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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국 교구 교구장 성탄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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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국 교구 교구장 성탄 메시지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을 맞아 강생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에게 충만히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삶의 상처와 외로움, 고립과 불평등 속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희망의 빛이 넉넉히 스며들기를 청합니다. 올해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들’ 희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성탄을 맞습니다.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걸어오신 주님을 더욱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성탄의 신비는 우리 마음에 새 힘을 주며, 구원의 희망을 다시금 밝히도록 이끌어 줍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빛의 부르심에 응답해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섰듯, 우리도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작은 사랑의 불빛을 들고 희망의 여정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고통과 외로움의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곧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일상에서 나누는 작은 친절과 한 사람을 품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성탄의 신비를 드러내는 가장 구체적인 표지입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태 1,23)는 약속은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갈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깊은 근거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창조되었으며, 그 친교는 이웃과의 연대와 나눔으로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만과 이기심은 이 친교를 약하게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며 공동체까지 흔들리게 합니다.(창세기 3?4장, 11장 참조) 바로 이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시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어둠 속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된 은총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루카 3,4; 이사야 40,3)라고 외칩니다. 성탄을 준비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교만을 낮추고, 분열과 단절의 골짜기를 메우며, 서로를 향한 굳은 마음을 평화의 ‘온전함’(shalom)으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세상은 경쟁과 힘의 논리에 흔들리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나눔과 섬김의 길이 인간의 존엄을 꽃피우는 길임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거룩한 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시노드’의 신비이며, 교회는 이러한 동행을 세상 안에서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희년 동안 우리가 익힌 순례자의 감수성은 이제 2026년 시노드 이행 단계를 향한 ‘함께 걸음’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성장 안에서 ‘함께 걸어가며’ 세상을 향해 ‘선교하는 시노드 교회’, 즉 ‘하느님과 이웃과 이루는 친교의 교회’이며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교회’ 그리고 ‘복음의 기쁨을 살고 증거하는 선교하는 교회’(「2026년 서울대교구 사목교서」)로 꾸준히 자라나야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마리아의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합시다. 오늘 하루, 우리 곁의 누군가에게 사랑의 한 걸음을 먼저 내딛는 용기를 냅시다. 우리의 작은 응답이 이 시대의 어둠 속에 성탄의 빛을 다시 피워올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이 거룩한 밤, 새 희망과 평화가 여러분의 삶에 깊이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의 은총이 특히 가장 외지고 어두운 곳에 먼저, 그리고 충만히 내리기를 빕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2025 성탄 메시지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하느님의 평화를 간구하는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 탄생을 맞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곳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 계엄이라는 엄청난 국가폭력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일념 하나로 양식 있는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국난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랫말처럼 세상의 어두움은, 결코 선한 사람들의 의지와 희망을 꺾을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없는 세상에 아기 예수님께서 희망의 빛으로 우리 곁에 곧 오십니다. 1. 가난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계획 세상은 권력과 부를 쫓느라 분주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가장 무력하고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여관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는 복음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프게 비춥니다. 경쟁과 효율, 이기심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랑이 머물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미천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세상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지극한 사랑의 표징입니다. 주님께서는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춥고 비천한 곳에서 떨고 있는 이들 곁에 가장 먼저 계시고자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2.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이들은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노동자였던 그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첫 번째 초대손님이었습니다. 