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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17일 (일)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파스칼 바일론 (Paschal Baylon)
    같은이름 바론 , 바이런 , 베일론 , 빠스칼리스 , 파스깔리스 , 파스칼레 , 파스칼리스
    축일 5월 17일
    신분 수사
    활동연도 1540-1592년

       성 파스칼리스 바일론(Paschalis Baylon, 또는 파스칼 바일론)은 1540년 5월 16일 에스파냐 북동부 아라곤(Aragun) 왕국의 토레에르모사(Torrehermosa)에서 가난한 농부인 마르틴 바일론(Martin Baylon)과 이사벨 유베라(Isabel Yuber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령 강림 축일(에스파냐어로 Pascua de Pentecostes)에 태어나 파스쿠알(Pascual/Paschal)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7살부터 아버지의 양 떼와 동네 부유한 지주의 양 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일해야 했다. 그는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갖고 있던 책인 성모 마리아 기도문이 실린 기도서를 통해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그는 산에 있는 한 동굴에서 성찬례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고, 17살 때에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와 그의 수도원에 대해 듣고 에스파냐 동부 해안 알리칸테(Alicante) 근처 몬포르테 델 시드(Monforte del Cid) 또는 오리토(Orito)에 있는 개혁 분파에 속한 작은 형제회 수도원을 찾아가서 입회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뒤로 그는 7년 동안 수도원 근처에서 양치기로 일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자신의 성소를 키워나갔고, 마침내 24살 때인 1564년에 재차 입회를 신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는 몬포르테 수도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1565년 2월 2일 첫 서원을 했다. 그리고 장상으로부터 사제가 될 것을 권유받았으나 그는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거절하고 일생 평수사로 지내면서 에스파냐의 여러 수도원에서 문지기와 주방 일 등을 하며 살았다. 그는 수도원을 찾아오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다른 친절을 베풀었고, 순명과 겸손 그리고 엄격한 고행을 실천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자고 주어진 소임을 수행한 나머지 시간은 거의 대부분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지냈다. 또한 그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성 파스칼 바일론은 성체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신심으로 불탔고, 그 신심과 관련한 여러 기적과 병자들의 치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성체 신심은 프랑스 여행 중에 칼뱅파의 지도자를 상대로 논쟁을 벌여 그들의 지도자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그의 영적 능력을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570년경 그는 장상의 명으로 프랑스에 있는 같은 수도회 회원에게 중요한 문서를 전달하러 갔다가 오를레앙(Orleans)에서 위그노파에게 붙잡혀 혹독한 심문을 당한 후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당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어깨에 심한 골절상을 입어 한쪽 팔이 마비되는 부상으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생 수많은 고행으로 쇠약해진 그는 1592년 5월 17일 오순절에 카스테욘(Castellon)에 있는 비야레알(Villarreal)의 로사리오 성모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순절(성령 강림 대축일)에 태어나 오순절에 선종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은 선종 후 26년이 지난 1618년 10월 2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1897년 11월 28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성체성사에 대한 그의 헌신과 칼뱅파에 맞서 성체성사의 참된 교리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성체 대회와 그 준비 위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그는 평생 수도원에서 행한 겸손한 봉사로 인해 요리사와 제빵사의 수호성인으로도 알려졌다. 그의 무덤이 있는 비야레알의 수도원 성당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났는데, 에스파냐 내전 중인 1936년 8월 13일 그의 묘지가 약탈당하고 유해 일부가 불태워졌지만, 1952년경 검게 탄 유해를 다시 모아 새로 마련한 성소의 무덤에 안치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17일 목록에서 발렌시아(Valencia) 왕국의 비야레알에 순결한 생활과 참회의 정신으로 뛰어난 삶을 살았던 작은 형제회의 성 파스칼 수사가 있었는데, 교황 레오 13세가 그를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국제 성체 대회와 성체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에스파냐 발렌시아 근처 비야레알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였던 성 파스칼 바일론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려 깊고 자비롭게 대했으며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의 신비를 열렬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공경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은 성체성사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인해 ‘성체성사의 신학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교회 미술에서도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성체를 모신 성광(聖光)이나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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