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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49: 교회 환경운동의 본격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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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5-20 ㅣ No.2016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49) 교회 환경운동의 본격 태동


‘생명권 수호’ 하나된 교회…생태적 회개 위한 ‘녹색 복음’ 싹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로운 사회 발전의 토대인 수많은 윤리 가치들은 생태 환경 문제와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면서 ‘오늘날 자연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결여, 자연 자원의 피폐, 점차 악화되는 생활의 질적 저하로 인해 세계 평화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통해 이같이 강조한 교황은 ‘과학기술 발전의 무차별 적용으로 오늘날 생태계는 위기에 직면했다’면서 ‘환경의 오염이나 파괴는 생명과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점차 상실시켜 인간 경시에 이르고 마는 비자연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을 낳게 됐다’고 개탄했다.”(가톨릭신문 1990년 1월 1일자 1면)

 

한국교회 환경운동의 공식적인 출발점은 1991년입니다. 1984년 울산 온산 지역의 대규모 공단 폐수 오염에 따른 ‘온산병’ 발병과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등으로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습니다. 이는 국가 주도의 압축적 산업화가 낳은 환경 재난들이었습니다. 이런 재난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환경오염과 파괴가 인간 삶의 질적 저하, 심지어 생존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가운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발표했습니다. 이 담화는 무분별한 산업 개발과 소비주의가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생태계 보호가 신앙인의 도덕적 의무이자 참된 평화를 향한 과제임을 천명했습니다. 이 담화는 한국교회가 환경 문제를 공식적인 사목 과제로 채택하는 결정적인 신학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 1990년대 초기 교회환경운동은 개인의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윤리적 차원에 머물러 사회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에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1998년 3월 20일 수원교구 환경센터에서 재활용비누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환경보전 인식의 대전환

 

한국교회가 교황 담화에 응답하면서 교회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태동했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91년 환경 보전에 관한 교황 담화 자료집을 발간하고, 개인과 본당, 교구 단위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이어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산하에 ‘하늘땅물벗’이라는 생태 사도직 모임을 구성하고 월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주관으로 교회 내 22개 환경운동단체가 참가한 ‘푸르름을 만드는 잔치’가 처음 열렸고 이듬해에는 ‘환경상’도 제정됐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1991년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생활 수칙 70가지’ 포스터와 자료집 ‘생명과 해방으로 가는 길’을 제작, 보급한 데 이어,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공청회는 교회 안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농촌사목 분야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생명공동체 운동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1990년 가톨릭농민회는 제20차 대의원대회에서 사람과 땅, 자연을 살리는 생명 농업 실천을 공식 결의했습니다. 안동교구의 생명 공동체 운동이나 대구대교구의 푸른평화운동본부 등은 이러한 유기적 생명관에 기초해 비신자를 포함하는 폭넓은 연대 활동을 전개하며 초기 환경운동의 외연을 확장했습니다.

 

1994년에는 환경교육의 내실화, 환경운동의 정착 및 확산, 타 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서울과 대구대교구 등에서 환경전담사제가 임명됐고 전국 환경사제모임이 결성됐습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활실천부는 환경 문제를 전담하는 ‘환경보전부’로 개칭했고, 대구대교구 푸른평화운동본부가 지역 환경운동의 구심점이 됐습니다.

 

 

교회 환경운동의 정체와 답보

 

한국교회는 환경운동을 신앙 실천의 하나로 수용하게 됐지만, 초기의 열정과는 달리 1990년대 중반 이후 교회 환경운동은 제자리걸음에 머물게 됩니다. 초기의 환경운동은 쓰레기 분리수거, 합성 세제 감축, 자원 재활용 등 생활 실천 운동에 집중됐습니다. 공해 문제에 대한 구조적,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고, 주로 개인의 도덕적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윤리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점차 운동의 동력과 방향성을 잃고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가톨릭신문은 기획기사를 통해 주기적으로 교회 환경운동의 이러한 문제를 진단했습니다. 1996년에는 교회 환경운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본당 환경 분과나 단체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답보 상태임을 지적했습니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10여 개가 못 되고 이들 단체의 책임자들은 ‘기존의 환경운동이 개인적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는 만큼 눈에 띄는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가톨릭신문 1996년 4월 21일자 1면)

 

2003년에는 ‘본당 중심 환경운동 답보 상태’라는 취지의 기사에서, “교회 환경운동의 손발이 없어 환경보전운동이 생활 속의 실천 운동으로 확산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교구 전체 본당 가운데 환경분과가 설치된 본당은 불과 7곳뿐이고 실질적으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은 단 2곳으로 집계되고 있다.”(가톨릭신문 2003년 6월 1일자 1면)

 

본당 환경분과는 생활 실천 운동을 추진하거나, 지역사회의 환경 관련 사안들에 대한 참여가 이뤄지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환경운동의 ‘손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환경운동, 특히 본당 단위의 풀뿌리 교회 환경운동은 사실상 오랫동안 침체 상태였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가톨릭신문 1990년 1월 1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생태 관련 현안에 대한 범종교 연대

 

1990년대 중반 이후 교회 환경운동이 초기의 활력을 잃고 정체기에 접어들었지만, 2000년대 초반 거대한 환경 파괴 현장에서는 천주교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토목 공사인 새만금 간척 사업과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반대 운동 등에서 천주교는 피조물의 생명권을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은 종교계 연대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문규현 신부와 불교계 수경 스님 등은 도심 한복판에서 ‘3보 1배’의 고행을 통해 생명 살상의 실체를 고발해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2001년 결성된 5대 종단 연대 기구인 ‘종교환경회의’를 통해 천주교는 이웃 종교와 함께 생태 보전, 탈핵, 기후위기 대응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실천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90년 교황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계기로 본격화된 교회 환경운동은 오랜 기간의 정체기를 거쳐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반포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회칙은 인류의 환경 위기를 ‘근본적인 영적 위기’로 규정하고, 자연환경의 위기가 인간 및 사회의 위기와 별개가 아니라는 ‘통합적 생태론(Integral Ecology)’을 제시하며, 인류 전체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생태적 회개(Ecological Conversion)’를 촉구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5월 1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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