이는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의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차별과 편견으로 상처받는 장애인과 이주민들, 홀로 외로움 속에 놓여 있는 독거노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지금도 그들 가운데서 태어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려면, 낮고 천한 곳을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처럼 우리도 시선을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3. 서로에게 구유가 되어주는 삶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성탄을 기념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 한 켠을 비워 가난한 이웃들에게 쉴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2025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여전히 ‘빈방’이 없습니다. 나의 안락함을 위한 방은 넘쳐나지만, 타인의 고통을 위한 연민의 방은 부족합니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떨고 있는 아기 예수님을 외면하지 맙시다. 우리 광주대교구는 역사 속에서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을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거룩한 체험을 한 적 있습니다. 이렇듯 고통받는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연대의 구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을 위한 ‘나눔의 구유’, 스팩 관리와 취업의 경쟁에 내몰리는 청년들을 위한 ‘공감의 구유’가 됩시다. 나아가 지구의 생태 환경을 지키고 돌보는 ‘환경 지킴의 구유’도 됩시다. 우리가 서로에게 성심껏 따뜻한 밥이 되어주고 쉴 곳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에 진정한 성탄이 완성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2,10) 천사가 목자들에게 건넨 위로가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큰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난하고 작게 오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특히 북녘땅 동포들, 그리고 전쟁과 기근으로 신음하는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빛으로 널리 퍼져나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옥 현 진 시 몬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 날, 우리는 성탄이 단순한 탄생의 기념이 아니라, 당신의 숨결로 빚어 주신 인간을 결코 잊지 않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존엄을 지켜낼 수 없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 찾아 주시기 위해 인간의 자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신비 앞에서 우리는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충실하심을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밝게 드러내는 축제이며, 다시 하느님의 모상으로 일으켜 세워지는 우리의 고귀한 존재를 기쁨으로 확인하는 잔치입니다. 어둠 속에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처럼, 성탄은 인간 안에 남아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다시 깨워 주고,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는 영광을 함께 축하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충실하심은 성탄의 순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하느님의 책임과 성실함으로 가득합니다. 수난의 순간, 빌라도의 입에서 흘러나온 “보라, 이 사람을”(요한 19,5)이라는 선언은, 역설적이게도 성탄의 완성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책임을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끝까지 짊어지셨다는 증언입니다. 기쁜 탄생과 십자가의 고통은 서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충실하심”이라는 하나의 진리를 두 방식으로 드러내는 한 쌍의 이야기입니다. 성탄은 이 충실한 사랑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의 이 충실함은 오늘의 사회를 향해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많은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함을 잃은 이들이 그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쉽게 사회를 갈라놓는 말들을 사용합니다. 비난과 혐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순간 가장 손쉬운 도구가 됩니다. 책임 없는 말 한마디가 공동체 전체를 상처 입히고 서로를 불신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책임은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의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탄의 빛은 우리 사회가 다시 책임을 회복하기를 촉구합니다. 위정자들이 먼저 책임을 다할 때 공동체는 바른 방향을 찾습니다. 자신의 말과 선택이 가져올 무게를 성찰하고, 국민을 향한 약속을 진실하게 지키며, 공동체의 상처를 더 이상 분열의 언어로 덮지 않는 것, 이것이 성탄이 들려주는 조용한 요청입니다.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사회를 이끄는 이들에게, 책임의 걸음을 다시 시작하라는 새 창조의 초대가 됩니다. 이 책임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향합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을 향한 교회의 사랑과 책임을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젊은이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자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엄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성탄이 하느님께서 한 시대의 삶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라면, 오늘의 우리는 젊은이들의 삶 속으로 기꺼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의 희망을 지켜주고,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새로운 육화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충실함의 표지입니다. 이 표지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희망합니다. 서로를 향한 책임이 회복될 때 성탄의 기쁨은 더욱 밝게 빛날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이 여러분의 삶에 깊은 평화와 새로움을 가득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5년 성탄절에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2025 성탄 메시지
+ 찬미 예수님!
