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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6일 (월)사순 제4주간 월요일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헤리베르토 (Heribert)
    같은이름 헤리베르또 , 헤리베르뚜스 , 헤리베르투스 , 헤리베르트
    축일 3월 16일
    신분 대주교
    활동지역 쾰른(Koln)
    활동연도 +1021년

       성 헤리베르투스(Heribertus, 또는 헤리베르토)는 970년경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Rheinland-Pfalz州)의 보름스(Worms)에서 그곳의 백작으로 추정되는 휴고(Hugo)와 티에트비스타(Tietwist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보름스 대성당 부속 학교에서 초기 교육을 받은 후 프랑스 북동부 로렌(Lorraine) 지방 고르제(Gorze)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가서 수학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995년에 사제품을 받았는데, 25살이 되기도 전인 994년에 이미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오토 3세(Otto III)에 의해 라벤나(Ravenna)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를 황제에게 소개한 사람은 보름스의 주교이자 게르마니아의 대재상이었던 힐데볼트(Hildebold)였는데, 그가 998년에 선종한 후 성 헤리베르토는 독일의 재상직도 겸임하였다. 이로써 그는 신성로마제국을 그리스도교에 기반한 카롤링거 왕조 국가로 재건하려는 오토 3세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협력자가 되었다.

       성 헤리베르토는 999년에 오토 3세 황제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Roma)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쾰른 대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해 7월 9일 그는 나폴리(Napoli)에서 가까운 베네벤토(Benevento)에서 교황 실베스테르 2세(Silvester II)에 의해 주교로 서품된 후 팔리움(Pallium)을 받았다. 그리고 한겨울에 신발을 벗고 도시로 걸어 들어가 999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에 쾰른 대성당에서 착좌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제국의 재상직을 계속 수행해야 했기에 정치 생활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기 교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황제의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함께 했고, 1002년 1월 비테르보(Viterbo) 근처 파테르노(Paterno) 성에서 오토 3세가 병으로 서거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황실 근위대와 함께 황제의 휘장과 시신을 아헨(Aachen)으로 옮겨 샤를마뉴(Charlemagne) 옆에 매장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헨에서 그를 기다리던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하인리히 2세(Heinrich II)는 그가 가져온 황실의 최고 보물인 성창(聖槍,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황실의 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박힌 못 조각이 들어있다고 전해지는 8세기의 작품)을 받고 황위를 계승하고자 했으나 성 헤리베르토는 정식으로 새로운 황제가 즉위할 때까지 성창의 인도를 거부하였다. 그는 슈바벤(Schwaben)의 공작 헤르만 2세(Herman II)를 지지했는데, 그로 인해 하인리히 2세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 오토 3세의 장례 절차가 끝나고 하인리히 2세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자 그는 성창을 그에게 넘겨주고 재상직을 사임했다. 하인리히 2세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성 헤리베르토를 괴롭혔지만, 결국 그의 지혜와 정의로움을 인정하고 갈등을 우정으로 변화시켰다.

       성 헤리베르토는 1003년에 오늘날 쾰른시의 일부가 된 라인강 기슭에 이전에 오토 3세 황제와 합의했던 대로 도이츠(Deutz)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가 그의 꿈에 나타나 쾰른-도이츠(Koln-Deutz)에 수도원을 세우라고 했고, 건축가들이 십자가를 세울 적당한 나무를 찾지 못할 때 그가 자신의 과수원에 있는 배나무에서 십자가 모양을 보고 그것을 베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성직자의 규율을 엄히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자선을 실천하고 권장하였다.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받던 그는 극심한 가뭄을 끝내는 비를 내리게 하는 등 여러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상적인 주교의 모범으로 공경받던 그는 1021년 겨울 쇠약한 몸을 이끌고 사목 방문을 떠났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병세가 악화하여 쾰른으로 급히 돌아왔다. 그리고 3월 16일 선종하여 성 베네딕토회 도이츠 수도원 성당에 묻혔다.

       성 헤리베르토의 유해는 1147년 8월 30일 발굴되었고, 1175년경에 완성된 황금으로 장식한 웅장한 유물함에 안치되었다. 이 유물함은 오늘날 쾰른-도이츠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 헤리베르트(St. Heribert)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공식적인 시성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오랫동안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16일 목록에서 쾰른에 성덕으로 널리 알려진 성 헤리베르토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독일 쾰른의 주교인 성 헤리베르토가 오토 3세 황제의 재상이었으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교로 선출되었는데, 그 뒤로 그는 스스로 덕행을 몸소 실천하며 성직자와 백성을 끊임없이 계몽했고, 설교를 통해 그들에게 덕행을 권장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헤리베르토는 전구를 통해 비를 내리게 하는 대주교의 모습으로 종종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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