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극ㅣ영화ㅣ예술

서울역의 조 교수(인천 간석4동 성당 2005년 꾸리아 연차총친목회 촌극 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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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영 [ibooklove] 쪽지 캡슐

2007-12-08 ㅣ No.25

[2005년 꾸리아 연차총친목회 촌극 대본(사도들의 모후,정의의 거울,모든 성인들의 모후)]

제목:서울역의 조 교수
글쓴이:황태영 안토니오

때:겨울 밤
곳:서울역 지하도
등장인물:
조 교수
노숙자1:신참 노숙자
노숙자2:고참 노숙자,조 교수 패거리
노숙자3:고참 노숙자,조 교수 패거리
노숙자4:고참 노숙자,조 교수 패거리가 아님
행인들
그 밖에 별 볼일 없는 사람들

무대:서울역 지하도 안. 차가운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신문지를 덮은 채
노숙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오줌을 쌌는지 지린내가 진동한다.
어떤 이는 두 겹 세 겹으로 겉옷을 걸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다.
무대 중앙에 술판이 벌어져 있다. 조 교수와 노숙자2,노숙자3이
깡소주를 안주 없이 마시고 있다.
노숙자4는 그 무리들 근처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다. 간혹 잠이 깨어
조 교수 일행의 대화를 듣다가 이내 졸기를 반복한다.
간혹 행인들 지나간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없어지는 깊은 밤이 되면, 
노숙자1 지하도 안을 두리번 거리며 등장.