태초에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죽음이 그들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장차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자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다시 창조하시기 위해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 신비는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믿는 사람들이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가르치시면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바로 가난하고 철부지처럼 여겨지던 목동들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 구유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셨을 때, 천사들이 들에서 양 떼를 보살피고 있던 목동들에게 나타나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천사들이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둘레를 비추자, 목동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고 말합니다. 구원자이신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는 이 엄청난 소식을 지위가 높거나 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철부지 어린이 같은 목동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목동들은 천사가 일러준 대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때 성모님도 목동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전 세계 그리고 우리나라의 순교 역사를 돌아봅시다. 그분들 가운데 학식이나 신분 혹은 직책이 뛰어난 분들도 많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지극히 존경하는 순교자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전에 이분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마치 예수님 탄생 때 천사들을 만난 목동들과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인간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의 신비를 알아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어 자유롭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얼마나 큰 희생을 하셨는지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에서 시작하고 부활의 신비에서 완결됩니다. 참된 믿음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습니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양반에서 노비까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되어 교우촌을 이루고 함께 생활하며 한 상에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이제 그분들은 이 지상에서의 생명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그것이 하느님 안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어, 순교의 길을 기꺼이 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듣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성경 안의 많은 의인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먼저 가셨던 길입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에 따른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하느님께서 그렇게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신비가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을 더 크게 차지했기에 그들은 ‘예’라고 응답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모두 순교선열들처럼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가르치기보다 들으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이익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압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면 처음 당황하고 두려워하지만, 그 깊이를 알아채고 받아들일 줄 압니다. 평생 하느님의 뜻을 찾아 연구하고 실천하는 데에 열성을 다했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정작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위로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신들의 위치에 지나친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서로 다르고 다양한 것처럼, 우리의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하느님 체험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달란트를 나도 공유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로마 12,15-16)라고 말할 때, 사도는 단순히 복음적인 권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풍성한 은총을 함께 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받는 그는 자신 안에 품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됩니다.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의 여건이 형제자매 여러분이 사랑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에 우리를 찾아오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도 각자 자신의 하느님 체험과 신비를 품고 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성탄의 큰 기쁨이 늘 함께하기를 빌며 주님의 강복을 전합니다.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5년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올해 우리는 여러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때에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약속으로 우리 마음에 새롭게 울려 퍼집니다. 성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실제적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과 취약함, 남루한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어, 우리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지만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가난하고 누추한 마구간을 당신 자리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위해 인간 삶의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셨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낮아지심을 선택하셨다는 이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은 세상의 힘이나 권세가 아닌 사랑과 온유 안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37)라고 말씀하셨고, 교황 레오 14세는 “주님을 향한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입니다. … 이는 단순한 인간적 친절을 베푸는 문제가 아니라 계시입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느님의 능력이 강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얼굴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신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탄의 신비는 모든 사람의 고유한 존엄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본받아 소외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동행하는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무관심의 장벽을 넘어, 참된 ‘가톨릭’ 정신으로 하나 되는 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한 나머지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거나 때로는 외면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관심의 벽을 쌓게 하고, 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마저 마음의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톨릭’입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를 품는 보편적 공동체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는 약한 이들, 주변부에 놓인 이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중심에 둘 때 교회가 비로소 주님의 모습을 참되게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5, §17 참조). 따라서 우리는 성탄의 빛에 비추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반문에 진지하게 응답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며, 저마다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무관심의 장벽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 교구는 참된 ‘가톨릭’ 정신을 회복하고 하나 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희망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실천적 사명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희망은 기다림으로만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지니고 이웃을 향한 책임 있는 사랑을 실천할 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열매입니다. 교황 레오 14세도 이러한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 책임이 함께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102, §108 참조). 희망의 씨앗은 매우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고 사소한 사랑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구를 희망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가난을 선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무관심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갑시다. 희망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은 우리 교구를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증언하는 참된 ‘가톨릭’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일상에 늘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다시 한번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화의 모후님! 복자 신석복 마르코, 구한선 타대오, 정찬문 안토니오, 박대식 빅토리노, 윤봉문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교 마산교구장 이성효 리노 주교
