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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18일 (월)부활 제7주간 월요일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펠릭스 (Felix)
    같은이름 펠리체
    축일 5월 18일
    신분 수사
    활동지역 칸탈리체(Cantalice)
    활동연도 1515-1587년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 북서부의 치타두칼레(Cittaducale) 교구에 속한 칸탈리체에서 1515년 5월 18일, 신앙심 깊은 농부인 산티 포리(Santi Porri)와 산타 포리(Santa Porri) 부부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들판에서 일을 해야 했고, 아홉 살부터는 치타두칼레(Cittaducale)의 한 농장에 들어가서 28살이 될 때까지 목동과 농장 노동자로 일했는데, 특별히 양을 돌보는 긴 시간을 기도와 묵상의 시간으로 보냈다. 또한 근처 숲의 나무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그 앞에서 무릎꿇고 몇 시간씩 기도하곤 했다. 이렇게 꾸준히 일하고 기도하면서 그는 상당히 오랜 시간 하느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만큼 영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한 동료가 사막 교부들의 삶에 관한 책을 읽어 주자 그들을 따르고 싶은 강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는 치타두칼레에 새로 설립된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Cap)에 입회 신청을 했고, 1543년 입회 허락을 받고 로마 관구의 안티콜리(Anticoli) 수련소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련기부터 영적인 유혹과 건강상의 문제로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겸손과 강인한 의지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게다가 수련장에게 간청해 보속과 금욕을 배로 늘릴 만큼 열정적이었다. 성 펠릭스는 1545년 몬테 산 조반니(Monte San Giovanni) 수도원에서 서원을 했다. 그 후 2년 남짓 티볼리(Tivoli)와 비테르보(Viterbo) 수도원에서 영성 교육을 받은 뒤 1547년 말경 로마의 성 보나벤투라(San Bonaventura)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40년 동안 탁발 수사로서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가 담당한 일은 매일 큰 자루를 메고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수도원 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은인들이 주는 물품을 걷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매일 구걸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늘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는 ‘데오 그라시아스 형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선한 삶을 살라고 충고하며 특별히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아이들을 모아 둥글게 앉혀 놓고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게 하곤 했는데, 그 내용은 선한 삶의 아름다움과 죄의 추악함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성 필립보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그들을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위대한 성인들’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성 펠릭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이의 고통을 대속하는 사람’이라며 늘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밀라노(Milano)의 교구장인 성 가롤로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추기경이 새로 설립한 ‘성 가롤로의 헌신회’의 회헌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 가장 유능한 조언자로 성 펠릭스를 추천하기도 했다. 성 펠릭스는 배움이 부족해 글을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영적인 조언을 구할 정도로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실제로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돕고 단순한 삶을 실천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카푸친회의 노새’라고 부를 만큼 겸손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간절히 아기 예수님을 잠시 안아볼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성모 마리아가 자애롭게 몸을 굽혀 그에게 아기 예수님을 안겨주는 환시를 체험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살아서부터 로마 사람들에게 성인으로 칭송받던 성 펠릭스는 1587년 5월 18일, 72년 전 그가 태어난 날에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리고 1625년 10월 1일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712년 5월 22일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성인품에 올라 카푸친 작은 형제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인품에 오른 수도자가 되었다. 그의 유해는 현재 로마의 베네토 가도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Chiesa di Santa Maria Immacolata a via Veneto) 제대 아래 안치되어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18일 목록에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으로 복음적 단순함과 애덕 실천으로 널리 알려진 성 펠릭스를 로마에서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소속 수도자인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가 있었는데, 그는 존경할 만큼 엄격함과 단순함을 지니고 40년 동안 구호품을 모으며 주변에 평화와 자비를 전파하는데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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