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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 프란조2: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만남 (상) 피렌체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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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08 ㅣ No.669

[창간 34주년 기획 “부온 프란조(Buon pranzo)!”] (2)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만남 (상) 피렌체(Firenze) 시절에


요리와 사랑에 빠진 레오나르도 ‘세 마리 개구리 식당’ 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뇨르 레오나르도 다 빈치(Signor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선생님), 안녕하세요?”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직전, 로마에 갔을 때 이탈리아 전역은 당신의 선종 500주년을 기념하느라 전시회, 학회 등으로 매우 분주하더군요. 사실 르네상스 시대에서 당신에게 붙여진 호칭은 화가, 조각가, 천체학자, 해부학자, 물리학자, 음악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습니까? 그 많은 호칭 중에 오늘 저는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만남을 꾀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요리를 좋아했고, 또 실제로 요리사였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실은 저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을 알면 알수록 ‘요리하는 시뇨르 레오나르도’의 매력에 푹 빠졌음을 고백합니다. 시뇨르 레오나르도, 이 지면을 통해 당신이 요리에 관심을 두며 살았던 시기를 피렌체 시절과 밀라노 시절, 로마 시절 등으로 나눠 씁니다. 당신께 이해를 구합니다.

 

1452년에 태어난 당신은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할 운명이었지요. ‘혼인 외 출생자’라는 낙인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친할아버지는 어린 당신의 손을 잡고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빈치(Vinci) 근처 방앗간에 자주 들르곤 했지요. 들녘에 익어가던 밀 이삭의 향기를 맡으며 지천으로 핀 들꽃과 나무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부재, 그 허전함을 달래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군요. 일찍이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화가이자 건축가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당신을 ‘아름다움과 은총,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놀라운 사람’이라고 하였지요. 침착하고 사려가 깊으며 자연에 관심이 많던 어린 레오나르도, 어쩌면 그때부터 당신은 인간이 먹는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레오나르도와 보티첼리가 식당을 운영했던 아르노 강변 풍경과 베키오 다리. 그림은 고영심 대표의 딸 김지휘씨의 2016년 작 ‘아르노 강과 폰테 베키오’다.


 

친모 카테리나가 혼인하면서 인연을 맺은 의붓아버지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부티 델 바카의 제과점은 요리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지요. 사람들이 ‘아타카브리가’(Attaccabriga), 곧 잔소리꾼이라고 불렀던 의붓아버지의 제과점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제과 공정을 눈여겨보던 어린 레오나르도가 갓 구운 돌체 마르자파네(Marzapane)를 한입 깨어 물며 그 단맛에 감탄을 연발하던 그때 이미 요리에 대한 당신의 열정은 지대하지 않았던가요?

 

나중에 아들이 1000가지 관심사에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친부 세르 피에로 다 빈치는 당신이 20세가 되자 베로키오(Andrea Verrocchio) 공방의 문하생으로 보냈지요. 그때 그 공방에는 페루지노(Pietro Perugino)나 기를란다이오(Domenico Ghirandaio),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등 당대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스승 베로키오가 어린 제자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Batessimo di Ges)를 보고 다시는 붓을 들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였다니, 그 천재적 재능을 어떻게 가늠해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빼어난 작품을 그렸으면서도 당신은 아르노(Arno) 강가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위의 ‘타베르나 델레 뜨레 루마케’(Taverna delle tre rumache), 달팽이 세 마리 식당 주변을 흘깃거리며 공방 짝꿍 보티첼리와 함께 식당 주방에서 퍼져 나오는 음식 냄새에 정신이 뺏겼지요. 그래서인지 당신은 요리를 배우고 싶은 갈망으로, 또 얼마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으로 일할 사람이 더는 필요 없다는 식당 주인에게 일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요. 그로 인해 당신은 오전에는 공방에서 목탄과 색상의 예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단돈 2페니를 받으며 식당에서 일하게 됐지요. 그때 웨이터로 있던 당신은 뜻하지 않게 세 명의 요리사가 죽는 바람에 주방에 들어가 일하게 됐던 것도 기억나지요? 하지만 당신이 “나를 고용하면 식당이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 대로 그 식당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르네상스의 혼에 젖어 예술적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꽃과 과일로 장식된 당신의 그 창조적이고 세련된 음식은 소박한 방문객들의 중세기식 먹방을 채우기엔 그 양이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었지요. 해고를 당한 건 당연했지요.

 

‘레오나르도와 산드로의 세 마리 개구리 식당’의 메뉴판. 산드로가 그렸고, 레오나르도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불의의 화재로 ‘달팽이 세 마리 식당’이 전소되면서 요리에 열정이 다시 불타오른 당신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1475년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Le tre rane di Sandro e Leonardo) 식당을 그 자리에 개업해 1478년까지 운영했지요. 참,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세 마리 달팽이’나 ‘세 마리 개구리’ 같은 단어가 왜 유행했을까요? 한 마리도 아니고 하필이면 세 마리였는지 모르겠네요. 아, 짐작 가는 건 있습니다. 제가 로마에 살 때, 키우던 닭을 잡아 토막을 칠 때, 끓는 올리브유에 마늘을 던져 놓을 때 옆집 시뇨라 데레사의 주방에서는 한결같이 “오, 삼위일체시여!”(O, Santa Trinit!)라는 말이 들려오곤 했더랬지요. 토막 치던 닭이 도마 위에서 튕겨 나갈 때, 기름이 달궈져 기름이 레인지 위에서 튈 때 삼위일체께서 개입해(?) 주셨던 걸 보면, 여러 세기에 걸쳐 주방에 ‘삼위’께서 힘써 주셨나 하는 느닷없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메뉴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바람에 고객들이 메뉴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야 했습니다. 삶은 어린 염소 고기, 카르초피(carciofi, 아티초크), 양의 신장, 개구리 튀김(식당 특별 메뉴), 오이, 당근 등의 메뉴를 급기야 친구 보티첼리가 그림으로 그려 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 이번에도 너무 시대를 앞질러 나간 당신의 창조성이 강조된 르네상스적 예술 요리법은 손님들에게 먹히지 않았고, 결국은 3년 만에 식당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시뇨르 레오나르도, 오늘은 여기까지 적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레시피 - 레오나르도의 카라바챠(Carabaccia di Leonardo, 양파 수프)

 

▲ 준비물 : 양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육수(또는 채수), 구운 빵(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운), 그라나(파르마 산 치즈 가루), 소금, 후추.

 

→ 두꺼운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깨끗이 씻어 얇게 썬 양파를 볶는다.

→ 어느 정도 타지 않을 만큼 몇 큰술 물을 부은 뒤 뚜껑을 덮고 30분간 천천히 익힌다.

→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넉넉하게 육수를 붓고 30분간 뚜껑 없이 천천히 익힌다.

→ 그릇에 바싹 구운 빵을 담고 그 위에 수프를 담는다.

→ 수프 위에 치즈를 뿌린다.

 

모니카의 팁

씹히는 게 싫으면 익힌 양파를 부드럽게 살짝 간다. 깍두기 모양으로 자른 빵을 올리브유에 살짝 버무려 팬이나 오븐에 노릇하게 구워 먹을 때마다 수프 위에 얹어 먹으면 부드러운 수프와 바삭한 빵의 조화가 일품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6월 5일, 고영심 모니카(디 모니카 di monic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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