2025 성탄 메시지
†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을 비추는 참빛이 되어오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사람이 되어오신 사랑의 하느님 시작이며 마침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가장 나약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요한 1,10 참조). 비록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맞아들이지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총의 힘으로 오늘도 세상에서 하느님 자녀라 불리며 하느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세상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참 많이 있지만, 현대 문물을 악용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수많은 데이터, GPU를 바탕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은 양날의 검과 같은 모습으로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 윤리, 도덕과 같이 인간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영역도 AI를 이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정치 문화를 만들고 특정 집단을 자극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매매하는 이들, AI를 이용해 교묘하게 편집한 허위 정보로 신앙인들을 현혹시키며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이들, 종교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여기며 장사하는 이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불문하고 예수님을 외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지위를 누리기 위해 전쟁을 멈추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며,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자리해야 하는 곳을 짓밟는 가운데 자신의 말과 행동과 결정이 당연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멈추지 않는 총과 폭탄 소리를 들었고, 개인과 기업과 국가를 막론하고 자신의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을 나라 안팎에서 보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세상의 등불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첫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를 통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루가 멀다고 급변하고 있지만 그 화려한 풍요로움 속에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존재합니다. 양극화된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관심의 문화’가 필요하다며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라”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들이 부르짖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모범을 예수님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이들 속에 자리하신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경배하며 세상에 하느님의 빛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내 주위에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눈과 시대의 징표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며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노드 이행단계를 지내며 WYD 수원 교구대회를 준비하는 수원교구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끝났지만 각 지역교회는 ‘최종 문서’를 중심으로 시노드 이행단계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시노드적 교회를 살아가기 위해 2024년부터 3년 동안 살아갈 사목교서를 발표하였고 영적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노드적 삶의 모습은 2027 WYD 수원 교구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잘 녹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대회를 준비하는 이들과 일선 본당의 봉사자 모두가 성령 안에서 대화하고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세상 속으로 나가도록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참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전하는 기쁨과 평화가 WYD 수원 교구대회를 준비하며 지내는 교구민들의 모든 여정 안에 살아 숨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회를 준비하는 모든 젊은 이들과 봉사자들이 주님과 함께 걷고 경청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하느님 사랑의 증인으로 세상에 파견되기를 기도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2025 성탄 메시지
찬미 예수님!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2025 성탄대축일 메시지
+ 찬미예수님,
예수님의 탄일 오늘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신 날입니다. 이를 降生(강생)이라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신 날입니다. 이를 肉化(육화)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아기로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임마누엘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이 하늘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신 까닭입니다. 이를 인간의 神化(신화)라 합니다. 救援(구원)이라고도 하고,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하고, 하느님 나라라고도 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기적이 있지만, 주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주님이 우리 인간에게 인간으로 오신 일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좀처럼 믿기 어려운 기적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기적입니다. 사랑은 선물인 까닭입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부처럼, 연인처럼,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 새 펠리칸처럼.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2000년 전 주님의 탄생은 사랑의 탄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탄생을 기념합니다.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베틀레헴이었습니다. ‘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묘한 일이지요. 훗날 당신은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마굿간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장소입니다. 자연과 가까운 장소입니다. 구유에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뉘어 있었습니다. 곁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있었습니다. 주변 들판의 목동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양들이 있었고, 소와 나귀와 낙타들도 있었습니다. 훈훈한 입김과 부드러운 눈짓과 사랑스런 속삭임과 평온함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희망과 평화와 기쁨이 가난한 이들에게도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유향과 황금과 몰약의 선물보다 그들의 고단한 여행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하늘에는 큰 별이 비추고 있었고, 천사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부릅시다. 자비와 자선과 나눔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2025년 12월 25일 성탄대축일에
천주교원주교구장 조 규 만 바실리오 주교
2025 성탄 메시지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그리고 사제, 수도자 여러분!