노숙자1:(관객을 행해 독백하듯이)나는 신참 노숙자요.
오늘밤도 노숙을 하려고 서울역 지하도에 굴러 들어왔어요.
(배를 움켜 쥐며)오늘 점심은 용산 신역사 공사장에서 참 잘 먹었는데......
이제 거기서 줄 서서 밥 얻어 먹기도 글러 버렸어요.
아침도 굶은 상태여서 배 속에서 밥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던 터라
허겁지겁 급하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사장님"하길래 쳐다보니 박 주임이었어요. 내 참 쪽 팔려서.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밸브를 제조하는 공장을 가진 사장이었는데
거래처가 갑자기 망해버렸는 거라.
(한숨을 쉰다)휴- 찜질방 잡부, 여의도 빌딩의 야간 경비원도 해 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는데 빚쟁이들 등쌀에 도망 다니다 보니
오늘날 노숙자가 된 내 신세가 너무 기가 막히네요.
(사이)요즘 나는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귀를 쫑긋 세우거나
눈을 힐끔거리며 노숙을 위한 정보를 캐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인데
(조 교수를 가리키며) '조 교수'라는 저 양반이 유독 눈에 띄더라구요.
(하품을 하며)아- 잠이 쏟아지네.
(노숙자1, 조 교수 패거리 근처에 자리를 잡아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쓴다.)
노숙자2: 억수로 추운 날씨여. 깡소주라도 먹으니까 속은 따숩네.
닭다리라도 뜯으면 금상첨화일텐데 말이여. 조 교수 안 그런가? 
조 교수:닭다리 조옿지. 이왕이면 더 비싼 안동찜닭을 뜯어 볼라는가?
고기도 알고 먹어야 체하지 않고 맛도 더 있는 법이라고.
노숙자3:(고개를 끄덕이며)맞는 말이여.
조 교수:'삼국지위지동이전 한전'(三國志魏志東夷傳 韓傳)에 의하면
말이야. '출세미계 기미계장오척여'(出細尾鷄 其尾皆長五尺餘)라는
대목이 있거든. 동이(東夷), 즉 활 잘 쏘는 동쪽 오랑캐 땅에
'가늘고 긴 꼬리의 닭이 산출되는데 그 꼬리 길이가 모두 5척을 넘는다'라는
뜻이야. 한국에서 닭을 얼마나 오래 전부터 길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이 꼬리 긴 닭은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그 말씀이야.
어디 것뿐인가. 신라 고분 천마총에서는 세계 최초로 온전한 형태의
달걀들이 발견되었는데 당시에 닭을 키우고 있었다는 역사적인 증거인 거라.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더라고.
지난번에 생태매운탕 만들 때 간 보호에 좋다고 이야기했지?
오늘 만드는 안동찜닭은 여러 가지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몸에 아주 좋은 보양식이라 그 말씀이야.
채소와 당면과 닭고기의 황금비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노숙자1: (배를 움켜 쥐며 독백하듯이)가뜩이나 배고파 죽겠는데
안동찜닭 이야기라니. 내 배를 고문하는구먼.
(노숙자1, 고통의 진원지를 피해 슬그머니 좀 더 멀리 자리를 이동한다)
조 교수:(술이 많이 되었는지  점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일본에는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마다 노숙자들의 구역이
정해져 있단 말이야. 쓰레기통에 먹다 만 빵 부스러기, 컵라면 국물 등
먹을 것이 많거든. 남의 구역의 편의점 쓰레기통을 함부로 뒤지다가는
큰일나지. 그런 점만 조심한다면, 일본은 그래도 노숙자들 간의 유대관계가
좋은 편이야. 노숙자 회식이 있는 날은 다 함께 목욕탕에 가서 씻지.
물론 보통 때는 목욕탕 주인이 물 더러워진다고 노숙자들을 받지 않지만,
대빵이 말하면 그 날 하루는 특별히 노숙자들을 받아주거든.
그리고 신참 노숙자가 오면 고참 노숙자가 골판지박스로
집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적응을 돕기도 하지.
우리도 그런 점은 배워야 한다니까......
노숙자1:(조 교수를 쳐다 보며)일본에 출장도 가 본 모양이네.
하긴 교수들은 학술 세미나 하러 혹은 교환교수로 해외 나갈
기회가 많았겠지. (사이)경제가 어렵기는 어렵나 보네.
교수도 노숙자가 된 걸 보니...... 참 안됐어. (혀를 찬다)쯔쯧쯔쯧.
(사이) 그나저나 시끄러운 조 교수 때문에 아무래도 오늘밤은
잠을 포기해야 할 것 같네. 어쩌면 조 교수가 현재의 내 처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줄지도 모르지.
이왕 잠 자기 글러 버렸으니, 조 교수 무리에 들어가기 위한
신고식을 할 겸 편의점에 가서 소주나 2병 사러 가야겠다.
(노숙자1, 무대 밖으로 퇴장.)
노숙자2: 오줌 마렵다.
노숙자3: 나도 오줌 못 참겠다.
조 교수: 그럼, 물 빼러 가더라고.
(잠시후 조 교수 패거리, 장소를 이동하는 듯 퇴장.)
(노숙자1, 무대 안으로 소주 2병 들고 등장.)
노숙자1:(두리번거리며 노숙자4에게 묻는다) 조 교수님 어디 갔어요?
노숙자4:(졸다가 잠이 깬다)뭐라고?
노숙자1: 조 교수님 어디 갔어요?
노숙자4: 조 교수? 누구 말이요?
노숙자1: 왜 여기 방금 앉아서 안동찜닭 이야기 재미있게 하시던
조 교수 말입니다.
노숙자4:(웃음보를 터뜨리며) 우하하하...... 교수는 무슨 놈의 교수!
성 씨도 조 씨가 아니고 박 씨요. 명퇴 당하고 치킨집을 시작했다가
조류독감으로 빚만 잔뜩 지고 망했다더구먼.
빚쟁이들 피해 이리로 도망 온 거라. 항상 아가리만 벌리면 닭 이야기,
새 이야기 하니까 '새 조'(鳥)자를 붙여서 조 교수라고 부르는 작자도
더러 있기는 하지.
(노숙자1, 어이가 없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허탈하다.
혼자 깡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 끝 ■

 

☞출처:인터넷책사랑 (http://ibooklove.dot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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