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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천 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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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5-12 ㅣ No.720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천 개의 눈’


평생의 거짓말 … 수치 질투의 이야기



2013. 9. 4 ~ 22 남산 예술 센터 / 정영훈 작, 박해성 연출

늦은 밤 주택가 도로를 달리다가 횡단보도 신호에 걸렸다. 좌우를 살펴보았지만 그 늦은 시간에 횡단보도를 건널만한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더욱이 경광등을 밝히고 있는 경찰차도 없다. 순간 고민에 빠진다. 신호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파란 불이 다시 빨간 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루어 짐작컨대, 저 물음의 답은 두 개로 나뉜다. 융통성을 발휘해 좌우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횡단보도를 지난다는 것과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안전하게 통과한다 일 것이다. 그럼 질문을 한번 바꿔보자. 자,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사내가 있다. 다시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로’ 왕의 침전 환관인 ‘미사’는 환관된 자의 본능으로 닥쳐올 격량에 대해 몸을 떨며 입을 여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변방의 호족과 백성들에 의해 축출될 위기에 몰린 자로 왕은 곁에 남은 유일한 신하인 환관 미사에게 자신이 마지막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를 묻자 그는 자로에게 ‘타로의 미궁’으로 피신할 것을 간한다. 이로부터 그간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용과는 다른 자로의 과거와 타로의 미궁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자로 왕은 미궁의 주인인 타로로 다시 분하여 연기한다. 누구도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말이 있다. ‘신 앞에 선 단독자’.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病)」 에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 갈 것을 말한 바 있다. 이와 맞닿아 있는 단어를 공자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 사서삼경 (四書三經)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행동하라’는 뜻의 ‘신독’(愼讀)을 말한 바 있다.

그간 어디서도 접할 수 없었던 수려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이 연극은 분명 수치와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로 왕은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평생 거짓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숨겼음에도 숨겨지지 않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수치심을 자신의 등에 업고 살아야만 했다. 감추고 싶었으나 스스로에게만은 더더욱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부끄러움.

숨겨도 드러나는 것이라면 숨기지 말자. 하느님을 마주하고 살자. 하느님 앞에 서서 살자.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어지러운 말들을 뒤로한 채 몸으로 뛰어 들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거울을 들여다 보듯 내 마음을 하느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보자. 생각보다 쉬운 것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윤리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이유를 계속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찾으며 변명하려 한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사람들에게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갈 것을 요구했다. 신이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나 외에 다른 것에 책임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분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결단하고 노력하며 살라는 뜻이다.

*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5월 4일,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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