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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5년 12월 7일 (일)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Mary Josepha Rossello)
    같은이름 메리 , 미르얌 , 미리암 , 요세빠 , 요셉파 , 주세파 , 조세파 , 호세파
    축일 12월 7일
    신분 동정녀 , 설립자
    활동연도 1811-1880년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는 1811년 5월 27일 이탈리아 북서부 사보나(Savona) 교구에 속한 리구리아(Liguria) 해안의 작은 마을인 알비솔라 마리나(Albisola Marina)에서 베네데타 로셀로(Benedetta Rossello)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도자기 제작자인 바르톨로메오 로셀로(Bartolomeo Rossello)와 마리아 데도네(Maria Dedone)의 아홉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난 성녀 베네데타 로셀로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점토 작업과 집안일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에도 힘썼다. 어려서부터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 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6살 때 작은 형제회의 제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그녀는 19살부터 7년 동안 자녀가 없는 사보나의 부유한 몬레오네(Monleone) 가문에서 병상에 누운 주인을 돌보는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녀의 모범적인 태도에 감동한 몬레오네 부인은 남편이 사망한 후 그녀를 하인이 아닌 양녀로 삼아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함께 살고자 했으나 성녀 베네데타 로셀로는 수도 성소에 대한 소명을 느껴 이를 거절하였다.

       그녀는 자선사업에 헌신하는 한 수도회에 입회를 신청했으나 최소한의 지참금을 구할 수 없어서 거절당했다. 그 무렵 어머니와 둘째 오빠, 여동생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 그녀는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1837년 사보나의 주교인 아고스티노 데 마리(Agostino de Mari)는 그 도시의 많은 소녀와 젊은 여성들이 겪는 위험에 대해 걱정하며 그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계획했다. 성녀 베네데타 로셀로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주교의 뜻에 공감해 기꺼이 동참하였다. 주교는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며 소녀와 젊은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다. 곧이어 함께할 세 명의 동료가 모이면서 1837년 8월 10일 공동생활을 시작한 그들은 스스로 자기들을 ‘자비의 성모의 딸들’(Figlie di Nostra Signora della Misericordia)이라 불렀다. 그해 10월 22일 수도회로 공식 출발하며 수도복을 입은 성녀 베네데타 로셀로는 주교로부터 마리아 요세파(Maria Giuseppa)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련장을 맡았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수도회는 설립 목적에 따라 점차 소녀들의 보호와 교육을 위한 학교와 병원 등의 시설을 운영하는 ‘자비의 성모의 딸 수도회’(Daughters of Our Lady of Mercy)로 크게 발전하였다.

       1839년 종신서원을 한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이듬해 총회에서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수녀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그로부터 선종할 때까지 40년 동안 원장으로서 수녀회를 이끄는데 헌신하였다. 건강상의 문제나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인 몬레오네 부인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사보나의 후임 주교들도 그녀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1856년에 그녀는 리구리아에서 아프리카 노예 해방을 위해 헌신해온 두 명의 사제들과 뜻을 같이해 노예로 팔려 온 소녀들을 속량하고 보호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859년 사보나에 빈민 계층 소녀들을 위한 새로운 시설로 ‘섭리의 집’을 설립해 소녀들을 교육하고 그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을 여러 곳에 만들었는데, 고향인 알비솔라에도 문을 열었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1869년에 새로운 사업으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소년을 위한 작은 신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이 성직 생활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는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입원 환자나 병자들을 위한 가장 겸손한 봉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허약 체질에 심장 질환으로 선종 몇 년 전부터는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1880년 12월 7일, 69세의 나이로 사보나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여 시립 묘지에 묻혔다. 그리고 1887년 수도원 성당으로 이장하여 안치되었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는 이미 그녀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나갔다.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는 1904년 1월 12일 교령을 통해 자비의 성모의 딸 수도회와 그들의 회헌을 공식 승인하였다. 그녀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는 1924년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고, 1949년 6월 1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한동안 10월 3일에 기념했으나 현재는 선종한 날인 12월 7일을 축일로 지내고 있다. 자비의 성모의 딸 수도회에서는 그녀가 태어난 날이자 세례받은 날인 5월 27일 전례에서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7일 목록에서 사보나에 동정 성녀 마리아 요세파 (베네데타) 로셀로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비의 성모의 딸 수도회를 설립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사보나의 수호성인이요 리구리아 도예가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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