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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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교회 사람들: 천당을 헐값에 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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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15 ㅣ No.2081

[초대교회 사람들] 천당을 헐값에 사겠는가?

 

 

1796년 김풍헌 토마스는 청양 관아로 끌려가 마른 쑥을 항문에 얹어 태우는 잔혹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끝내 배교를 다짐하지 않자 보습을 빨갛게 달궈 맨발로 걷게 했습니다. 그가 서슴없이 올라가려 하니 현감이 미쳤다며 그를 말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현감은 김 토마스가 사형 집행을 간청했음에도 그를 석방하였습니다. 김 토마스는 순교의 면류관을 쓰지 못한 것을 두고 이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며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1801년 7월 신유박해 때 깊은 산골로 가족들을 데려다 놓고, 자신은 자수하여 순교의 꿈을 이루려 했지만, 사람들의 만류로 다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얼마 뒤 병이 들어 죽게 되자, 마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여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 중에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청양 사람 이도기는 신앙 때문에 여섯 번이나 이사를 다녔고, 간 곳마다 온 마을이 입교하는 기적을 보이곤 했습니다. 1797년 관장이 그를 붙잡아 겁박하자, 그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은 제 영혼에 영원한 영광을 보증하는 것이올시다.”고 대답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뺨도 맞고 발로 차이고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얼굴에 회칠하여 머리에 글씨를 써 붙이고, 등에 큰 북을 지워서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했지요. 형벌을 어찌 견딜지 모르겠다며 벌벌 떠는 동료 교우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고문이 더 괴로울 것이네. 하지만 천당을 헐값에 살 수야 있겠는가. 고통은 영원한 행복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이라네.”

 

이후 그는 배교의 강요를 받을 때마다 이치로 반박하여 수없는 매질과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면전에서 천주를 욕하고 배교하겠다는 신자를 보여주며, 너도 천주를 욕하면 즉각 풀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임금이 법률을 펴면 사또께서는 그것을 백성에게 전달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백성에게 참 아버지를 저주하라고 명하시는지요.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풍습이 우리나라에 있습니까?”

 

고문 중에도 “곤장을 맞아 죽어도 다 천주의 명령이니, 천주는 찬미 받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옥으로 술과 고기를 사가지고 오자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으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드셨다는 말은 못 들었소. 나도 예수님처럼 하겠소.” 하며 거절했지요. 성탄 날 무자비한 고문으로 몸이 열로 펄펄 끓자 “보시오. 주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내 마음이 식지 않도록 덥혀 주시는 군요.”라고 했습니다.

 

사형 집행일이 되자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1798년 6월 12일에 그는 56세로 세상을 떴습니다. 포졸 하나가 가슴 위에 칼머리를 대고 올라서자, 갈비뼈가 부러져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의 시신은 이미 사람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옥사장이 그의 아내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너무 슬퍼 마시오. 12일 밤 커다란 광채가 당신 남편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소.” 신앙 선조들의 이렇게 콸콸 쏟아진 피가 오늘 우리 신앙의 밑바대가 되었습니다. 천당을 어찌 헐값에 사겠는지요?

 

[2026년 9월 13일(가해) 연중 제24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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