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부가 있었는데 간절히 아이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두번의 유산으로 그들의 마음은 몹시도 아팠다. 어렵게 세번째 아기가 들어섰다. 어느날 전처럼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정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의사는 침착하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기에게 심각한 장애가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인공유산을 시켜야 합니다." 아이의 뇌가 골 밖으로 나와 있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이런 경우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호흡장애를 일으켜 15분도 살기 힘들 거라고 했다. "또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다니! 도무지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를 뱃 속에서 계속 키우겠습니다." "당신들이 아이를 낳은 후 받아야 할 상처는 지금 유산시키고 받을 상처보다 훨씬 큽니다." 의사는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부는 생명을 죽일 수 없었다. 의사는 버럭 화를 내었지만 결국 그들은 아이를 키우기로 결단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루카스(Lucas)라고 지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몇 달의 시간을 루카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매일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었고 루카스를 위해 기도했다. 그 아이와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 태어나자 마자 죽을 밖에 없는 아이였기에 그들은 뱃 속에서 루카스가 살아 있음을 느낄때마다 감격했으며 그로 인해 감사했다.
마침내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드디어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러나 의사의 말대로 루카스의 뇌는 밖으로 삐져나온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기 루카스를 최대한 밀착하여 안았다. 이대로 숨을 거둘 수 밖에 없는 루카스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온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주어진 15분이 지났다. 그리고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루카스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었다.
루카스를 집으로 데리고 온 부부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부모가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 주기 시작했다.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으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매일 선물을 안겨 주었다. 공동체 식구들을 불러 날마다 작은 파티를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루카스를 보고 기뻐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주고 서로 위로하며 또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이 지난간 후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루카스는 17일을 살아냈다. 작디 작은 관 안에 루카스의 어여쁜 시신을 보며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또 슬퍼했다. 관 앞에 선 루카스 부모가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루카스와 함께했던 지난 9개월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루카스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우리는 루카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루카스로 인해 비로소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 준 내 아들 루카스에게 감사합니다. 루카스는,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루카스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 일행은 받은 감동이 넘쳐 울기 시작했다. 나는 도무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성당을 둘러 싼 숲 속 오솔길을 걸으며 루카스를 생각했다.
17일의 인생을 살다 간 아이, 루카스. 내 걸음은 신비한 사랑을 막 체험한 사람처럼 두둥실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 때 어떤 잔잔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바로 네가 루카스다." 내가 70년을 사는 것과 17일을 사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느님 앞에서 우리 인생은 모두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장애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시는 말씀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네가 아느냐?" 태속에서부터 알고 지명하여 이름을 불러 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이, 하느님의 입장에선 우리 모두가 루카스였다. 순간 갑자기 감동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루카스는 죽었고 땅에 묻혔다. 그러나 그 부부의 마음 속에, 루카스는 영원히 살아 있다.
- 정진호 저. 치유의 꿈, 루카스이야기 中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