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하느님의 부르심에 나는? 오늘은 올해 부활대축일을 지내고, 네 번째로 맞는 주일입니다. 오늘, 부활 제4주일을 교회에서는 성소주일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성소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가리키는 표현이고, 하느님이 부르시는 소리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옳은지 그 대답도 함께 생각하는 시간입니다.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를 들으면서 내 생각과 뜻을 담아 응답하는 시간도 있고, 분명히 나에게 소리가 들려오지만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거나 나를 초대하는 하느님의 소리와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도 있습니다.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려고 얼마나 큰 소리로 부르실까요? 사람에 따라서 하느님의 소리를 모두 듣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사람으로 살까요? 아니면 내 생각대로 나의 뜻을 담아, 내가 하는 행동과 소리가 하느님의 뜻보다 좋다고 주장하면서 살겠습니까? 나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초대는 어떤 소리인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성경에서 만나는 표현으로 생각하는 일입니다만, 내 귀를 울리는 명확한 소리로 하느님의 초대를 들은 사람도 있고,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소리를 들었어도 하느님의 소리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부활대축일을 지내고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만난 사람이지만,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후, 사울과 그 동료들에게 일어난 일에서 우리는 그 본보기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세상에서 자기 명예를 높이는 일로 충실히 살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 후에 시작된 교회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을 다마스쿠스에서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권한을 얻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사울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사울은 자기에게 놀라운 행동을 한 주체가 하느님이라고 인정하고 하느님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기의 모습을 바꿉니다.물론, 그 곁에는 함께 같은 길을 가던 사람들로 사울과 다른 행동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던 사울은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가 하느님의 소리였다고 일아들었지만, 사울의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천둥소리는 들었지만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로 알아듣지 않았으니, 결국 똑같은 소리에서도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지 아니면 그저 세상을 울리는 소리로 듣는지는 그 사람이 갖는 삶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한자로 표현해서 성소, 우리 말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합니다.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말할 때 세상에 있는 동물의 하나인, 양을 목자와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에서 양의 심리를 올바로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양은 매우 고집이 센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고 웬만해서는 자기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무조건 그 고집을 찬양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들어서 그 뜻이 실현될 때까지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면 더 좋겠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른다고.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기의 고집을 세우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담으신 뜻을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 사도의 선언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은총에 힘을 입어 하느님의 명령을 세상에 빈틈없이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정하신 축복을 베푸실 것입니다.많은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우리나라에는 하느님의 뜻을 듣고 따르는 성소자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고 합니다. 서글퍼해도 달라질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잘 실천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