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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 편찬사업 구술채록4: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통일(統一)이 아닌 통이(通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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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2-31 ㅣ No.1796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 편찬사업 구술채록 · 4]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통일(統一)’이 아닌 ‘통이(通異)’

 

 

• 구술자 : 오혜정(스바니야) 수녀 /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 면담자 : 남소라(모니카) /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 일 시 : 2024년 6월 17일 (월) 오후 2시

• 장 소 :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

 

남소라 : 안녕하세요. 수녀님께서는 2000년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에 부임하시기 전에도 북한과 관련된 활동을 해 오셨는데, 부임 전 활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혜정 수녀 : 1992~94년까지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에서 일했고요. 1993~96년까지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97~99년까지는 서울대교구 통일사목위원회에 있다가, 2000년 2월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남소라 :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학과 입학 동기가 궁금합니다. 

 

오혜정 수녀 : 제가 학교를 입학한 동기는 먼저, 저희 수도회의 역사와 관계있어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는 1932년 평양에서 설립됐는데, 6·25 때 저희 선배 수녀님들 열한 분이 못 내려오셨고, 다른 분들은 피난을 내려오셨어요. 그래서 우리 수녀님들은 모원인 평양을 항상 그리워하며,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어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북한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 수도회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게 제가 될 줄은 몰랐죠(웃음). 

 

공부를 제안 받았을 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지만 아무튼 시작했죠. 하지만 쉽지 않았어요. 학교 다니는 것도 하루하루 정말 힘들게 다녔는데 학위논문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학교 가면 학교 성당에 먼저 가서 예수님께 ‘도대체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예요. 나한테 뭘 원하세요.’ 하면서 계속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논문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아, 통일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통일된 다음이 문제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남과 북은 너무나 오래 떨어져 살았고, 남쪽이나 북쪽이나 너무 다른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살고 있어 통일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구나…, 그러면 사람을 통해 통일사회를 준비해 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북한과 남한 양쪽 사회를 다 경험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생각났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냥 한 인간의 삶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 그들의 사회 적응 측면에서 설문을 시작했죠. 그분들은 웬 이상한 옷을 입은 아줌마가 와서 막 물어보고…(웃음). 무조건 그냥 찾아갔어요. 굉장히 용감하게 공부했죠. 그리고 1996년에 졸업했는데 이때쯤 한 북한이탈주민이 남쪽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중국으로 밀항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통일부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어요. 그때 제 지도교수인 이상우 교수님이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이셨어요. 교수님이 회의 중 “아, 그렇지 않아도 내 제자가 지금 탈북민 적응에 대해서 논문 쓰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통일부에서 너무 반가워했고, 그래서 논문이 이슈가 됐죠. 1995~96년 북한에 큰 홍수 피해가 나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으로 대거 입국하는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통일사목위원회’가 만들어졌어요. 통일사목위원회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활동이었어요. 그때 통일사목위원회 위원장은 이기헌(베드로) 주교님이셨어요. 그때는 신부님이셨죠. 신부님하고 탈북민 방문도 엄청 많이 다녔죠. 제가 쓴 논문은 논문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저의 사도직 활동과 연계됐죠. 그야말로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논문을 쓰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셨던 거죠. 

 

