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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아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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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아는 법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것은 근원적 질문이다. 즉, 이 질문은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하여 가톨릭 신학은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인간은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인 자연을 통하여, 이성의 자연적인 빛으로 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자연신학이다.
둘째,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과 증언(기적과 업적)을 통하여 신앙으로 비추어진 이성의 빛으로 하느님께 대한 인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초자연적 신학이다.
셋째,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분의 본질을 영광의 빛(하느님의 본질 그 자체에서 나오는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빛)으로 직관하여 하느님의 신비 자체를 ‘지복직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신비신학이다.(르네 라투렐 「구원의 학문으로서의 신학」(Teologia scienza della salvezza) 참조)
신학이 무엇인가? 하느님께 대한 인식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다. 신학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느님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신학은 하느님을 제대로 인식하여 하느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하느님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신학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신학을 어떻게 하면 되는가? 첫째로 자연신학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자연신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책인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연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의 묵은때가 씻기는 것이다.
지혜서는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고 말한다.
지구라는 생명의 별 속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나고, 깊이 묵상하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어느 날, 우연히 보았던 석양 노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그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푸른 바다, 푸른 숲이 주는 그 생명력과 웅대함을 떠올리며, 그 생명력을 느끼는 일은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우리들 각자의 앞마당에 있는 나무와 꽃들을 자세히 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경이함을 느끼는 일은 대단히 거룩한 일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은 아름다움 자체이신 하느님의 한 빛줄기를 체험하는 것이다.
대지 위를 낮게 읊조리는 바람 소리 안에서 인디언들은 만물에 깃든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고, 아름다운 석양 노을에 침잠했던 앙리 베르그송은 그 황홀한 찰나 속에서 분절되지 않는 영원한 현재를 직관하였다.
모든 피조물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역시 태양과 달을 형제라 부르며 만물에 깃든 완벽한 질서 속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노래하였다. 또한 사막의 교부들은 끝없이 펼쳐진 고요한 지평선 위에서 불필요한 감각을 덜어내고, 오로지 하느님이라는 실재와 대면하는 영성적 고양을 체험하였다.
이들의 경이로운 체험은 곧 자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신앙의 신비로 들어가는 문턱이다.
[가톨릭신문, 2026년 3월 29일, 김석태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도룡동본당 주임)] 0 5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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