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종교철학ㅣ사상

과학칼럼: 신앙과 과학은 조화될 수 있는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11 ㅣ No.498

[과학칼럼] 신앙과 과학은 조화될 수 있는가?

 

 

지난 연재까지 퍼즐 풀이 혹은 문제 풀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자연과학이 지닌 힘과 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과학은 일종의 문제 풀이입니다. 특히 현대 자연과학은 자신의 문제 풀이의 영역을 좁히고 구체화하고 그 방법을 단순명쾌하게 가다듬었고, 덕분에 과학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성공은 아주 중요한 것을 희생함으로써 얻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체성, 통합성, 가치성입니다. 어떤 점에서 이는 당연합니다. 과학의 문제 풀이는 지극히 세부적인 전문분야 안에만 적용되고, 이를 무리하게 ‘전체’로 확장시키거나 서로 다른 문제 풀이의 방법과 결과들을 억지로 ‘통합’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맙니다. 또한 ‘가치’는 처음부터 양(量)이나 수(數)로 표현 · 측정될 수 없는 것이기에 과학에서 다루기에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대상입니다. 그러니 ‘가치’는 과학에서 다룰 수 없고, 다루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전체성, 통합성, 가치성은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주로 다루게 됩니다. 오늘날 자연과학의 눈부신 성공으로 말미암아 인문학이 힘을 잃고 주변으로 밀려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이 일찌감치 내려놓고 간 것들, 곧 전체성, 통합성, 가치성에 대한 질문과 열망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도킨스와 같은 이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을 넘는 차원을 이야기할 때, 인문학 특히 철학은 그 오류를 간파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다시 잡아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철학은 질문으로 시작하여 질문으로 끝나곤 합니다. 특히 인간과 세상의 궁극적 기원과 목적에 대한 질문 앞에서, 철학은 그 질문을 예리하게 가다듬기만 할 뿐,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훌쩍 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이 철학의 품에서 태어날 당시부터 간직하고 있었으나 ‘문제 풀이’의 효율성을 위해 결국 놓아버린 질문, 철학이 언제나 붙잡고 고민하였으나 끝내 ‘답’을 주지 못한 그 질문, 바로 인간과 세상의 궁극적 기원과 목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우리에게, 나아가 인류 전체에 길을 알려주고 빛을 밝혀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가톨릭 성직자이기에 너무 쉽게 말한다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신앙을 일종의 주관적 신념으로만, 심지어는 삶의 부차적인 ‘액세서리’로 여기는 이 시대에 감히 과학과 철학을 넘어 우리에게 궁극적인 답을 주는 무엇으로 신앙을 내세우다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대야말로 더욱더 ‘객관적 진리’로서의 신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리’로서의 신앙은 ‘사실들의 집합체’인 과학과 모순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상호 간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합니다.

 

[2023년 9월 10일(가해)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5면, 조동원 안토니오 신부(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6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