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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토닥토닥: 부모도 자녀를 가스라이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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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5 ㅣ No.1088

[박예진의 토닥토닥] (31) 부모도 자녀를 ‘가스라이팅’ 한다?

 

 

방학에도 갖가지 공부를 하러 학원에 다니느라 하루하루가 바쁜 대학생 수진씨는 마음이 참 버겁습니다. 사실 이번 방학에는 친한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엄마 뜻에 따라 집과 학원밖에 몰랐던 수진씨에게는 참으로 야심차고도 상상만 해도 즐거운 계획이었죠. 하지만 그 계획은 이번에도 엄마의 한마디에 무너졌습니다.

 

“정신이 있어, 없어? 취업 준비하기에도 빠듯한데, 뭘 해? 제주도 한 달 살기? 그런 데 낭비할 시간이랑 돈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나중에 취직하고 나서도 얼마든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하고 학점 따는 것에만 신경 써.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니까 군소리 말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

 

그러고서 엄마는 등록할 학원 리스트와 등록비를 내밀었습니다. 자신보다 더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는 엄마 마음을 알기에 수진씨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수진씨를 안타깝게 여겼지만, 수진씨는 왠지 모르게 친구들이 자기를 한심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생이 된 마당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무기력했으니까요.

 

요새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참 흔해졌지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연극 ‘가스등’(1938)에서 유래했습니다. 연극 속 남편은 아내가 스스로를 미쳤다고 의심하도록 만들어 아내의 현실감각, 판단력, 기억력에 영향을 주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도록 정신적인 조종을 했습니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누군가를 자기 의지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수진씨도 마찬가집니다. 엄마가 딸을 염려해서 그런 건데 가스라이팅이라니,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걱정과 애정이 과연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자녀의 기를 죽이고 부모에게 더 의존하게 하면서 죄책감을 갖도록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네가 스스로 못하니 엄마가 이러는 거잖아”, “네가 조금만 신경 써서 잘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겠어? 아빠 말대로 해!”라는 식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며 부모의 뜻대로 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진정 자녀를 위한 걸까요? 세상에 어느 누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프게 하나요? 그건 사랑한다는 명목 아래 가려진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걱정되고 좋은 길로만 이끌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까지나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며, 언젠가 부모는 생을 다해 자녀를 두고 먼저 떠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자녀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키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녀를 내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자녀는 괴로워지고 불행해집니다. 물론 부모인 이상 자녀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나의 의견을 강요하고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보다는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함께 좋은 길을 모색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고 자녀와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힘을 ‘오용’하는 것이 아닌,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 자신, 관계, 자녀 양육, 영성 등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메일(pa_julia@naver.com)로 사례를 보내주세요. ‘박예진의 토닥토닥’을 통해 조언해드리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8월 14일, 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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