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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신자들의 인사말의 탄생과정 - 찬미 예수, 그리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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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2-23 ㅣ No.106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신자들의 인사말의 탄생 과정

 

찬미 예수, 그리고 아멘

 

 

한국교회가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던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의 입에서는 우리말로 “찬미 예수”라는 인사말이 나왔다. 당시 교황은 우리나라 곳곳을 두루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또렷한 발음으로 “찬미 예수”라고 인사했다.

 

“찬미 예수”는 ‘예수를 찬미합시다(laudate Jesum).’라는 문장을 줄여서 표현한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박해시대에 신자들이 사용하던 인사말이었다. 그들은 이 인사말로 자신들이 받들어 본받으며 찬양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시시때때로 확인해 나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 이 인사말은 교회 안에서조차도 점차 생소해져 갔다. 이 인사말의 깊은 뜻과 전통을 되살리는 데에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행사가 한몫했다.

 

 

믿는 이들의 인사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인사말인 “안녕하십니까?”의 안녕(安寧)이란 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하며, ‘평안’ 또는 ‘평화’와 맥이 통하는 단어였다. 중국인들도 ‘평안(平安)’이라 말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중동 지방 사람들은 샬롬(shalom), 곧 평화를 뜻하는 단어로 인사하고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인사말로 ‘평화(pax)’를 기원했고, 이 전통은 가톨릭교회의 전례 안에까지 수렴되었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사 중에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우의를 확인한다. 이렇듯 인간 개인이나 상호관계에서는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많은 나라의 전통에서는 평화라는 뜻을 간직하고 기원하는 인사말이 나왔다.

 

그러나 입말과 달리 글말에서는 인사말이 좀 더 다양해질 수 있다. 1801년 박해 당시 전주의 순교자 이순이 루갈다는 어머니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 말미에 재배상서(再拜上書), 곧 “두 번 절하고 편지를 올립니다.”라는 당시의 투식에 따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반면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약자(JMJ)를 글머리에 썼다. 이 같은 편지의 투식은 최양업 신부에게서도 확인된다. 이 인사말은 19세기 당시 유럽인 선교사들 사이에 널리 쓰이던 투식이었다.

 

이 인사말은 ‘예수 마리아 요셉’으로 이루어진 성가정을 모범으로 삼으려던 노력의 표현이었다. 아마도 이 말이 조선교회에도 전해져서 신자들은 점차 ‘예수 마리아 요셉’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들의 신앙을 확인했으리라 생각한다.

 

 

“찬미 예수”의 탄생

 

“찬미 예수”라는 인사말은 아마도 김대건 신부 이후 어느 시점에서 태어났으리라 막연하게나마 짐작했다. 그런데 이 인사말의 탄생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선교지방에서 아름답고 좋은 또 하나의 실천규범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 신부들이 교우를 만났을 때나 또는 기도실에서나 성무로 그들을 접견하게 되었을 때는 물론, 교우들끼리 만났을 때도 서로 ‘찬미 예수’(조선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라는 말입니다), ‘아멘’이라고 신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렇게 하여 700일 한 대사를 수월히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교우들은 외교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귀는 있지만 듣지를 못하고, 혀는 갖고 있기는 하나 대답을 못하지요. 저는 비단 저의 관할구역뿐만 아니라 전체 지역에서 신자들이 좋은 실천의 문턱에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첫 번째 성직에 만족하고 있습니다”(칼레, 1862. 10. 미리내에서 보낸 서신).

 

이와 같이 칼레 신부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의 동료들에게 보낸 서한 기록을 살펴보면, “찬미 예수”는 1862년 10월 이전 어느 날 조선 땅에서 태어났음이 확인된다. 이 인사말을 탄생시킨 아버지는 우리 교회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수고하던 선교사였다. 그리고 이 말을 기른 어머니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면서 고통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우리나라 교회였다.

 

1862년 이후 신자들은 서로 만날 때면 “찬미 예수”라는 인사를 건냈고, ‘아멘’이란 말로 화답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러한 관행을 장려하고자 이 인사를 나눌 때마다 ‘700일 한대사(限大赦)’를 약속했다. 박해시대의 신도들은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대사(全大赦)와 한대사를 받을 수 있는 기도와 각종 선업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사는 고해성사로 이미 사함을 받은 죄에 따르는 잠벌(暫罰)을 사면시켜 주는 특전을 말한다. 잠벌은 보속할 죄벌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연옥에서 받게 될 잠시적인 벌이다. 전대사는 잠벌을 모두 면하게 해주는 사면행위를 뜻한다. 한 대사는 지상에서 일정한 기간의 선행을 통해 삭감 받을 수 있는 잠벌의 제한적인 감면을 의미한다.

 

신도들은 기도와 선업을 통해서 대사를 얻을 수 있고, 이 대사를 연옥영혼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신도들은 보통 이 대사를 연옥영혼, 특히 아무도 기억해 주는 이가 없는 가장 버림을 받은 영혼을 위해 양보했다. 이러한 신도들의 행위는 죽은 조상의 음덕을 기대하며 풍수에 따라 조상의 묏자리를 정하던 당시 조선의 관행과는 판이한 일이었다. 신도들은 오히려 살아있는 자신들이 돌아가신 분들의 궁극적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선행을 실천했다. “찬미 예수, 아멘”이란 인사말에는 바로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고, 예수를 삶의 중심에 모시려던 새로운 결의가 들어있었다.

 

 

남은 말

 

대사를 부여하는 일은 교구장 이상의 직책에 있는 성직자만이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찬미 예수”라는 인사말을 결정했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이러한 결정은 그 당시 베르뇌 주교가 머물러 있던 서울에서 이루어진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인사말의 탄생 과정은 칼레 신부의 편지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리내도 이 인사말과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닐 것이다. 그곳에 “찬미 예수”를 기념하는 푯돌이라도 하나 세워 신앙의 선조들이 남겼던 그 결의를 새롭게 하고 싶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 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5년 1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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