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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갈매기 - 현실이라는 무대, 절망이라는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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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4-09 ㅣ No.715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갈매기’


현실이라는 무대, 절망이라는 장막



원작 안톤 체홉

그간 ‘갈매기’ 하면 두 번 생각 할 것 없이 ‘부산 갈매기’ 라고 당당하게 외쳤는데 어느새 저 유명한 체홉의 「갈매기」가 내 인생에 끼여들었다. 그것도 연극사에 길이 남을 작가의 4대 희곡 - 「바아냐 아저씨」, 「갈매기」, 「벚꽃 동산」, 「세자매」 - 중에 하나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여배우인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애인이자 유명 작가인 ‘뜨리고린’이 오빠 ‘쏘린’의 집으로 내려오고, ‘아르까지나’의 아들 ‘뜨레쁠레프’가 자신의 연인인 ‘니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올리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망쳐버린 연극 상연 이후 자신의 연인 ‘니나’의 마음이 떠났다고 생각한 ‘뜨레쁠레프’는 자신이 쏘아 죽인 갈매기를 ‘니나’의 발치에 던지고는 자신도 곧 이 갈매기처럼 죽을 것이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암시하고는 권총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한편 낚시를 하다 돌아온 작가 ‘뜨리고린’과 마주친 ‘니나’는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딱 봐도 인간 군상이란 말이 떠오르듯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가 한편의 연극 안에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그 누구 하나 자신의 삶에 만족한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극 중 갈등의 구조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목마름으로 나타나고 이는 때로는 변형된 모습, 곧 더 높은 삶으로의 갈망, 몰이해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서로의 이야기는 흩어지고 함께 있어도 서로에게 상처만을 줄 뿐이다.

누구는 부산 갈매기를 노래하며 ‘너는 나를 벌써 잊었나’를 외치고 누구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단다. 소유하려고만 들고, 이해 받으려만 들고, 이용하려고만 하면 그 사랑은 진짜 눈물의 씨앗이렸다. 소유하지 않아도, 이해 받지 못해도, 이용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그 사랑 위에 동동 떠 있을 수는 없는 것인지. 아니, 사랑보다 근본적인 것이 있다. 성공하지 않아도, 잘나지 못해도, 많이 갖지 않아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인생이 있다. 성공해야만 인생인가. 잘나야만 인생인가. 많이 가져야만 인생인가. 다만 끝간데 모르는 만족을 탐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원죄이리라.

‘뜨레쁠레프’에게는 ‘니나’가 있었다. ‘뜨리고린’에게는 ‘아르까지나’가 있었고, ‘마샤’에게는 ‘메드베젠코’가 있었다. ‘뜨레쁠레프’에게는 ‘꿈’이 있었고, ‘니나’에게는 ‘희망’이 있었으며 뜨리고린에게는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절망이라는 장막에 싸여 자신의 주머니에 채워진 것을 보지 못하고 빈 주머니만을 채우려 든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가진 것 중 유일한 것인 하나 뿐인 생명을 스스로 빼앗아 버리고 가차없이 껍데기만 남겨둔 채 박제해 버린다.

더 이상 삶을 소비하지 말자. 없는 것을 바라보고 채우기에는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다.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나를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명백히 살아 숨쉬고 있다. 최소한 저 푸르디 푸른 하늘이 있는 한, 나를 잊고 살아가는 부산 갈매기가 있을지언정,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그 날까지 숨쉬고 또 숨쉬어야지 않겠는가.

*
유승원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6일,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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