올해도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이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겹게 사는 이들, 고통과 환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그분 친히 위로와 힘이 되어주시고 희망의 빛을 비춰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 곁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좀 더 우리 가까이 계시고자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은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간 구원이라는 큰 뜻을 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0-11 참조).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집을 찾지 못해 짐승이 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구간은 어두컴컴하고 짐승들의 오물로 더럽혀진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그런 어둡고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구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탐욕과 미움, 낙담과 절망과 같은 감정과 생각들로 자주 우리 마음이 얼룩지고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님은 마구간과 같은 우리 마음에도 기꺼이 오십니다. 어둠을 밝혀주시고 더러움을 씻어주시고자 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묵시 3,20) 계십니다. 그분께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드리도록 합시다. 그분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 은총의 빛으로 어두운 감정과 생각을 몰아내시고 희망과 용기 그리고 이해와 포용이 자리 잡게 해주시기를 청합시다. ● 예수님은 마구간에 태어나시어 구유에 눕혀지셨습니다. 구유는 소와 말 같은 짐승의 먹이통입니다. 예수님이 구유에 눕혀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먹히러 오신 존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으로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십니다. 그분은 당신 말씀으로, 당신의 몸인 성체로 우리를 영적으로 양육하고 길러주십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그분 말씀과 성체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위로,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또한 그런 사람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쪼개줄 줄 압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많은 걸 받았음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가진 바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도록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티토 2,14). 우리가 선행에 열성을 기울여서 빵을 쪼개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면, 세상에는 다툼이 차차 잦아들고 평화와 기쁨이 서서히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집을 찾지 못해 짐승이 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눕혀지셨습니다. 세상 한구석 외진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외톨이’처럼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베들레헴 하늘에서는 수많은 천사가 나타나 그분의 탄생을 알리면서 찬미의 노래를 불렀고,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의 전갈을 받고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하였습니다(루카 1,8-20 참조). 우리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하느님을 생각과 삶의 중심에 두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위로와 기쁨을 전해주는 천사들이 나타나고, 마음과 힘을 보태주는 목동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시고 살면,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마음 안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수백 번 수천 번 거듭 태어나셔도 내 마음에 태어나시지 않으면, 성탄이 왔다고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성탄절은 달력에 ‘성탄절’이라고 적힌 날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탄은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 태어나시는 날,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는 날에 이루어집니다. 바로 오늘이 여러분 모두에게 진정한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빛과 사랑이 우리 가정에, 이웃에게, 세상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합니다.
2025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세주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은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안에 가장 온전히 드러난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이러한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제까지 느낄 수 없었던 구원의 빛이 내뿜는 사랑의 강렬함을 실감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예언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온 구원의 빛을 이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성탄의 위대한 사랑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되시기까지, 자신을 남김없이 비워낸 하느님의 사랑은 이를 통해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57-458항 참조) 이 거룩한 날, 사도 바오로의 신앙고백을 더 깊이 묵상해 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하느님의 사랑에는 강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포기하는 비움(Kenosis)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인간의 처지가 되시고,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모두 비워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내어주신 강생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이 사랑을 이제 우리의 삶 안에서 실천할 차례입니다. 하느님의 자기 비움을 깨달은 우리라면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을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강요는 통교를 가로막고 결국에는 사랑도 가로막습니다. 사랑은 소통과 친교 위에 이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탄생 직전, 요셉 성인과 성모님은 해산할 집을 찾아 헤맸지만, 그 누구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기심과 불통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세계적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느새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높아진 위상 이면에는 또 다른 슬픔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분쟁, 대화와 타협 없이 대립으로만 치닫는 갈등, 단체와 정당 등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이기주의에 모두 지쳐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동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니, 공동선 자체에 무관심한 듯해 더욱 안타깝습니다. 