남소라 : 통일사목위원회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로 통합되고 얼마 뒤인 1999년 4월 13일 북향민 청소년 지원을 위해 ‘하이모(하나를 이루어가는 모임)’가 만들어졌어요. 그 탄생의 주역이신데 처음에 어떻게 시작이 된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혜정 수녀 : 어느 날 북에서 내려온 부부랑 아들 둘이 있는 가정에 방문했어요.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 “우리 애가 학교생활을 너무 힘들어 해요.”라며 아이 문제를 호소했어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학교에서 아이 뒤에 앉은 애가 흰 티를 입은 이 아이 등에 ‘북한’이라고 글씨를 썼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너무 화도 나고 속상해서 그 뒤에 앉은 애를 때렸나 봐요.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이 아이가 문제아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애를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아이를 보며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아이는 부모에 의해 남쪽에 온 거잖아요. 그리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친구도 없고…, 너무 안됐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애가 좀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아! 모임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얘네들하고 일대일 매칭을 해서, 형처럼 누나처럼 언니처럼 그렇게 좀 지지해주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놀러도 가고요. 이 아이들의 부모는 자기들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남쪽에 대한 이해도 없기 때문에 못 해줘요. 그러니 이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면 북한 아이가 되고, 집 밖에 나오면 남한 아이가 되고, 아주 혼란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여기서 살며 남쪽 문화에 대한 흡수가 빠르잖아요. 오히려 부모 세대보다 남쪽을 더 이해하는 면도 깊고, 넓고요. 그런데 부모들은 아니잖아요. 이분들은 북한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기 때문에 당연한 거고. 양쪽이 다 안됐더라고요. 그래서 ‘하이모’를 만들었어요. 남쪽의 언니, 누나, 오빠, 형과 북쪽의 아이. 이렇게 같이 하나를 이루어 간다. ‘이룬’이 아니라 우리는 진행형이에요. 하나를 이루어가는 모임, ‘하·이·모’ 그렇게 ‘하이모’가 만들어졌는데, 결국 그 아이는 부모와 계속 편치 않았고, 그러면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요. 그 친구는 이미 하늘나라로 갔지요…. 그러고 나서 저희가 가정방문을 하며 그렇게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계속 모았고, 저희가 알고 있고 소개받은 대학생들, 수사님들, 천주교·개신교·불교 신자, 종교 없는 친구들 등 굉장히 많은 도우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나는 이렇게 내 동생을 만났다.”, “나는 이런 어려움이 있다.”, “도대체 얘는 이해가 안 간다.”고 고민을 나누면, 저희는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이렇게 한번 해볼까?”라며 같이 만들어나가는 그런 모임이었어요. 이 모임은 동생들도 도움이 되었지만, 도우미들이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을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도우미 교육이 필요했어요. 북한 이해 교육도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교육도 필요해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자기보고식 성격유형검사도구)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사님 중에 도우미 활동하던 분은 수도회 안에서 ‘띠앗머리’를 설립해서 북한이탈주민 멘토링을 더욱 확장하여 활동을 지속하고 계세요. ‘하이모’가 그렇게 시작됐고, 저한테도 굉장히 의미 있고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남소라 : 굉장히 슬픈 사연으로 시작된 거네요. 수녀님께서 쓰신 논문 마지막에 ‘귀순자 적응을 위한 제언: 귀순자들의 모임을 활성화시켜서 남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민간의 협조가 요청된다.’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는 수녀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하이모의 추구하는 바와 일치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남한에 와서 가장 크게 호소하는 문제가 무엇일까요?

 

오혜정 수녀 : 일단은 ‘편견’이에요. 과연 우리가 정말 북한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제한된 어떤 정보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역대 정권들이 남북관계를 이용한 면도 없지 않아 있으니 일단은 서로 모르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어떤 편견에 사로잡히죠. 그러니 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북한과 우리는 사회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들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고 낯서니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이분들은 너무 외롭죠. 대화할 사람도 없고. 그런 부분들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남소라 : 편견에 사로잡힌 이 남한 사회에서 살아내야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하이모’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오혜정 수녀 :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부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날 부모가 가자고 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왔고, 와보니 휘황찬란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부모는 집에서 한숨만 푹푹 쉬고 있고, 아이들은 눈치만 봐야 하고, 너무 막막한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은 한창 경험해야 하고, 뛰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 애들이잖아요. 그래서 언니, 오빠, 형, 누나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놀이동산도 가고, 캠프도 함께하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줘서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조금 더 자신 있고 자기의 생각을 좀 가질 수 있도록 그런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은 ‘그냥’이었어요. 2박3일 어디를 간다고 하면 계획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얘네들이 마음껏 하루종일 물놀이 하고 싶으면 물놀이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뭘 할까?” 물으면, “그냥 해, 그냥!”이라고 했어요. 

 

남소라 : ‘하이모’ 이외에 서울 민화위의 북향민 지원사업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혜정 수녀 : 우선 가정방문이 많았어요. 이분들이 가장 어려울 때가 명절이거든요. 그러니 명절 때 같이 모여서 지낸다든지, 뭐 야유회랑 운동회도 했었고, 또 여성들 모임, 청년들 모임, 그런 다양한 모임과 활동도 했어요. 경조사도 참석했고, 장학금도 연결했고, 굉장히 많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남소라 : 종교를 권유하지는 않으셨나요?

 

오혜정 수녀 : 권유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들이 북한에서 종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교육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종교 이야기를 하면 “봐라” 이렇게 되거든요. 그리고 탈북과정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개신교의 천주교 인식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냥 북한노래 부르고, 놀고, 간식 먹고, 재미있게 게임하고, 그렇게 종교 활동을 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재미있으니까 계속 오는 거예요. 그럴 때 예수님 이야기를 조금씩 했어요. 그들이 “천주교는 마리아 믿는 데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康盤石, 1892~1932)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물어요. 그럼 “조선의 어머니로 존경합니다.”라고 답하죠. “우리도 마리아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니까 존경하고, 공경하는 거예요.”하면, “아, 그렇습니까?”라고 답하죠. 북한 사회와 연결을 해서 아주 조금씩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먼저 이야기하기보다, 예수님이 하신 행동, 예수님의 그 마음, 예수님의 그 표정으로 그들과 함께 할 때, 그다음에는 예수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조금씩 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거부반응이 일고, “봐, 역시 그래.” 이렇게 되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안 했어요. 그리고 북한 노래를 신나게 불렀죠. 그래서 더 편안해 했어요. 거기 가면 북한 노래 부를 수 있다. 가사만 조금 바꾸면 너무 예쁘고 좋은 노래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활용했고, 좋아했어요. 신나게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왔지요. 그런데 ‘왜 성당 오라는 이야기를 안 하지?’라며 의도를 궁금해하죠.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성당 오는 거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내는 해드리겠다. 그리고 천주교·불교·개신교 다 다녀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끌리는 데 있으면 거기 가도 된다고 말해줘요. 이렇게 열어놓으니까 더 와요. 그래서 일단 그들의 상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고, 그들이 선택하도록 조금 기다려주고 그렇게 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하나원 봉사자들에게도 그렇게 안내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드렸어요. 일대일 홈스테이 할 때도 천주교 강요하지 말라고 했고, 봉사자 교육 할 때도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신 사랑으로 먼저 대하라고, 그럼 오히려 나중에 오게 된다고 말씀드렸죠. 

