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5일 (토)
(녹)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강론자료

사순 1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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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2-02-23 ㅣ No.354

사순 제 1 주일 (가해)

         

        창세 2,7-9.3,1-7   로마 5,12-19   마태 4,1-11

     2002. 2. 17.

주제 : 유혹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사순 첫 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사순절이 어떤 때’인지 아실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반복한다면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곤란한 인생의 문제들을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는 삶의 자세로 겪어내신 예수님을 본받자고 교회가 정한 특별한 시기입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을 겪어내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본받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과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생각이 거기에서 멈춘다면 진정한 사순절을 지내는 마음자세에서는 부족한 자세라고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보다 앞서서 겪은 유혹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사순절이면 반복하는 성서내용이고, 사순절에 피정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한번씩은 거치는 내용이기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고 끝낸다면 예수님은 우리 삶을 보시고 몹시 슬퍼하실 일입니다.

 

사람의 삶에 유혹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잠자리에서 10분만 더...’하는 일,  ‘오늘은 몸도 찌뿌드드한데 그냥 이대로 하루를 쉬고 내일 나가서는 무척 아팠다고 말해버려?’,  혹은 ‘성당에 가는 것도 오늘은 하루 쉴까? 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느님이 알아도 나를 혼내실까? 자비하신 하느님이라고 하셨는데 쫀쫀한 분이야 아니겠지......’라고 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를 정상적인 삶에서 잘못된 길로 이끌어내려는 유혹들입니다.  물론 거기에 굴복해서 주저앉는다면 짜릿한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어디까지나 유혹일 뿐입니다.  유혹이 우리 삶에 드러나고 싶을 때, 그 유혹이 갖는 목적은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우리가 하느님에게 멀어져도 별다른 부담 없이 살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가온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대처하신 방법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못한다, 주님이신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 올바로 경배하고 섬길 분은 우리 삶을 파괴하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유혹자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한분 뿐’이라고 대답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삶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응답하시는 예수님과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 서 있는지, 또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이 지난 과거 모습을 돌아보는 일은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서기 때문이고,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기억되는 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앞서 들은 창세기와 로마서에 나오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사람이 왜 그렇게 잘못된 길로 나가면서도 돌아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차례 읽었고, 그에 관해서 생각했을 내용이기에 이것 역시도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만,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해서 하셨던 말씀과 하느님이 밝히신 뜻에 대해 ‘내 삶을 구속하고 나에게 부담스러운 것이기에 피해야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고,  그 두 번째는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자기 맘대로 가려고 했으면서도 인간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왜곡한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① 하느님이 만드시고 특별한 명령을 내린 과일나무를 쳐다보면서 탐스럽게 보이고 맛있어 보였다 ② 하느님은 ‘과일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교묘하게 접근하는 악마의 유혹을 알아채지 못하고 ‘죽지 않으려거든 따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왜곡시켜 놓고 나서 훗날 ‘하느님 때문에 내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유혹자는 정확하게 공격해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유혹이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경우는 ‘내가 유혹자를 불러들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알아보려고 유혹자를 보내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제 삶을 돌이켜봐도 쉽게 아는 일입니다. 제가 일부러 잘못하려고 일을 꾸미고 남에게 욕을 먹을 일을 만들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경우 제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에 범한 잘못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고 같은 잘못을 계속 고집해서 만들어내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뜻과 비교해서 내 생각이 옳은 경우가 있기는 해도 하느님의 뜻을 어기거나 하는 차원에서 산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 좋은 대로 알아듣고 자기 생각을 담아 말했던 아담과 하와의 행동을 보면 잘못 나가는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다 벗어던지는 자유로움’ 대신에 ‘무화과 잎을 엮어 자기 앞을 가리는 구속을 오히려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만든 삶의 결과에 대해서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이 주신 자유로움을 버리고 왜 스스로 구속을 택했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면서도 우리도 삶에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지 돌아보는 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생활로 돌아오는 일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강조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돌아올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각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느님의 요구사항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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