나아가 경제적 풍요의 이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물론 사회적 분열과 계층 구분으로 사회가 더욱 양분화되는 양상입니다. 빛보다는 어두움이 짙게 드리운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할 자리가 없었듯, 지금의 세상도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를 자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성탄으로 세상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 빛은 닫힌 마음을 열고 굳어진 생각을 녹이는 사랑의 빛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버리시고 자신을 비우신 하느님처럼 우리도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빛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이기심을 내려놓고, 자신만을 향하던 우리의 시선을 이웃에게 돌립시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들어오실 자리를 마련합시다. 특별히 우리 교구는 2027년 세계 청년대회를 준비하며 ‘환대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환대는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느님을 만나며, 사회의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구원의 빛 안에서 충만한 은총의 시간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랫동안 구세주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려왔습니다. 드디어 오늘, 천사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이 소식은 일찍이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들었던 메시지이며, 오늘 우리가 듣는 메시지입니다. 아울러 전 세계의 수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듣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한가운데, 특히 우리의 어둠 속에 전해지는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자를 보내셨고,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메시지로 인해 용기와 힘을 얻었을까요? 소수인으로 살았던 초대 그리스도인이 힘을 얻었고, 여러 이유로 박해를 받으며 구원을 희망하는 사람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크나큰 기쁨을 얻었고, 차별과 혐오, 폭력과 테러, 내전과 전쟁 등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도 힘을 얻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분명 지난 2000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에게 힘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제는 우리에게 맞닿기를 바랍니다. 곧 우리도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여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친히 사람이 되신 이유는 너무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요한 3,16) 때문입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 예외 없이 우리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고,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입니다(마태 1,23 참조).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삶에 동행하십니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느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분의 빛과 사랑과 보살핌이 매우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아직 어둡고, 이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는 분쟁, 테러, 내전, 전쟁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피난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물질주의, 극심한 개인주의, 상대주의도 만연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갈등과 대립, 불신, 차별, 혐오 등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적 결속력은 이른바 포퓰리즘과 가짜 뉴스로 인해 침식되고 있고, 보편적인 진리보다는 폐쇄적이고 자극적인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그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11항 참조). 이러한 어두운 세상과 우리의 어둠을 환히 비추기 위해 하느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요한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그런데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에게는 유일무이한 특별한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기가 하느님의 영원하신 아드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가톨릭교회 교리서」, 464항)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오신 것은 편협한 사상이나 이념을 퍼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티토 3,4)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곧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기”(1티모 2,4)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곧 인종과 성별과 지위 등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포용합니다. 그분은 올바른 삶에도 오시고 무질서한 삶에도 오십니다. 그분은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도 가난한 식탁에도 오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오시며,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오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특히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사 9,1)에게 더 가까이 오십니다. 슬픔, 걱정, 절망 등에 빠진 그들이야말로 밝은 빛이 더욱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외로운 사람을 포용하시고, 병상에서 신음하는 환자, 직장을 잃은 실업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십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걱정과 곤경마저 껴안으시기 위해 그분은 들판의 마구간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오십니다. 당신의 빛으로 우리의 어둠을 비추시기 위해 오십니다. 아무도 이 빛을 끌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이 빛은 모든 위기에 대한 해답이며, 우리의 기원이며 목적입니다. 그러니 이 빛에 가까이 다가갑시다. 이 빛으로 여러분 자신을 밝히시길 바랍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를 가득 누리는 성탄절이 되시고,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길 빕니다.
