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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도미니코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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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16 ㅣ No.645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도미니코 수도회 (상)


청빈한 삶 지키며 설교로 영혼 구원

 

 

- 이탈리아 로마 산타 사비나성당에 걸린 성모 마리아가 도미니코 성인과 가타리나 성녀에게 묵주를 건네시는 그림. 두 성인 때는 교회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대였다. 도미니코 수도회 제공.

 

 

‘설교자회’라고도 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는 도미니코 성인(1170~1221)이 1216년 설교를 통한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탁발 수도회다.

 

1170년 4월 스페인 칼레루에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도미니코는 어렸을 때부터 깊은 신앙을 배우고 체험하며 성장했다. 수석 사제인 외삼촌의 도움으로 일찍이 성직자의 자질을 쌓을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184년 18세에 팔렌시아(Palencia)대학에 입학한 성인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사제로 서품된다. 1203년 오스마교구장 디에고 주교와 함께 외교 사절로 북유럽 여행길에 나선 성인은 알비파(Albigenses) 이단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 현실을 목격했다. 이단에 빠져있던 여관 주인과 밤새 토론하며 바른 신앙의 길로 되돌아오게 했던 성인은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성소를 깨달았다. 자신의 관상 생활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같이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 전파에 주력하는 설교자들의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성인이 살았던 12~13세기 유럽은 정치·경제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인구 증가와 도시의 발달, 국가들 출현이 있었지만 사회는 빈곤한 상태였다. 교회는 또 내부적으로 각종 이단 단체들의 위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 십자군 전쟁으로 외부적으로는 이슬람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인은 당시 교회를 위협하던 알비파 이단의 오류를 지적하고 정통 교리를 전파했다. 교회를 수호하는 설교자 수도회 창립으로 성인은 혼란한 교회를 굳건하게 하고 이후 신항로 개척에서 선교라는 복음적 메시지에 충실하게 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그는 1215년 1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첫 형제들의 공동체를 설립하고, 1217년 1월 ‘설교자들’ 칭호를 교황 칙서로 인가받음으로써 교회 최고 당국자 이외에는 최초로 설교 직무를 수행하게 된 수도 공동체가 됐다. 그때는 이단이나 신흥종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대였던 만큼 주교 외에 사제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설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도미니코 수도회는 개인 차원이 아닌 수도공동체 차원으로 설교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는 데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에 앞서 성인은 1206년 프랑스 프루일에서 여성들의 공동체를 세웠다. 이는 ‘도미니코 관상 수녀회’의 기초가 된다.

 

수도회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회칙과 프레몽트레 수도회 규칙을 토대로 절대 청빈에 바탕을 두는 한편 세속 가운데 살면서 사람들의 회개와 개종을 촉구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적극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성인의 생전에 이미 급속한 발전을 이뤘고, 사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진리 수호와 설교를 통해 교회 성장에 이바지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6월 14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도미니코 수도회 (중)


관상으로 깨달은 진리, 설교로 전파

 

 

프라 안젤리코의 ‘성 도미니코’.

 

 

도미니코 성인이 설교자들의 공동체를 설립할 때 표본으로 삼은 말씀은 일흔 두 제자의 파견(루카 10, 1~12)과 초대 교회 공동생활(사도 4, 32~33)이었다. 이렇듯 도미니칸들은 설교를 위한 영성의 기초를 관상에 둔다.

 

그 관상은 세상과 격리된 채 이뤄지는 은수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과 조화를 이루는 선교적 차원으로 풀이된다. 설교는 관상의 결실을 전하는 것이며 공부는 설교 준비를 위한 관상의 방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도미니코 성인은 설교자들의 삶의 전형을 사도들의 선교 활동에서 찾고자 했다.

 

도미니칸의 모토는 ‘진리’(veritas)다. 관상을 통해 체화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교함으로써 궁극적인 인간의 행복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봉사한다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에(마르 16,15) 진리를 전파함으로써 파견된 제자들에게 부여한 사명을 이어받게 하는 것이다. 그 진리는 어둠 속에서도 드러나며, 어떠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이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거룩한 분을 흠숭하도록 믿는 영혼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도미니칸 설교는 언어로서 진리를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음악, 문학, 조각, 교육, 자선 활동 등 다양한 개인의 능력으로 하느님 섭리를 드러낸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그들 재능을 통해 거룩한 진리를 알게 된다면 설교의 목적과 방법은 구체적으로 표징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달란트가 하느님 도구로 사용되어 진다는 것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도미니칸들은 거룩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연구에 주로 몰두했고 이를 위한 침묵을 강조했다. 또 거룩한 진리에 대한 연구가 방해받지 않도록 간결하고 활기찬 성무일도를 노래로 바쳐왔다. 이는 수도회 회원들이 세상 안에서 그분 말씀 선포를 위한 설교 영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수도회는 설립 당시 봉쇄적인 관상 수도회와 활동에 전념하는 두 가지 유형의 수도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수도 공동체를 형성했다. 설립자 정신을 요약하는,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Contemplari et contemplata aliis tradere)는 모토는 관상의 중요성과 사도직 소명을 통합하는 수도회의 사명과 목적을 잘 드러낸다.

