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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두메꽃, 하느님의 종 유한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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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두메꽃, 하느님의 종 유한숙(?-1801)
머릿수건을 쓴 한 무리의 여인들이 제가 사는 성지에 순례를 왔습니다. 나이도 모습도 각양각색이지만 수도복을 입은 여인들은 한결같이 소녀 같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시 「두메꽃」에 나오는 ‘외딸고 높은 산골 짜구니,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숨어 핀 꽃’을 만난 기분입니다. 그 꽃은 ‘해님만, 주님만 보시는 꽃’인데, 제가 몰래 숨어 보다 들킨 마음입니다. 저는 수녀님들이 좋습니다. 수도복을 입은 수녀님들을 보면 사랑스럽다가도 마음이 아리고 고맙다가도 애틋합니다. 주님께서는 어찌 이런 천사들을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수녀님들은 제게 순진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도자도 질투하고 화내고 욕심부린다고요. 그래도 저는 이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수도자는 우리 대신 주님께 봉헌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온 존재와 삶을 주님께 드리는 숭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날마다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덕을 살아내며,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주님의 가르침 가까이에 서 있습니다. 관상수도원 안에서 바치는 기도는 담벼락을 넘어 세상 끝까지 가 닿고 소명의 자리에서 이루는 활동은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향합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하느님의 종 유한숙은 경기도 양근 동막골(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출신의 양반이었습니다. 박해자들의 기록인 「사학징의」는 유한숙이 “천주교를 독실하게 믿어서 세속 사람의 도리를 폐하고 끊어 버렸으며, 형벌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마음으로 달갑게 여기니, 죽음에 이르고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라고 전합니다. 유한숙은 어느 날 외척이었던 광주 이씨 집안의 이 아가타가 주님을 위해 삶을 바치려는 마음에 불타 동정 생활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혼기가 찬 처녀가 동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대부 집안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봉헌 생활의 의미를 알고 있던 유한숙은 이 아가타를 한양의 동정녀 공동체 회장이었던 같은 양근 출신 복자 윤정혜 아가타에게 데려다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에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이미 봉헌의 길을 걷는 이들이 있었고, 또 그 길을 지켜 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수도 성소가 줄어든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길은 본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이들은 적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덕이 인간을 완덕으로 이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세속의 가치를 좇을 때도, 주님을 위해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사람들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유한숙은 초기 교회에 싹튼 ‘두메꽃’ 같은 봉헌의 마음을 알아보고, 그 꽃이 꺾이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 준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 수도자들의 삶이 지치지 않도록 기도와 존중,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종 유한숙 이 땅의 수도자들을 지켜 주시고, 복음삼덕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시며, 저희 공동체 안에 성소의 새싹이 돋게 하소서.
[2026년 7월 5일(가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0 4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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