2025년 성탄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
2025년 주님 성탄 대축일 사목 서한
주님의 거룩한 성탄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성탄절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복되고도 기쁜 날입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죄 외에는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을 당신 친히 체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진정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만물이 자기 멋대로 돌아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몸소 새로운 역사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기 지식이나 빈약한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자기 생각대로 살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주님의 탄생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될 수 있으며 이제까지 있었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며 새로운 탄생입니다. 한 아기의 탄생은 지쳐버린 우리 삶에 대한 하나의 반향이고 도전입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생활 속에 지쳐버린 분들, 일어설 수 없는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 무자비한 경쟁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버린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성탄이 새로운 도전의 기회와 축복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 우리의 도움이시고 하느님 희망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올해 초부터 계엄과 탄핵, 대선 등 여러 사건을 통하여 분명히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막막한 어둠을 느낀 때가 있었지만, 어둠이 빛을 이길 순 없었습니다. 언제나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승리하는 법입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감싸주시고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십니다. 최근 우리 시대는 AI(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인간은 전에 없던 편리함을 누리는 동시에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 또한 경험하고 있습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지만, 더 깊은 고독의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는 어떤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가? 누가 나를 사랑하며,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계속 던지다 보면 마침내 하느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질문들은 우리를 성탄의 신비로 이끕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우리를 향해 내려오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끕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갈망에 더 높은 능력이나 기술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한 아기, 연약하고 작은 존재로 오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보러 오지 않았다. 너와 함께 있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 왔다.” AI는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우리의 상처를 함께 아파할 수는 없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희망을 주거나, 용서하거나, 죽음의 어둠 속에서 손을 잡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외로움과 두려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신 사건, 즉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의 선언입니다. 지금 제주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기후 위기, 개발 압력,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무거운 숙제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제주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성탄의 빛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선언은 고립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영성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말구유는 단순한 가난의 표징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고 품는 공간이 무엇인가를 묻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창조를 보존하고, 제주의 생태적 정체성을 지키며,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터전을 물려주기 위한 판단과 선택들이 이 성탄 안에서 새롭게 다듬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가장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평화와 새로움을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주 사회에 주시는 성탄의 은총은 평화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굳건하게 하고, 모든 생명을 품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입니다. 오늘도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 가정에는 사랑과 화목, 제주 공동체에는 치유와 희망을 가득히 채워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함께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주님의 축복을 보냅니다. 주님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2025년 성탄절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창우 비오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구세주의 탄생을 경축하는 주님 탄생 대축일입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기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밤을, 교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 노래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밤을 밝혀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밤 미사 본기도 참조).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사 9,1)을 위하여 참된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이들, 기쁨 속에서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티토 2,11)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통해서 알고 만나게 된 이들을 살펴보며 성탄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 봅시다. 1.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이 되신 이 “거룩한 밤”, 온 세상은 화려한 장식과 찬란한 조명으로 거리와 집들을 꾸미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본래 밤은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가득한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의 세상은 “돌아오지 못하는 곳, 어둠과 암흑의 땅, 칠흑같이 깜깜한 땅”(욥 10,21-22 참조)입니다. 그래서 어둠이 내린 밤은 죽음을 상징하고, 인간을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어둠 속은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에페 6,12 참조) 죄악이 행해지며(루카 22,53 참조), 악인이 몸을 숨기는(시편 107,10-11 참조) 장소입니다. 이 어둠으로 채워진 밤은 죄의 유혹이 찾아오고 악이 행해지는 시간입니다(느헤 6,10 ; 욥 24,14-18 참조). 또한 밤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악인들의 시간이며(요한 9,4 참조), 동시에 하느님 심판이 시작되는 시간(이사 60,2 ; 스바 1,14-16 참조)이기에 공포가 인간을 덮쳐오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의 세력이 위세를 떨치는 밤을 싫어합니다. 어둠을 잊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밝은 조명과 튼튼한 건물로 어둠의 권세를 이기려 애쓰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깊은 어둠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둠과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담장은 이웃에 대한 불신과 고립 같은 더 큰 어둠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이 깊은 어둠은 사회적 약자와 이방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로, 사회적 분열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스스로 어둠을 몰아내려고 불을 환하게 밝히지만, 그 노력은 허무와 죽음 앞에서 모두 허사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려고 잘못된 믿음, 거짓된 빛과 위로에 빠져서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둠이 깊고 가득한 밤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참된 빛이 드러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오늘 밤, 스스로 어둠을 이길 수 없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을 위하여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구원의 은총을 가져다주시는 참된 빛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두려움에서, 죄에서,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빛의 신비를 깨닫는 것이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밤 미사 본기도 참조). 