 

첫 회헌(1550)에서도 ‘우리 수도회는 시초부터 관상한 것을 알리고 설교하며 가르치는 것을 특별히 본질적이고 원칙적인 목적으로 삼아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역대 교황들은 여러 임무에서 도미니코 수도회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 안에는 원정하는 십자군에 대한 격려 설교와 교회 내 도서 검열 등도 포함된다. 이단 심문 재판소 재판관도 주로 맡았기에 ‘정통 신앙의 파수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大) 알베르토, 토마스 아퀴나스, 트리엔트공의회 후 교회를 이끈 비오 2세 교황 등 많은 성인들도 배출했다.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수많은 선교사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6월 21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도미니코 수도회 (하)


자율성과 민주성에 바탕 둔 공동선 추구

 

 

- 2012년 성 로사리오 관구가 있는 홍콩에서 수련을 마친 아시아 신학생 수사들(둘째 줄 검정색 복장)이 첫 서원식 후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도미니코수도회 제공.

 

 

도미니코수도회 공동체는 교회 이름으로 회원들에게 일방적인 순명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자발적인 청빈과 자발적인 순명, 그리고 자발적인 정결을 통해서 관상을 이뤄내도록 한다. 이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세상은 다양성 안에서 그분 사랑이 드러나는 것이지 획일적이고 단순한 창조성에서 통합되는 전능하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미니칸 영성에서 바라보는 전능하신 분은 각 고유의 생명에로 당신의 거룩한 창조성을 오늘도 이루시고, 다양한 형제들의 조건과 상황에서 당신 섭리를 드러내시는 분이다. 그런 면에서 도미니칸의 삶은 각자 자율성과 민주성에 바탕을 두고 공동의 선을 위한 책임성을 갖는 것이며, 이것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신원과 정체성에로 소명을 스스로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도회 한국진출은 1990년 5월, 3명의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으며 시작됐다. 1992년 12월부터 성소자 모임을 시작하며 한국인 지원자를 받았고 1994년 11월 8일 서울 미아리 소재 수도원 축성식이 거행됐다.

 

그러나 한국과의 인연은 이를 훨씬 앞선다. 1587년 도미니코수도회는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성 로사리오 관구를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하였거나 교회가 뿌리 내리지 못한 지역의 복음화였다. 그리고 주요 활동지는 필리핀과 동양이었다. 성 로사리오 관구와 한국은 복자 성 도미니코의 요한이 조선 선교를 준비하며 일본에서 기다리던 중 순교한 데서 연고를 찾을 수 있다.

 

이후 1971년 김인중 신부가 서원하면서 수도회는 다시 한국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1982년 수도회 아시아 총회에서 한국진출이 논의됐는데, 이때 성 로사리오 관구가 한국에 관심을 표명했고 1987년 다시 열린 아시아 총회에서 성 로사리오 관구에 수도회 한국 선교가 위임됐다. 같은 해 11월 로마 본부에서 총장이 이를 허락하며 진출 노력이 본격화됐다.

 

현재 한국 도미니코회의 양성은 입회 후 한국에서 1년, 해외에서 1년의 청원기를 보내며 국제공동체 공용어인 영어 습득과 수도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익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또 홍콩 수련소에서 최소 1년의 수련기를 보내야 하며 서원 후에는 회원 상황에 따라 마카오 요셉 신학교에서 학부 과정(신학, 철학)을 마쳐야 한다.

 

특별히 양성 과정에서는 아시아 지역 형제들과 함께 다양한 설교 영성의 경험을 위해 각 지역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도움을 받는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도미니코수도회 한국 공동체는 서울 수유동과 경기도 안산 일동에 공동체를 두고 있으며, 500년 역사를 지닌 로사리오 신심회와 도미니칸 평신도(재속회) 회원들이 지역 교회와 가정에서 보편적인 선과 평화를 이루도록 지도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본당 협력 사업과 함께 그룹홈 시설(발달장애인, 탈북 어린이)을 운영하고 있다. 또 안산에서는 지역 교회에 협력하면서 신자들이 소속된 교회와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6월 28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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