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5일 (수)
(녹)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7) 성 베네딕토 베네젯과 디종의 성 베니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1:34 ㅣ No.2574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7)

 

 

큰 바위를 둘러멘 소년: 성 베네딕토 베네젯

 

베네젯은 12세기에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 근처에서 양 떼를 돌보며 자랐다. 그곳에는 론강(Rhone river)이 있다. 알프스산맥에서 발원하여 프랑스 남부를 거쳐서 지중해로 흐르면서 포도 농사와 수력 발전에 요긴하게 보탬이 될 뿐 아니라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성까지 지닌 강이다. 그런데 아비뇽 일대를 지나는 구간은 물살이 빠르고 거세어서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험이 도사린 곳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기술로는 다리를 놓을 엄두를 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사려 깊었던 양치기 소년 베네젯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다리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일식(日蝕)이 있던 어느 날, 베네젯에게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식이 진행되던 동안에 몇 차례에 걸쳐 베네젯이 들은 것은 론강에 다리를 놓으라는 메시지였다. 다리를 놓거나 보수하고 관리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규모와 예산이 막대한 공공사업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의 선의와 기부에 힘입어 재원이 마련되는 경우에나 이루어지던 대역사였다.

 

가난하고 교육마저 제대로 받지 못한 베네젯은 자신이 들은 목소리에 순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아비뇽의 주교를 찾아가서 자신이 받은 소명과 이를 실행하겠다는 의향을 알렸다. 주교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웃었고, 주교는 시험 삼아 건장한 장정 수십 명의 힘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거대한 바위를 혼자 힘으로 옮겨 보라고 요구했다. 베네젯은 그 큰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옮겼고, 그렇게 움직여진 바위는 그대로 새로운 다리의 기초가 되었다.

 

이어서 사람들은 베네젯과 관련해서 일어난 일련의 기적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지 못하던 이가 보게 되었고, 걷지 못하던 이가 걷게 되었으며, 듣지 못하던 이가 듣게 된 것이다. 결국, 아비뇽의 주교와 도시 당국은 그에게 다리 건설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주었고, 그리하여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1177년).

 

베네젯은 7년 동안 공사를 지휘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어려운 공정이 대부분 완료되었을 즈음에 숨을 거두었다. 주교는 그의 유해를 건설 현장에 안장하도록 했고, 다리는 마침내 완공되었다. 그로부터 500년쯤 뒤에 큰 홍수가 나서 ‘아비뇽 다리’ 또는 ‘성 베네젯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의 일부가 유실되었는데, 이때 복구공사를 진행하면서 손상되지 않은 그의 유해를 수도원으로 옮겨 안치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다리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한편, 다리 완공 얼마 뒤 다리들을 건설하고 유지 보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담당하고자 하는 부유한 후원자들의 모임인 ‘다리 형제회’가 결성되었다(1189년). 그리고 성 베네젯은 이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베네젯은 이 다리의 소재지인 아비뇽과 다리를 건설하는 이들, 그리고 독신 남성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한편, 교회 미술에서는 성 베네젯을 커다란 바위를 둘러멘 소년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개, 열쇠: 디종의 성 베니뇨

 

교회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미르)에서 활동하던 성 폴리카르포는 프랑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이자 사제인 성 베니뇨를 포함한 몇몇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베니뇨 일행은 지중해를 건너던 도중에 배가 난파하는 고초와 위기를 겪기도 하면서 프랑스의 동쪽 지역인 부르고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베니뇨와 동료 선교사들은 오툉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쳤고, 오래지 않아 지역의 유력자이던 귀족의 아들(성 심포리아노)에게 세례를 베푸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뒤 베니뇨는 동료들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리옹과 디종에서도 복음을 선포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그리스도교 탄압이 심하던 때였지만, 베니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기적을 행하며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디종에서 체포되었다. 

 

로마 제국의 관리들은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로마 황제와 이교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베니뇨는 쇠막대로 죽을 때까지 맞고 심장이 꿰뚫리는 형벌을 받으면서도 끝내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2세기의 어느 시점에 그가 순교하자, 디종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이교의 기념물인 듯 보이게 꾸민 무덤에 그의 유해를 안치했다.

 

그 뒤 디종의 그리스도인들은 한동안 자기들의 도시 외곽에 있는 한 거대한 석관을 신성시하며 공경했다. 6세기 초, 그곳의 주교는 이 석관이 이교도의 것이려니 여기고 신자들의 숭배를 금지하려 했다. 그즈음에 주교의 꿈에 나타난 베니뇨는 그곳에 자신이 묻혀 있노라고 알려주었고, 이를 확인한 주교는 무덤을 복원하고 그 위에 대성당을 지었다.

 

그제야 비로소 성 베니뇨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적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전한 선교사이자 순교자인 성 베니뇨는 디종의 수호자로 공경받는다. 그의 축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 오늘날의 날짜로 정해지기 전부터 11월 1일에 기념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기록이나 미술에서는 성 베니뇨를 개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또는 열쇠를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한다. 다만, 워낙 교회 초기의 인물이라서 왜 이 성인을 이렇게 표현했는지 그 연유나 유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7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