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영화 더 콘서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2-25 ㅣ No.706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더 콘서트’


꺽인 열망을 꽃으로 피운 음악의 힘



페터 I. 차이코프스키! 이 위대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갖는 실제 위력을 아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스스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유명 교향악단과 협연하거나 아니면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어 협주곡 전체를 진두지휘 하거나인데, 그게 어디 우리 같은 범인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정경화, 정명훈 남매라면 혹시 모를까? 그러니 우리는 그저 유진 쉐퍼의 바이올린 독주에 삐엘 나라토가 지휘하는 벨기에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녹음 제작한 VMK의 음반에 기대어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더 콘서트>라는 영화를 보는 거다.

<더 콘서트>(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 극영화, 러시아 외 4개국, 2009년, 119분)에서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를 가감승제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도입부의 어수선함을 벗어나 바이올린 독주가 시작되면서 주제가 형성되고 그 주제를 교향악단이 받아 재생산하고 그 뒤를 이어 화려한 변주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이루어진 연주 뒤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럴싸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왜 지휘자 안드레이(알렉세이 구스코바)는 온갖 편법을 저지르면서 지휘봉을 잡으려 했는지, 왜 안느 마리 자케(멜라니 롤랭)의 바이올린 독주에 애절한 사연이 들어있는지, 왜 ‘레아를 위해’라는 한마디 문자 메시지에 득달같이 모든 단원이 달려왔는지. 그렇게 연주가 시작되고 의미심장한 표정들이 여러 번 오가더니 갖가지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음악이 갖는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마 감독은 그런 식으로라도 차이코프스키의 위대함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더불어 구舊 소련 공산당 정권이 안고 있었던 허위의식에 대해서도 일갈을 아끼지 않았다. 공산당의 추종자들은 순수한 클래식 음악마저 정치와 선전 도구로 사용했고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위대한 천재이자 러시아의 영혼인 차이코프스키를 모독한 것이었다.

부정적인 시각도 조금 보태보겠다. 연출 기법으로만 보면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적 효과를 노렸던 까닭에 모티브들은 이리저리 산만하게 배치했고 이야기 단위(시퀀스)도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개연성이 부족해 어떤 경우는 억지로 짜 맞추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디 세상이 이 영화에서처럼 허술하게 흘러가는가 말이다. 재미는 충분했지만 현실성은 많이 떨어졌다. 냉정한 분석을 일삼는 관객에겐 아마 만족을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볼쇼이 악단은 공산당 시절 전설적인 교향악단이었고 지휘자 안드레이와 바이올리니스트 레아는 최고의 역량을 가진 음악가였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만들어내려는 순간, 갑작스레 등장한 침입자가 지휘봉을 부러뜨리며 차디찬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인민의 적!” 그 한마디와 더불어 그들의 순수한 열망도 꺾이고 말았다. 독자들은 영화를 보면서 꺾인 열망이 어떻게 다시 꽃을 피우는 지 목격하게 될 것이다.

* 박
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2월 23일,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1,67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