2. 아기 예수님을 만난 이들 -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자들 참된 빛으로 오시는 “구원자”는 화려한 궁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장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루카 2,11-12 참조). 이 구원의 빛을 가장 먼저 만난 분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기시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루카 1,38 참조). 이로써 성모님은 태중에 빛으로 오시는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쁨 속에서 가난한 이와 비천한 이를 살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셨습니다(루카 1,46-53 참조). 예수님의 양부인 요셉 성인과 성모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가장 먼저 품에 안으신 분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부모는 어두운 밤의 위험에서 아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켜줄 자리도 얻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입니다(루카 2,6 참조).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며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친 가난한 이들입니다(레위 12,8 ; 루카 2,24 참조). 또한 천사들로부터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이들은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루카 2,8-12 참조). 어둠 속에서 위험과 추위, 배고픔과 노동의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 가난한 이들,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소외된 이들인 목자들에게 복음이 가장 먼저 선포됩니다. 이처럼 참된 빛, 생명의 빛으로 오시는 하느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리고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2고린 8,9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거룩한 이 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루카 1,45)라는 믿음으로 구세주를 낳으신 어머니의 행복을 함께 나눕시다. 그리고 우리 안에 태어나신 구세주를 기쁨으로 맞아들입시다. 요셉 성인과 함께 구유를 바라봅시다.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바라보며,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납시다. 그리고 목자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봅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마태 5,3)이 되어 구원의 기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돌보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지극히 놓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2025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2025 성탄 메시지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멀고 외딴 곳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이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의 현존’입니다. 힘들고, 차갑고 고단한 세상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의 아픔을 함께 지고,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시기 위해 함께 하십니다. 2025년 희망의 순례자라는 희년을 지내며 성탄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평화와 희망이 여러분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고, 가정과 본당 공동체 안에 사랑의 빛으로 가득 퍼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신다’는 이 놀라운 신비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기를 바라며, 모든 이가 그 사랑 안에서 새 희망을 발견하는 복된 성탄 시기를 지내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5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
2025 성탄 메시지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그리고 우리나라 영토, 영해, 영공은 물론 해외 파병지에서도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든 장병들에게 성탄 인사를 전합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이 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세상 한가운데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역설적인 사건은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큰 신비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성탄 대축일 밤 미사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들었던 이들이 등장합니다.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이들이 성전의 사제들도 아니고, 유명한 예언자나 율법교사도 아닌, 이름도 모르는 목자들이라는 점에서 하느님 사랑의 보편성을 떠올려 봅니다. ‘보편적’이란 말은 우리 천주교의 본래 이름, 가톨릭(catholic)의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그 무엇으로도 차별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대하며 사랑하는 것은 가톨릭의 근본정신이며, 아울러 이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목자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지만 그 두려움은 곧 기쁨이 되었고, 자신들이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습니다.(루카 2,20 참고) 그런데 구세주의 탄생이 모두에게 기쁨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경쟁자의 등장으로 착각한 헤로데는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란 것은 물론, 심지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이는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마태 2장 참고) 헤로데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을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고 거룩한 것이 있더라도 내 안에 욕심이 가득하다면 결코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탄이 나에게 진정 큰 기쁨이 되려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아야 합니다. 우리는 4주간의 대림 시기 동안 고해성사 및 자선 실천 등으로 성탄을 성실히 준비했으니, 이제는 성탄의 기쁨을 가정과 군에서, 사랑과 평화를 담은 말과 행동으로 나누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작은 가정교회’를 이루는 혼인성사의 해” 2026년 우리 군종교구는 혼인성사의 신비를 묵상하는 여정을 걷습니다. 혼인성사를 통해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둘이 한 몸이 되고 성가정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가정의 원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이루셨던 가정은 어떤 면에서는 불행한 조건들을 참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그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아 구유에 눕혀야 했으며,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토록 수많은 불행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가정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느님을 가운데에 모시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어떤 풍파와 시련이 닥치더라도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행복 안에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과 국군장병 여러분!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국토방위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장병 여러분이 있었기에 오늘 이 밤 구유 앞에서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비추는 참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께서 보여 주신 겸손과 사랑의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오롯이 살아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가정과 부대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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