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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메리 크리스마스 - 영원히 멈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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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26 ㅣ No.1276

[영화 칼럼]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 2005년 감독 크리스티앙 카리옹


영원히 멈추게 하소서!

 

 

해마다 성탄절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경배합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는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 땅에 자비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평화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주시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주님의 섭리를 따르려는 인간의 의지이며 실천입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그것을 보여줍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프랑스 북부 전선. 불과 100m 거리를 두고 독일 군대와 프랑스, 스코틀랜드 군대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전투로 젊은 생명들이 무참히 쓰러집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불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망과 고통의 신음 소리가 이어지는 그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옵니다.

 

독일군에 성탄 트리가 전달되고, 성악가인 장교 슈프링크는 황제의 특혜로 면회를 와서, 후방으로 가자는 아내 안나에게 “오늘 밤만은 동지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때마침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고향을 꿈꾸네>를 합창하고, 그 노래가 끝나자 슈프링크가 어느 병사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면서 전쟁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크리스마스이브 하루 동안만 휴전합시다.”

 

독창은 합창이 되고, 독일군의 성탄 트리가 참호 밖에 세워지자, 병사들은 총을 놓고 걸어 나와 한자리에 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의무병으로 참전한 팔머 신부의 백파이프 연주에 독일 병사들이 <어서 가 경배하세>를 부르고, 안나의 <아베마리아> 열창에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언어가 달라도 샴페인과 포도주를 나눠 마시고, 초콜릿과 담배를 건네주고, 지갑에 간직한 아내의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그들은 적이 아닌 ‘서로 마음을 함께 하는 이웃’이 됩니다. 미사를 집전한 팔머 신부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한겨울에 불가로 끌리듯 제단으로 왔습니다. 어쩌면 함께 있기 위해, 어쩌면 전쟁을 잊기 위해.”

 

그들의 성탄절 기적은 하루 더 이어집니다. 세 나라 병사들은 들판에 버려두었던 동료들의 시신을 모두 거두어 묻어주고, 후방에서의 포격을 서로 알려주고는 함께 참호로 피해 목숨을 지켜줍니다. 각자 자리로 돌아갈 때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서로가 살아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니 더 이상 총부리를 겨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기며 그들을 전쟁터로 내몬 자들은 그 ‘평화’를 적군과 놀아난 반역으로 규정해 팔머 신부를 쫓아내고, 독일군 부대는 해산됩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팔머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생애 가장 중요한 미사로 인도하셨다.’고 믿고, 독일 병사들은 참혹한 러시아 전선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애잔하게 스코틀랜드의 <고향을 꿈꾸네>를 콧노래로 부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1914년 겨울, 독일 점령하의 벨기에 이프레스 지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그날의 ‘기적’을 만든 군인들은 계속된 전쟁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려는 평화는 성탄절 하루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 땅에 어떤 전쟁도 영원히 사라져,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체가 언제나 공존의 기쁨을 누리는 평화를 빕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1년 12월 26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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