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2일 (수)
(녹)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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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교회 사람들: 강완숙의 플랜 B, 홍어린아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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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8-11 ㅣ No.2046

[초대교회 사람들] 강완숙의 플랜 B, 홍어린아기연이

 

 

박해가 심할수록 교회 내부에서는 비상 상황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한 플랜 비(B)를 마련해 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의 거점이 탄로 나도 교회가 연쇄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윤현은 벽동 정광수의 장인이었습니다. 각종 교리서의 제작·보급을 맡았던 정광수는 불시의 습격에 대비해 수많은 서학서를 인근 안국동에 있던 장인의 집 구들장 안과 그밖에 여러 사람의 집에 분산해서 은닉해 두었습니다. 황사영이 체포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난 곳은 도성 밖이 아니라 오히려 국왕 친위 부대인 용호영(龍虎營) 안에 살던 사학 매파 김연이 율리안나의 집이었습니다. 멀리 달아나는 대신 적진 깊숙이 숨어들어 허를 찔렀던 것이지요.

 

복자 홍익만 안토니오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채제공의 서손(庶孫)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 것도 플랜 B의 보험 들기에 가까웠습니다. 그 홍익만의 집은 은언군 이인의 부인 송 마리아와 박 마리아가 살던 폐궁의 바로 옆집이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한편으로 재상의 손자를 가르치는 과외 선생 노릇을 하면서, 또 바로 옆집 왕실 여인들이 주문모 신부를 끌어들여 미사를 드리게 하는 비밀 통로 제공자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그 폐궁의 나인 강경복 수산나는 송씨 등이 강완숙의 집에 와서 미사 드릴 때 홍익만의 집을 통해 바깥으로 나와 외부의 시선을 돌렸습니다. 뒤에 포도청에 끌려와 주리를 틀어 뼈가 튀는데도 그녀는 “깊이 빠진 학문이라 사형을 당하더라도 다시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녀는 결국 1801년 5월 22일에 강완숙과 함께 목이 잘려 죽습니다.

 

강경복의 어머니는 충훈부 후동 강완숙의 바로 뒷집 홍어린아기연이(洪於仁阿只連伊)의 집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홍어린아기연이의 아들은 좌포청 포교 강득녕이었지요. 1800년 겨울 강완숙의 집에 화재가 나자, 강득녕이 달려가 그 불을 꺼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강완숙이 감사의 선물을 보내오면서 왕래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차츰 천주교에 빠져서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윤운혜가 벽동의 김치 가게 노파 최조이를 포섭하던 정황과 비슷합니다. 포도청 포교의 어머니를 신자로 끌어들여 고급 단속 정보를 얻는 한편, 비상시 탈출 통로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 집에는 우물이 두 개 있어서 강완숙 집안의 여종들이 수시로 이 집에 들락거리며 빨래도 하면서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녀는 집에 없던 뒷문을 새로 내어 강완숙의 집과 바로 맞통하게 하였지요. 유사시에 강완숙의 집에 숨어 있던 주문모 신부를 빨리 빼돌릴 수 있도록 일종의 비상 탈주 통로를 마련해 두었던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리 서적을 맡겨두기까지 했습니다.

 

홍어린아기연이가 강완숙과 연결되고, 또 강경복의 어머니는 그 집에 세를 살며, 폐궁 나인 강경복은 옆집 홍익만의 담장에 난 비밀 통로를 통해 수시로 강완숙과 홍어린아기연이의 집을 들락거렸으니, 당시 천주교 조직의 물샐틈 없는 인맥 관리를 살필 수 있습니다. 온 나라가 혈안이 되도록 찾아도 봄부터 11월까지 황사영을 검거할 수 없었던 것도 모두 플랜 B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6년 8월 9일(가해) 연중 제19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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