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6일 (금)
(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시간 전례(성무일도) (1)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교회의 기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2-04 ㅣ No.2241

[돋보기] 시간 전례(성무일도) (1)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교회의 기도

 

 

사제 생활의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일까요? 교우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일고여덟은 독신 생활을 꼽지 싶습니다. 일리 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신부처럼 결합되어, ‘마음의 갈라짐’(1코린 7,32-34 참조) 없이 하느님과 교회에 한평생 봉사하는 일을 두고 ‘할 만하다’고 말하려면, 거짓말을 산더미처럼 보태야 할 것입니다. 부제 서품 예식에서 주교님과 하느님 백성 앞에서 독신을 종신토록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기 전까지 깊이 숙고하고 신중하게 결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치지만, 독신의 ‘실제’는 엄연히 다른 법임을 서품 뒷날부터 모든 날 모든 순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독신이 어려운 줄 알면서 선택하는 몫이라면, 미처 그 무게를 예상치 못했다가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서약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 전례(성무일도)입니다. 부제 서품 예식에서 수품 후보자는 시간 전례를 충실히 바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여러분은 성직 생활에 합당한 기도를 바치고 그 정신을 기르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 백성과 함께 온 세상을 위하여 시간 전례를 충실히 바치겠습니까?” “예, 바치겠습니다.” 이 서약 위에서 성직자는 시간 전례라는 교회의 기도를 자기 기도 생활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이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난관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시간 전례(성무일도)가 왜 사제에게 축복이나 은총, 기쁨의 원천이 아닌 뜻밖의 복병이 되고 만다는 것일까요? 사제 생활 초기에 바쁜 사목 활동과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조화시키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의무로만 받아들이는 태도, 이 기도의 본질과 특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해야 하니까 하는 기도’ 정도로 인식하며, 기도에 ‘참여’하기보다 마지못해 끌려가는 태도가 이 기도를 어렵게 느끼게 했던 결정적인 이유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는 신자들, 또는 앞으로 바치려는 신자들이 제가 맞닥뜨렸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기회가 될 때마다 이 기도의 특성을 조금씩이라도 알아 가면 좋겠습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가 어떤 성격의 기도이고, 그 구성 요소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실제로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치려고 할 때 유의해야 할 점 등, 공부할 거리는 차고 넘칩니다. 좋은 마음으로 기쁘게 시작한 일이 견실한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며, 3회에 걸쳐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다뤄 볼까 합니다.

 

 

성무일도: 교회의 공적 기도

 

시간 전례(성무일도)는 교회의 공적 기도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기도하는 법을 배워 익힌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는 사도들의 권고를 교회 생활 속에서 구현해 낼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하느님 백성이 주교와 그 사제단 둘레에 모여 함께 드리는 공적 형태의 기도들이 탄생했습니다(특히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이 기도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이기에 참된 ‘전례’ 행위였고, 이런 장엄하고 공적인 성격 때문에 라틴 교회의 오랜 전통은 이 기도를 ‘하느님의 일’, ‘거룩한 임무’(Ufficium Divinum)라고 불렀습니다(‘성무일도’(聖務日禱)는 바로 이 용어를 우리말로 옮긴 표현입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의 이러한 성격은 제게 자부심과 위로를 줍니다. 천사들과 성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히브 12,1 참조) 성찬례의 친교 속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어깨를 나란히 걸고,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 유배지에 가져오신 저 영원한 천상 찬미의 노래를(「전례 헌장」 83항 참조) 함께 부른다고 생각하면, 저는 선과 악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 한복판에서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제가 이 기도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순간 그리스도의 부대에서 병사 하나가 빠진 만큼의 공백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의 비장함마저 마음에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한없는 안도감과 위로도 느낍니다. 제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또는 게으름 때문에 시간경 하나를 빼먹는다 해도,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기도에는 조그만 균열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합류한 기도의 대열에서 힘을 받는 쪽은 저 자신입니다.

 

 

시간 전례: 시간을 성화하는 기도

 

시간 전례(성무일도)에 참여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세상의 시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어디서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 전례(성무일도)로 “낮과 밤의 모든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 됩니다(「전례 헌장」 84항). 그 힘은 교회 생활의 원천이요 정점인 성찬례에서 나옵니다. 시간 전례(성무일도)는 이 성찬례의 신비에서 나오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 구원 신비들의 기념, 청원 그리고 천상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을 하루의 여러 시간에까지 두루 퍼지게” 합니다(「성무일도 총지침」 12항). 

 

이런 성격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통적인 명칭 ‘성무일도’(Ufficium Divinum)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이 기도의 목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시간 전례’(Liturgia Horarum)를 새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시간 전례(성무일도)가 원죄로 비틀어진 시간 안에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 구원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고 생각하면, 속된 마음일지 모르지만, 참 멋있지 않습니까?

 

 

기도의 학교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빌리자면, 교회는 “참된 기도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새 천년기」 33항). 그리고 교회라는 ‘학교’에서 참된 기도를 배울 수 있다면, 시간 전례(성무일도)는 그 배움의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정해진 형식으로 바치는 시간 전례(성무일도)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시는 성령의 탄식과 같습니다(로마 8,26 참조). 따라서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칠 때 우리가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은 교회가 우리 입에 넣어주는 성령의 소리가 앞서 나가기 시작할 때 곧바로 우리 마음이 거기에 올라타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내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사실 우리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기도를 바치는 셈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1월호,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1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