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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드라마도 예언적 기능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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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5-25 ㅣ No.724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드라마도 예언적 기능을 하는가



이야기에는 예언자적인 힘이 있다. 인물의 삶을 기승전결로 엮은 이야기는 직설적인 담화보다 매력적이다. 쓴소리를 대놓고 듣는 것보다는 가상의 설정에 현실을 이입해 상상하거나 비유 코드를 해독하는 편이 재미도 있고 거부감도 덜한 덕분이다. 성경에도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욥기」, 「토빗기」처럼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책도 있지만, 예수님뿐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들도 비유로써 당대의 부조리를 꼬집었고(판관 9,7-12 2사무 12,1-15), 이민족의 왕이 꿈이나 환시의 형태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창세 41장 다니 2.4.5장). 성경 속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이미지의 시대인 오늘날, TV 드라마는 대중을 매혹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다. 완성도와 보편성을 성경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미니시리즈 현대극을 위주로 최근작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불의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감지된다. 이들이 겨냥하는 소재는 물신 시대의 탐욕이다. 출세에 목마른 여인이 부와 명예를 위해 동창의 시녀 노릇을 자청하고(JTBC <밀회>), 우연히 살인을 저지른 공직자가 제 죄를 덮으려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KBS2 <골든 크로스>), 재벌 회장이 친아들을 살리겠다고 남남인 청년을 끌어들여 죄를 뒤집어씌우는(KBS2 <빅맨>) 식이다. 도박장(MBC <트라이앵글>), 부도덕한 법률회사(MBC <개과천선>) 등의 배경은 고삐 풀린 탐욕을 묘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드라마 작가들은 권력자들의 만행으로 분노를 유발한 다음, 정의롭고 순수한 주인공의 최후 승리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악인의 몰락 또는 회개로 마무리되는 드라마의 결말을 보노라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하던 성경 저자들과 드라마 작가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드라마도 예언자적 기능을 하는가. 현대사회의 비극은 권력에 대한 굴복, 불공정 거래, 노동 착취, 복지의 부재 등 불의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드라마들은 권력자의 ‘개인적 일탈’과 원한관계에 천착하지, ‘구조적 죄’를 성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본의 횡포를 고발하면서 자본에 의존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현실을 비판하는 드라마의 제작비를 대며 직, 간접 광고 효과를 거두는 것은 다름 아닌 대기업들이다. 그들은 드라마를 광고의 매개체로 쓰기 위해 잠시의 비난을 감수한다. 자신의 권력은 양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남의 아내를 빼앗고도 무자비한 부자의 비유를 알아듣지 못한 다윗에게 예언자 나탄은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쏘아붙였다. 예수님도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못 알아듣는 자들과는 격렬한 설전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오늘의 드라마는 어떨까. 가상의 권력을 비판하지만 현실의 권력을 겨누지 못하고, 자본을 비판하지만 자본 없이 존재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것은 미지근한 반쪽짜리 예언서가 아닐까.

* 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4년 5월 25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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