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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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Nicholas Studites)
같은이름 니고나오 , 니꼴라오 , 니꼴라우스 , 니콜라스 , 니콜라우스 축일 2월 4일 신분 수도원장 활동연도 +868년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8세기 말 크레타섬(Creta Is.) 시도니아(Sydonia)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교육을 위해 10살 정도 된 성 니콜라오를 삼촌이 수도원장으로 있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스투디우스(Studius)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곳에는 그는 성 테오도로 스투디타(Theodorus Studita, 11월 11일)의 제자가 되어 교육을 받고 성년이 된 후 수도승이 되었다. 그런데 성상 파괴론자인 아르메니아인 레오 5세 황제(813~820년 재위)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성상 공경을 강력히 옹호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성 니체포로(Nicephorus, 6월 2일)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방당했다. 820년 황제가 죽은 후 돌아온 그는 826년에 스승인 성 테오도로 스투디타가 선종한 후 그를 계승하여 수도원장이 되었다.
성상 파괴론자인 테오필루스 황제(829~842년 재위)가 즉위하자 또다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 내내 박해가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성 니콜라오도 잠시 유배 생활을 했으나 842년 황제가 사망한 후 다시 돌아왔다. 테오필루스 황제인 부인인 성녀 테오도라(Theodora, 2월 11일)는 아들의 통치 기간에 성 메토디오(Methodius, 6월 14일)와 함께 성상 공경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 후 857년에 미카엘 3세 황제(842~867년 재위)의 삼촌인 바르다스(Bardas)의 근친상간을 묵인하라는 황제의 요청을 거부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성 이냐시오(Ignatius, 10월 23일)가 파면되어 테레빈토스(Terebinthos) 섬으로 유배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바르다스가 그의 비서인 성 포시오(Photius, 2월 6일)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자 성 니콜라오는 그 모든 일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유배의 길을 떠났다. 몇 년 후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되어 수도원 안에 고립되었다가 황제가 사망하고 성 이냐시오 주교가 복귀한 후 수도승들에 둘러싸여 평화로이 숨을 거두었다.
성 니콜라오를 성 니콜라오 스투디테스(Nicolaus Studites)로 부르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플의 스투디우스/스투디오스(Studius/Studios) 수도원의 수도승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투디테스’(Studites)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4일 목록에 콘스탄티노플의 성 니콜라오 스투디테스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그가 성화상을 공경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추방당했지만 스투디우스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평화롭게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 성 니콜라오 스투디테스 (Nicholas Stud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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