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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평,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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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 - 육영수 지음, 2024년 7월 29일 초판, 돌베개
1. 책의 제목, 구성, 내용, 연구방법
이 책의 제목과 구성과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책의 제목은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이고, 영문 번역은 “New Genealogy of Modern Korean Studies”이다. ‘서양 선교사와 근대한국학의 첫 물결’이라는 제목의 1부와 ‘식민지시기 조선학 연구의 계보’라는 제목의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프랑스인 천주교 선교사 달레(Dallet, Charles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é : 1874), 영‧미 개신교 측 및 영국에서 발간한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코리아 리뷰』(Korea Review)‧『트랜잭션』(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에 수록된 한국 관련 글들을 분석한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2부는 일본제국의 조선학 연구와 조선 지식인의 조선학 연구를 추적한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하였다. 근대한국학이란 19세기 중후반~20세기 초반 한국에 체류한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한국에 대해 지속적‧집중적‧전문적 조사와 연구를 하였고(제1 물결 : 생성/발명), 이를 발판‧가늠자 삼아 식민시대 일본 관학자가 식민통치를 목적으로 일본제국에 맞춤한 표준 한국학을 다시 만들었으며(제1.5 물결 : 재가공/재발명), 선행한 이 두 갈래 물결로부터 동력을 얻어 1920~1930년대 조선 지식인이 조선학 연구를 주도하였다(제2 물결 : 전유/교류)(이 책의 13쪽).
이어 저자는 ‘기원 탐구’란 “과거-현재-미래의 전후 관계와 인과론적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근대적 진보사관이 잉태한 허구의 논리 게임이”고, 민족주의 역사관은 “역사가를 ‘기원의 망령’에 사로잡힌 편집광 환자로 내모는 힘”이라 비판하였다. 그리고 “기원의 망령에서 빠져나오는 해독제”가 계보학이라 주장하고, 계보학은 “지나간 사건을 그 고유한 산란(散亂) 속에서 유지하기 위해 (…) 우연과 미세한 일탈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푸코(Foucault, Michel)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저자는 푸코의 계보학(Geneology)과 담론의 역사(History of Discourse) 개념으로 근대한국학을 바라보겠다고 하였다.(이 책의 17~19쪽)
2. 한국학? 조선학?
저자가 서양사에서 근대한국학으로 연구 대상을 ‘결정적으로 전환’한 것은 네델란드 레이던대학과 벨기에 루벵가톨릭대학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영어로 강의한 경험이라 한다. 이 책의 시작인 셈이다. 서양사 전공자로서 유럽의 대학들에서 한국(사)을 거의 모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저자는 한국사에 관심을 넘어선 연구 의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국력 신장을 가능하게 한 한국 근‧현대사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양사 전공자/연구자(근‧현대 서양 지성사와 프랑스혁명이 주 전공)이기 때문인지, 저자는 한국사를 이해하는데도 서양인/한국인 서양사 전공자들의 인식과 이론(틀)을 적극 적용‧활용하고 있다. 저자는 2019년 『지식의 세계사: 베이컨에서 푸코까지, 지식 권력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왔는가?』(휴머니스트 출판그룹)를 간행하였는데, 비슷한 구조와 서술을 볼 수 있다. 이를 한국사에 적용하면, “지식 권력은 한국사를 어떻게 지배해왔는가?”이다. 그리고 ‘지식 권력’으로 한국사를 탐구하면, 불교학(자)과 유학(자)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연구 대상 시기로 설정한 19세기 중엽에도 여전했던 한국인 지식 권력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근대한국학의 뿌리를 서양 선교사에게서 찾는 저자의 인식과 접근 방법에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저자는 ‘한국학’과 ‘조선학’ 용어를 혼용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인식과 그 인식에 토대한 논리 전개 및 서술이 아쉽다. 한국학은 “한국에 관련된 각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한국의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다”룬다.(『표준국어대사전』) ‘조선학’이란 용어는 『동아일보』1926년 4월 29일자에 수록된 최남선의 「단군론 : 조선을 중심으로 한 東方文化淵源 연구(11)」에서 처음 찾아진다. 최남선은 단군 연구를 조선학의 하나로 규정하고, 단군 연구의 목적은 일제의 ‘조선사’ 편찬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때의 ‘조선학’ 용어는, 일제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간행이 가능한 신문에 수록한 때문이었고, 오늘날에는 역사적인 용어로서의 사용 외에는 비판적인 사용이 필요하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주권과 영토를 침탈, 강점한 일제가 ‘조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제국’(帝國)의 명칭을 사용한 ‘대한제국’이 ‘일본제국’과 같은 역사 발달 단계(수준)의 국가였음을 외면‧무시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제국이 그들과 같은 수준의 대한제국을 침략, 강점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운 ‘문명화의 사명’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지칭하고 강요한 ‘조선(인)’ 명칭은 1392년에 설립된 나라일까, BC 2333년에 시작된 (고)조선일까? 어느 것이든, 한국사를 정체성 이론에 가두는 것이다. ‘조선’은 근대 이전의 역사에 머물러 있으므로 세계열강과 더불어 근대사를 펼치고 있는 일본제국이 ‘조선’을 통치한다는 식민사관이 작동하는 용어이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근대한국학의 뿌리와 갈래 : 서양 선교사, 일본 관학자, 조선 지식인을 연결하기 또는 다시 뒤섞기』라 하였는데, 영문 제목은 “New Genealogy of Modern Korean Studies”라 하였다. 그런데 서평자가 이 책의 한글 제목을 영문으로 번역하면, The Roots(Origins) and Branches of Modern Korean Studies : Connecting or Remixing Western Missionaries, Japanese Government Scholars, and Joseon Intellectuals이고, 영문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근대한국학의 새로운 계보’이다. 한글 제목과 영문 제목에 이‧출입이 있고, 인식에도 간극이 느껴진다.