 

남소라 : 수녀님의 사명이라고 해야 될까요? 정말 하느님의 이끄심이 보이는 수녀님의 역사네요. 

 

오혜정 수녀 : 그러니까 놀랍지 않아요? 저라는 작은 도구를 통해서 하느님이 하신 일이죠. 제가 한 건 아니고. 저는 그렇게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할 만큼,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느님이 하신 일이예요. 전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남소라 : 민화위의 북향민 지원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혜정 수녀 :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4년에 오셔서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해주시면서, 남과 북이 ‘형제’임을 강조해 주셨는데, 이 긴 분단의 시간은 평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돼버렸어요. 교회조차도. 그래서 저는 그것을 좀 인식시키는 활동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전후 세대들이 워낙 많고, 우리가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됐고, 이주민도 엄청 많잖아요. 그러면 우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조금 달라지는데. 민족문제만을 가지고 할 거냐, 그래서 저는 조금 더 확장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것이 포함된 평화의 개념을 민족화해위원회 안에서 조금 더 깊게 확장 해주시면 좋겠어요. 첫 번째는 남북문제가 되겠죠. 그리고 이미 남북문제는 지역 문제를 넘어서 국제문제가 됐기 때문에. 동북아, 나아가서 세계문제, 또 주변 강대국의 한반도를 둘러싼 아주 첨예한 긴장 속에서 우리가 비평화라는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 아님을 교회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가 이야기 하나요? 싫어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민화위가 민족화해를 포함한 평화에 대한 것을 좀 강하게 어필도 해주시고, 어필을 위해서는 뭐 여러 가지 액션도 필요하겠죠.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분들이 피해를 겪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이분들에 대한 바른 인식, 긍정 강화의 방법으로 북한이탈주민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 중에서도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은 누군가? 그것을 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남북하나재단’이라고 통일부 부속기관인데, 거기에서 1년에 한 번씩 실태조사를 해요.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정부가 하는 거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좀 찾아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게 다를 수 있잖아요. 그들이 원하는 건 이건데,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잘한 것처럼 한다면 그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들의 눈높이에 조금 더 맞추고,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좀 맞춰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보통 북한이탈주민이 정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5년이거든요. 한국 입국 당시 필요가 다르고, 하나원 수료했을 때의 필요가 다르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접근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실태조사를 통해 조금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셔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을 좀 찾아 나서야 될 것 같아요. 그냥 앉아서 그들을 오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가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평화에 대한 큰 틀에서, 각 지구마다, 본당마다 평화를 어떻게 조금 더 구체화하고, 느끼고, 만들어 나갈 것이냐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후대는 더 감이 없는데 우리가 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소라 : 『민족화해위원회 30주년사』를 집필하는 데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오혜정 수녀 : 우리는 북한을 너무 몰라요. 우리 식으로 알고 있죠. 사람과의 관계도 자꾸 만나고, 편견 없이 만나야 더 친해지는 거잖아요. 일단 저쪽 시각으로 좀 보고 저쪽을 먼저 좀 아는 그런 노력을 민화위가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하느님이 남쪽만 예쁘다고 하실까요? 아니잖아요. 북쪽도 예뻐하세요. 우리는 제대로 알 수도 없었고,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고, 그것을 문제 제기하지 않았고, 진짜 비정상적인 이것이 우리는 너무 익숙하잖아요. 그들도 하느님의 자녀고 그들도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통일’이 아니라…, 서강대 김영수 교수님은 ‘통이(通異)’다. 다른 게 하나가 되는 거지, 똑같이 되는 게 아니다 하셨어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절대 안 해요. 그래서 이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한 연습을 통해 언젠가 만나게 될 그들의 다름을 우리가 있는 그대로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통한 평화를 강조해 주시면 좋겠어요. 

 

남소라 : 명심하겠습니다. ‘통이’라는 말씀이 울림이 있네요. 말씀을 잘 반영하여 『민족화해위원회 30년사』를 집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혜정 수녀님의 구술채록을 마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교회와 역사, 2024년 12월호, 구술 오혜정 스바니야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정리 남소라 모니카(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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