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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12사도의 증거

539 심재엽 [simjy] 2005-04-01

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12사도의 증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뿐인 목숨바쳐 진리 증거

신흥영성운동 ‘다빈치코드’ 등

거짓 농간에 믿음 흔들려선 안돼

 

장렬한 죽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책

「교회사」에서 12사도의 순교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정리해 보면 12사도는 다음과 같이 순교하였다고 한다.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교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그리스(드레이스, 마케도니야, 고린도, 파트라스)에 가서 전교하다가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한 것으로(사도12, 1~2) 기록되어 있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칼로 목이 베여 순교했다고 한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팔레스티나와 이집트, 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 맞아 순교하였다고 한다.

요한은 파트모스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묵시1, 9) 모진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필립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한다.

 

바르톨로메오는 인도와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교하다가 아스티야제스 왕에 의하여 참수를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고대 이란에서 전교하였고, 인도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마태오는 유대아를 순회하다가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교 중에 참수 당했다고 한다.

시몬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유다 타대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교하다가 활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가리옷 사람 유다 대신 12사도에 들어온 제자(사도1, 21~26) 마티아는 카스피아 연안에서 박해를 받고 콜키스에서 돌에 맞고, 참수 당했다고 한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들의 죽음은 한결같이 자발적인 죽음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장렬한 순교의 길을 택하였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배척과 핍박을 감수했고, 무엇 때문에 죽음까지도 불사했는가?

그 답은 간명하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이 하나를 증거 하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니 바쳤던 것이다.

X자 십자가형을 당했던 안드레아가 고통스런 죽음 앞에서 바쳤다는 기도는 안드레아가 누구 때문에 순교했는지를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했던 당신,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

그랬다.

그들이 박해와 순교를 각오하고서 증거 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사도5, 42)이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무슨 근거로 또 무슨 논리로 이런 주장을 하였을까?

사도 베드로가 성령강림 후 3000명의 유다인 앞에서 했던 최초의 설교는 그 정식(定式)을 드러내 주고 있다.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도 2, 22~36).

 곧 사도들은 「하느님의 아들 되심」,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 이 세 가지가 『예수=그리스도』라는 선포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 세 가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담대한 선포는 오늘에까지 메아리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사도 4, 20).

 

죽음의 웅변

 

죽음은 웅변이다.

『이 주장에는 하나의 거짓도 조작도 없습니다』하고 외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웅변이다.

그 어느 누구도 거짓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영원한 진리를 위해서만 목숨을 내어놓는 법이다.

본래 그들도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높은 자리를 욕심내고(마태 20, 20~28; 루가 18, 1~15 참조), 무사안일에 안주하고 싶어 하고(마태 16, 22; 26, 40?43 참조),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낱 인간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예수님이 체포,연행되었을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도망갔다(마르 14, 43~52 참조).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하였다(마태 26, 69~75 참조).

그런데 이들은 모두 돌연 어느 한 순간 극적으로 전향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증거자로 나선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변화시켰는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이 뒤집힐 수 없는 진리(眞理)라는 확신, 그것이었다.

역사 이래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구원을 깨트리려하는 훼방꾼과 그 하수인들이 있어왔다.

그들은 그 일환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진리를 허물어뜨리고자 하였다.

그들은 온갖 궤변과 허구와 속임으로 예수를 한낱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려 하였다.

그들의 농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요즈음 그와 비슷한 음모가 「다 빈치 코드」, 신흥영성운동, 도올 김용옥 등등을 통해서 교활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도 미구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낙관만 하고 있을 노릇은 아니다. 순진하고 착한 양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상처를, 심하게는 교회를 떠나는 치명상을 남겨놓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맹랑한 거짓들이 난무할 때, 요지부동으로 믿음 위에 서 있게 해 주는 묘방이 있다.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증거 하다가 목숨을 바친 12사도를 상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거짓에 속아 최면에 걸린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목격자였다.

그랬기에 그들은 그것이 「절대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순교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남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겁니까? 주 예수를 위해서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묶일 뿐만 아니라 죽을 각오까지도 되어 있습니다』(사도2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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