그리고 저자가 연구 대상으로 한 한국학이 ‘Korean studies’인지 ‘koreanology’인지 궁금하다. 저자는 ‘Korean studies’라 영문 번역하고 주장한다. 그런데 서양 선교사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일본 관학자들은 식민통치를 목적으로, 한국 지식인은 민족운동의 문화적 동력을 얻고자 한국학 연구에 몰두하였다는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Korean studies’보다 ‘koreanology’가 더 적합해 보인다. 선교, 식민통치, 민족운동이라는 특정한 시각과 관점에서 보는 한국학이기 때문이다.
3. 근대한국학을 그려내기 위한 연구 분석의 대상
저자는 근대한국학을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1세기에 걸쳐 태동, 형성, 조탁, 분열된 것”이라 하였다.(17쪽) 그리고 ‘근대한국학’의 출발점을 19세기 후반으로 삼은 이유는 “조선의 문호개방을 전후로 한 시기에 ‘조선(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양 선교사들의 편지, 회고록, 선교 보고서, 정기간행물 등과 같은 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쏟아졌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런데 근대한국학은 “순전히 자생적인 민족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이 땅에서 순교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서양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에서 움튼 새싹이었다”고 주장한(42) 저자는 한국인들의 자기 역사에 대한 관심과 저술은 외면/무시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 : 안정복, 1778),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이긍익, 1776), 『동사』(東史 : 이종휘, 1803), 『해동역사』(海東繹史 : 한치윤/한진서, 1814/1823), 『동사약』(東史約 : 이원익, 1859), 『동국통지』(東國通志 : 박주종, 1868) 등은 한국인이 저술한 한국 역사서들이다. 이 저술들을 분석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저술한 역사서를 언급하는 것은 ‘애국적인’ 주장이고 몰(沒)/비(非)역사적인 사고방식이며, 19세기 중엽까지도 조선인에게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은 논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아포리아’였다고 단언한다.(이 책의 13~14쪽) 그런데 저자의 이러한 인식과 주장이야말로 한국(학)을 논하면서 한국인들의 인식과 저술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태도이고, 연구자로서는 경계해야 할 자세라 생각된다. 식민사관의 타율성 이론이 연상된다.
저자는, “서양 선교사들의 편지, 회고록, 선교 보고서, 정기간행물 등과 같은 자료”들 중 극히 몇 개만을 연구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였다. 따라서 저자가 선택한 자료들이 저자의 논지에 사실성/객관성/합리성/보편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궁금하다.
