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녹) 연중 제30주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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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교회의 기도: 주님을 따름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더 깊은 친교의 자리로 초대하는 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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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5:21 ㅣ No.2320

[교회의 기도] “주님을 따름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더 깊은 친교의 자리로 초대하는 예수님의 기도”

 

 

지난 시간에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사랑이 기쁨뿐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침묵과 기다림까지도 보듬어 안는다는 것을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이 겪게 되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누군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결심은 곧바로 확신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흔들림과 망설임일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청하신 것은 바로 그 지점입니다.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결심이 가져오는 것은 평화롭기만 한 여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며, 그 따름이 때로 가장 가까운 이들 곧,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이마저 갈라놓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0,34-37). 이 말씀은 예언자 미카가 이미 전했던 언어이기도 합니다. 미카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는 탄식으로, 관계의 근본이 무너지는 종말적 위기의 순간을 그려냅니다(미카 7,6). 예수님은 그 옛 예언의 언어를 가져오시어, 당신을 따르는 결단 역시 그러한 무게를 지닌 순간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목적은 가족을 해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사람이 되심으로써 이 땅의 가족 관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그 혈연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아버지와의 더 깊고 내밀한 친교 속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당신을 따르기 위해 모여든 이들에게도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혈연을 부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 하느님을 아버지로 함께 부르며 형성되는 친교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이와 멀어지는 아픔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관계가 시작되는 문턱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제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저는 깨닫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체험에서 시작하여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하는 고귀한 은총을 통하여, 제가 아버지와 닮았음을 말입니다. 이 체험의 심장에서 제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정체성이 고동칩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 성자라는 것을 계속해서 더욱 밝혀주는 정체성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가장 찬란히 빛나는 침묵 속에 자정이 되었습니다. 저를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주십시오.” -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 『예수님의 기도』, 56쪽.

 

신앙 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는 순간, 그것은 결심한 이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입니다. 그런 순간을 이미 아셨기에,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용기’를 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용기만으로는 그 따름이 끝까지 지속되지 않습니다. 버텨내는 힘만 있고 살아있는 열망이 없다면, 신앙은 의무로 굳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용기와 함께 ‘열정’을 청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갈라섬마저 각오해야 했던 이들, 그리고 오늘 이 길을 걷는 우리 모두를 위해 이 기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아무런 상처 없이 안전한 자리에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 남겨진 듯한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기도는 그 질문을 아버지와의 관계 안으로 데려갑니다. 나는 홀로 길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따름의 길에서 경험하는 갈라짐은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넓은 관계와 더 깊은 친교를 배워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청하신 ‘용기’란 그 아픔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열정’이란 그 너머에 준비된 새로운 친교를 끝까지 믿고 걸어가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그 길을 걷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를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주십시오.”

 

[2026년 10월 25일(가해) 연중 제30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청년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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