둑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재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습니다.”

 

작은 양들제자들이 늘 하느님의 인도를 받을 것임을 가리킨다. 요한이 예수를 어린양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예수의 진리는 실천하기가 두렵다. 재물을 포기하는 것은 마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을 이끌어주실 것이므로 그들은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난한 사람은 욕망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징어이다. 그들은 늘 재물이 부족하다고 여기므로 가난한 사람이다. 반면에 하늘나라의 제자는 성령의 지혜로 온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므로 부유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마태오 5:3)라고 할 때의 가난은 하늘나라의 제자가 재물에 초연한 것을 가리킨다. 같은 가난이란 단어로 정반대의 사건을 지시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고 성서의 문구만을 따라가는 사람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운운한 것은 자선 사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에 관한 일은 세상 사람들에게 맡겨두라는 뜻이다. 자선 사업을 하려면 우선 재물을 모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선 사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다.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는 망덕이다. 말하자면, 망덕은 하늘의 재물을 추구하는 일이다. 재물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마음이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늘에 마음이 있다. ‘도둑은 남의 재물을 탐내는 마음이며 은 육신이 늙어죽는 사건이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남과 다투지 않으면서 죽지 않는 신적인 생명을 누린다.

 

 

여러분은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하인들처럼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늘 준비하시오. 주인이 와서 문을 두드리면 하인들은 즉시 그를 위하여 문을 엽니다. 주인이 와서 하인들이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들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주인은 허리에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을 시중들 것입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그보다 더 나중에 오든 하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들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집주인이 도둑이 언제 올지를 알고 있다면 그 도둑이 집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시오. 사람의 아들은 여러분이 기대하지 않을 때에 올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사람과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상징어이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은 예수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제자들은 아직 혼인잔치를 하지 않았으므로 하인이다. ‘허리에 맨 띠는 망덕이며 등불은 신덕이다. 제자들은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다. 문을 두드리는 주체는 예수이다. 앞서 루가 11:9에서는 두드리시오, 열릴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대비된다. 제자들이 하늘나라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예수가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 제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사랑하고 계시다.

 

그런데 주인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하인을 식탁에 앉혀 놓고 시중을 든다. 주인이 허리에 맨 띠는 애덕이다. 말하자면, 하인과 주인은 허리에 띠를 매고 서로 사랑한다. 허리에 띠를 맨 것은 구체적인 효과를 낳는 살아있는 생명의 활동을 나타낸다. ‘식탁은 하늘나라의 음식인 성령을 지시한다. 주인과 하인의 역할이 뒤바뀐 상황이다. 세상에서는 하인이 주인을 섬기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주인이 하인을 섬겨서 주인으로 격상시킨다. , 하늘나라의 제자들은 성령의 지혜로 온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인노릇을 한다.

 

밤중에 오든 그보다 더 나중에 오든은 기도가 자기부정(自己否定)의 사건임을 가리킨다. 하늘나라의 혼인잔치는 자신과 싸워 이기는 과정을 수반한다. ‘밤중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내면의 상태이다. 이때 조갑증이 일어나서 실망하지 말고 계속 하느님을 믿고 기다려야만 한다. 성령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 지혜, 자유의 힘인데 어둠속에 잠긴 제자에게는 아직 그것을 알아볼 능력이 없다. 성령은 감각과 이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단순히 하느님께서 성령을 더 풍성하게 내려주시기를 기다린다. 제자가 하늘나라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동안에 하느님께서도 그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다.

 

하느님께서는 도둑이 몰래 들어오듯이 그렇게 제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신다. 도둑이 들어오기 전에는 그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도둑은 집안에 무엇인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제자에게 분명한 깨달음으로 자각된다. 집주인이 도둑을 막기 위하여 깨어 있듯이 제자는 언제든지 하느님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깨어 있다. ‘깨어 있음은 망덕이며 하느님을 맞아들임은 애덕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가실 수가 없다. , 망덕이 없이는 애덕도 없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이 비유는 저희에게 해당됩니까,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까?” 주님이 대답하였다.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하인은 누구이겠습니까? 주인은 그런 하인에게 집안일을 맡겨서 다른 하인들에게 제때에 적당한 양식을 내주게 할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그렇게 하고 있는 하인을 본다면 그 하인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주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하인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오랫동안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한다면, 주인은 기대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날에 올 것입니다. 주인은 그를 박살내어 불충한 자들의 운명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하인은 무거운 매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 매 맞을 짓을 적게 한 하인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많이 주어진 사람은 많이 요구받을 것이고, 매우 많이 주어진 사람은 매우 많이 요구받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이며 모든 사람은 일반 백성이다. 베드로의 질문인즉,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열두 제자들과 같은 특별한 엘리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의 대답은 베드로의 상상을 훌쩍 넘어선다. 하늘나라의 일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나 백성의 지도자이되, 하늘나라의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추방된다. 사람의 운명은 신분, 지위 등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행실에 의해 결정된다.

 

하인하녀는 몸과 마음을 가리킨다. ‘하인과 하녀를 때리는 것은 욕망을 추구하느라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이며, ‘제때에 적당한 양식을 주는 것은 신덕과 망덕이다.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은 각각 감성, 이성, 의지의 활동을 가리킨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감성, 이성, 의지를 부정(否定)하고 망덕, 신덕, 애덕을 실천한다. ‘불충한 자들의 운명은 영적 죽음이다. ‘박살낸다.’, ‘매를 맞는다.’ 등의 표현은 영적 죽음의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폭력을 휘두르시지 않는다.

 

는 망덕과 신덕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자초하는 사건이다. 백성을 하인 취급하면서 세상의 주인노릇을 하려는 스승은 오히려 하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권력자와 권력을 추종하는 자는 양쪽 모두 타인에게 의존하므로 하인이다. ‘무거운 매는 권력에 의존하는 거짓 스승의 고통이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생명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거짓 스승을 추종하는 백성은 스승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기가 쉽다. 자신이 죽을병에 걸려있음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많이 주어진 사람은 하늘나라의 제자이며 매우 많이 주어진 사람은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이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온 세상에 진리를 증언한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제자를 자처하면서 거짓을 진리로 포장하여 가르치는 스승은 세상에 이만저만한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신앙 공동체에서 높은 지위를 맡고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의 일을 하지 않는 거짓 스승은 무거운 매를 맺을 것이고 거짓 스승에게 거짓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벼운 매를 맞을 것이다. , 일반적인 신자가 거짓된 길을 따르면 자신만 멸망할 뿐이지만 교회 지도자가 거짓된 길을 따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추종자까지 멸망으로 이끈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세상 사람들이 감히 기대하지도 못하는 높은 차원의 지혜를 누리면서 세상의 주인노릇을 한다. 그러나 진리를 버린 하늘나라의 제자는 오히려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친다. 그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추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하늘나라의 제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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