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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기도 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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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7 ㅣ No.1083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기도 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신앙인 삶 그 모든 순간은 하느님과 함께

 

 

찬미 예수님.

 

기도 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갑자기 웬 기도 생활 이야기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실 분이 혹시 계실까요? 이 연재의 제목이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죠? 그런데 어떠세요? 이 글을 보시면서 ‘아, 기도란 게 이런 거구나. 나도 이제 쉽게 기도할 수 있겠다’하는 마음이 드시나요?

 

기도를 제목으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 기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룬 내용이 거의 없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라는 이 글의 전체 주제가 많이 흐려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의 주제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기도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기도 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이번 연재의 마지막 원고입니다. 그래서 연재를 마무리할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다루었던 내용을 정리해서 남은 시간 동안 말씀드려야겠다고 계획했었죠. 그런데 연재를 늘이기로 정하면서는 계획을 바꿔서 또 다른 내용으로 지난 몇 주의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용을 계속 이어나갈 텐데요, 그래도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지 않은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지난 내용들을 정리해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 초에 처음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목을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로 정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신앙인의 영성 생활 전반에 대해서 다루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왜냐하면, 기도는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삶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끊임없이 기도’(1테살 5,17)하라는 성경 말씀 그대로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루 스물네 시간을 계속해서 기도하기 때문에 우리 삶이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등의 모든 것이 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곧 미사나 성체조배, 묵상기도 등 어떤 형식을 갖춘 모습만을 기도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것을 잘 해나갈 때 기도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본연의 의미에서의 기도는 훨씬 더 넓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기도란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모든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맺게 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내적으로 맺게 되는 나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라는 것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로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기도 생활을 잘 하고 있느냐는 물음은 결국 하느님과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느냐는 물음으로 바꿔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말씀드리면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우리 삶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기도는 곧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것, 그리고 이 대화는 정해진 주제나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다 나눌 수 있는 대화라고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소한 모든 것까지도 다 알고 싶어 하시는 분, 그래서 늘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니?” 하고 물으시며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우리는 일상의 체험 안에서 만나게 되고 또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하느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그럼으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을 내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체험하고 느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느님의 ‘현존하심’에 대한 의식이 일깨워지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현존을 계속해서 느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영성 생활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영-썽’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죠? 영성이라는 말 자체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영성 생활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는 차원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영적인 차원을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일상에서 알아차리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영성 생활이고 또 영적인 인간의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육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육적인 방식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 곧 나 중심의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경향성이죠.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로 하여금 자꾸 죄로 기울어지게 하는 경향성인 사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방식, 곧 우리의 영의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따라서, 영의 차원에서의 움직임은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죄 이후로 우리는 나 중심으로 움직이려는 욕구의 충동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나 중심의 욕구와 너 중심의 그리스도교적 가치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존적 긴장관계를 우리 삶에서 없앨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의 욕구를 성찰하면서 나 중심에서 너 중심으로 건너가는 삶, 이것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너’가 되는 것, 그리고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죠.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너 중심의 모습이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우리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파스카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기도 생활은, 내 삶의 모든 순간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차리면서 하느님을 따라 나 중심에서 너 중심으로 건너가는 삶입니다. 나 혼자 그렇게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런 삶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잘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 다시 말해 기도 생활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더 찾아보려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빕니다. 아멘.

 

민범식(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25일, 민범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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