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전례ㅣ교회음악

유쾌한 클래식: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 중에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07 ㅣ No.2864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8)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 중에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삼손을 유혹한 들릴라의 거짓 사랑 노래

 

 

지난 6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최근 세계의 명문 음반회사 도이치 그라모폰과 글로벌 계약을 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Violin on stage’ 공연이 펼쳐졌다.

 

워낙 탄탄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해가 갈수록 성장, 월드 클래스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의미가 있는 앨범을 냈기에 공연에도 많은 청중이 찾아왔다.

 

레퍼토리는 봄소리 자신과 인연이 깊은 폴란드 작곡가와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곡들로 짜여졌다. 특히 모든 프로그램 곡들을 마친 후 청중의 뜨거운 박수에 다시 등장한 봄소리(영어 이름은 이번 앨범을 통해 기억하기 쉽게 Bomsori로 바꾸었다)는 첫 번째 앙코르곡으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콥스키와 함께 ‘상송과 달릴라’(Samson et Dalilah, 삼손과 들릴라)의 달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oeur s‘ouvre a ta voix)를 연주, 아름다운 선율로 청중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상송과 달릴라’(프랑스어)는 카미유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로 성경 판관기에 등장하는 ‘삼손과 들릴라’ 두 사람의 이야기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주님은 그들을 40년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겨 노예가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인들은 기도를 드리나 주님께서는 대답이 없다. “당신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원해주신 그 주님이 아니십니까?” 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용맹스런 삼손이 나타나 “그쳐라, 형제들이여. 우리 사슬을 끊고 다시 일어나자”며 광장에서 자신을 치려고 하는 가자의 영주 아비멜렉을 오히려 죽인다. 삼손을 대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인들은 광장에서 봉기를 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바로 문제의 여인 들릴라가 나타난다. 다곤 신전의 문이 열리면서 들릴라가 꽃을 든 아름다운 필리스티아 여인들과 나타나 삼손에게 다가서서 말을 건다. “저는 영광보다는 사랑을 원해요. 제 집이 있는 소렉 계곡으로 오세요”라고 유혹하자 삼손은 들릴라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오페라에는 안 나오지만 판관기에서 볼 수 있듯 삼손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게 주님의 천사가 찾아와 포도나무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여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었다.

 

하지만 정결하게 자라야 하는 삼손은 방탕하게 살며 필리스티아 여인과 결혼했다가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게 되자 엄청난 폭력적인 행동으로 복수하게 되고 여기에 반발하여 삼손을 잡아간 펠리스티아인 1000명을 당나귀 턱뼈로 죽여버린다. 삼손의 괴력을 두려워한 필리스티아인의 대제사장이 들릴라에게 “삼손의 마음을 사로잡아 힘의 비밀을 알아내면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겠다”고 부탁한다. 하지만 삼손은 들릴라가 보고 싶어왔으면서도 “나는 하느님의 종, 나 그분의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들릴라의 계속된 유혹에 넘어가 버리는 삼손. 들릴라는 그를 껴안고 명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부른다. 하강 음계는 바로 들릴라에게 빠져드는 삼손의 모습을 상징한다. “새벽 키스에 꽃송이가 열리듯, 당신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는군요. 미풍에 일렁이는 이삭들의 살랑거림처럼 당신 음성에 내 마음이 일렁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눈물을 그치게 하려거든 한 번 더 말해보세요. 이제 영원히 들릴라에게 돌아왔다고….” 그러자 삼손은 곡 중에 “들릴라, 사랑하오!”를 열창한다.

 

그녀의 이 달콤한 말은 거짓된 말일 뿐이었다. 세상에 생상스는 이렇게 거짓된 말을 한없이 아름답고 달콤한 노래로 만들다니 인생에 대해서 뭘 좀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되새김질하게 된다.

 

※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생상스의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0OKsxCDA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7월 4일, 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2,38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