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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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 다시 보기: 나는 믿나이다 1. 누구를?(로마 4,3) 2. 어떻게?(로마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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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다시 보기] 나는 믿나이다 1. 누구를?(로마 4,3) 2. 어떻게?(로마 1,17)
첫 번째로: “신앙고백”과 “사도신경”은 “나는 믿나이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타동사이므로 목적어를 가집니다. 그래서 자연히 “무엇을” 믿느냐? 또는 “누구를” 믿느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믿는다”라는 동사가 신약성경에는 자그마치 227번이나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도 요한의 문헌(요한복음서와 1요한)에서만도 98번이나 나옵니다. 요한에서는 주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그분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믿으라 하는 말씀이 자주 나오고, 그 외 다른 곳에서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참조 로마 4,3).
“신앙고백”(니케아 - 콘스탄틴노폴리스 신경)에서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3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창조주 하느님을, 2. 그분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고,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오시어, 본시오 빌리도 통치 아래서 수난하고 죽고 묻히고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성부 오른편에 오르시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성자, 구세주 예수님을, 3. 주님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그분들과 더불어 같은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는 성화주 성령을. 그리고 “나는 고백합니다”라는 동사와 함께 덧붙이는 말씀은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희망합니다”라는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주동사는 3개: 1. 나는 믿나이다 창조주, 구세주 그리고 성화주를 2. 나는 고백합니다 유일한 세례를 그리고 3. 나는 희망합니다 육신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이것이 니케아(주후 325년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니케아<소아시아 북쪽의 한 도시>에서 소집한 공의회) -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주후 381년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콘스탄티노 폴리스<현. 이스탄불>에서 만들어진 “신앙고백”이고, 이 신경보다 짧다는 이유로(?) 우리가 자주 읊는 “사도신경”은 “사도”라는 말 때문에 사도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명칭은 주후 390년 밀라노 회의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것입니다. 간단하긴 하지만 성령을 이해하기 위한 언급이 없어 아쉬움을 남습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을 어떻게 믿어야, 잘 믿는 것인가? 또는 바로 믿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이 믿음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16). 그리고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로마 1,17). 이 17절의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하느님으로부터 “의로운 이”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말씀은 갈라 3,11 그리고 히브 10,38에서도 또 언급될 만큼 중요한 말씀인데, 이 말씀은 구약의 하바꾹 2,4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히브리 원문은 이렇습니다: (짜디크 베에무나토 예흐히). 직역하면: 의로운 이는 그 성실함 안에서 삽니다. “성실함”이라고 하는 말은 “아멘 ”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성실함” 그리고 “진실함”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하느님을 믿는 믿음(신앙)은 일회적이거나,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것이라야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2025년 12월 7일(가해)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서신학 박사)] 0 1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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