근대한국학에 대한 서양 선교사의 저술로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들었다. 그리고 「서설」에 “조선은 매우 착취적인 사회구조와 분열적인 지역주의에 병들고, 미신적이고 야만적인 가치관에 의존하며, 남녀 불평등이 심각하고, 과거 지향적인 역사관을 신봉하는 국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다블뤼(Daveluy, Marie Antoine Nicolas)의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Notes pour l’introduction a l’histoire de Corée)에 언급된 “조선 8도 사람들의 특질, 조선인들의 천박한 돈 소유욕과 낭비벽, 폭식 습관, 사랑이 없는 부부의 짐승 같은 성애” 등을 그대로 반복, 인용한 것이라 하였다.(이 책의 29쪽) 그런데 다블뤼의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에는 상부상조하는 조선인들의 정신에 감동하였고 서구인들의 근대적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낀다는 언급도 있다. 또한 그리피스(Griffith, William E.)는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 The Hermot Nation, 1882년 미국에서 출간)에서, 당쟁이란 정치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조선 정치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반역과 패륜이 난무하는 서구의 정치사에 비하면 조선의 당쟁은 나름의 도덕성과 경쟁의 법칙이 있다고 하였다.1)
선교사로서 선교를 목적으로 바라본 한국(인)은 선교사들의 기독교 문명/문화보다 우월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기독교 문명/문화라는 기준(잣대)으로 한국(인)을 바라보았고, 열등하다 인식하였으며, 바꾸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양 선교사들은 그들의 선교 대상인 한국(인)의 많은 장점들도 함께 보았고, 그 장점들을 서술하였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서술한 한국을 부정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편 저자는 “20세기 초반 한국학 연구세력이 프랑스 선교사에서 영미권 선교사-외교관들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선교사들보다 영미권 선교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물적인 선교 기반도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코리안 리포지터리』, 『코리아 리뷰』, 『트랜잭션』이 간행되던 시기, 한국 관련 글을 다수 수록한 『콩트 랑뒤』(Compte Rendu : 1841~),『파리외방전교회 아날』(Annal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Etrangères : 1898~1939), 『파리외방전교회 뷜탱』(Bulletin de la Société des Missions-Etrnagères : 1922~1961), 등이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또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카다르(Cadars, Joseph François)는 한국의 문화와 관습을 소개한「한국의 농경 축제」(1909), 「제주도 여행기」(1913) 등 수많은 글을 발표하였다.2)
1909년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회의 선교사 베버(Weber, Norbert)는 1911년 한국을 방문하였고, 그 내용을『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e der Morgenstille : 1915)로 간행하였다. 또한 1925년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금강산』(In den Diamantenbergen Koreas : 1927)을 간행하여 한국의 불교와 예술을 소개하였다. 1909년 한국에 파견된 베네딕도회 선교사 에카르트(Eckardt, Andreas)는 「조선의 언어, 글 그리고 인쇄기술의 발명」(1914), 「조선의 유교」(1914), 「조선의 불교」(1915), 「조선의 천도교」(1921), 「조선의 시」(1922) 등 수많은 한국 관련 논문과 저서들을 간행하였다.3) 1926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한 메리놀회의 선교사들도 동회(同會) 기관지 The Field Afar에 한국 관련 글을 다수 수록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자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근대한국학 연구도 재고가 요구된다.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인)의 한국에 관한 관심은 『조선정체』(朝鮮政體 : 一名 抄譯大典會通 : 間野遺秉, 1882), 『조선변보』(朝鮮變報 : 林吉藏, 1822), 『조선기문』(朝鮮紀聞 : 鈴木信仁 編, 1885), 『조선지』(朝鮮志 : 足立栗園, 1894) 등 한국 관련의 수많은 저술 출판으로 이어졌다. 서양인 선교사들의 한국학 연구도 참조하였지만, 일본(인)은 개항 이후 그들 나름으로 한국을 연구하였다. 그들의 시각으로 그들에게 소용되는 한국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을 연구하였고, 거기에 선교사들을 포함하여 서양인들의 식민지와 한국에 대한 연구방법과 결과물들을 적극 참조/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 관학(자)을 서양 선교사의 한국학 연구와 조선 지식인의 한국학 연구를 잇는 중간 매개자로만 서술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연구 자세이고, 그 결과는 아쉬움이 크다.
4. 한국근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는 “‘식민지 근대화’와 ‘식민지 착취’라는 양자택일적 도돌이표 논쟁을 멈추고, 과거–현재–미래를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연속적 발전 과정으로 가늠하려는 역사관을 해체해야 한다”고 단언한다.(이 책의 297쪽). 한국근대사와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온 매진하고 있는 그리고 매진해나갈 이들에게 얼마나 당혹스러운 단언인가? 일제의 한국 침략과 강점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많은 사료들이 존재한다. 실증사학이든 계보학이든 어떤 이론을 적용하든,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첫걸음은 관련 사료들의 수집, 그 사료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이해이다. 일제가 침략하고 강점하여 식민통치한 시기의 한국사를, 침략과 강점과 식민통치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서술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일부 사람들이 그 시대를 ‘근대화’라는 용어로 덧씌우고자 하는 것은, 학술적인 논쟁이 아니라 식민의 경험과 분단의 현실이 초래한 한국사의 비극이다. 그 비극은 한국독립(민족)운동사를 더욱 촘촘히 연구하여 결실을 이루고 한국근대사의 여러 측면을 정확하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인식할 때 사라질 것이고 극복될 것이다.
새삼 사관(史觀)을 생각한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근대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근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조선 후기와 한말의 역사, 개화기(계몽운동기)의 한국사, 대한제국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또한 1910년 8월 29일의 국치(국망)와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행해지던 시기의 한국사를, 영토와 민족이 분단된 해방 이후의 한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저자의 이 책은 한국독립운동사와 한국 근대의 천주교회사를 연구해 온 서평자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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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하, 창비, 2005, 200쪽.
2) 조현범, 「선교사와 오리엔탈리즘 : 일제 강점기 어느 천주교 선교사의 조선 스케치」, 『한국학』 9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3, 162~163쪽.
3) 조현범,「한말 일제하 천주교 선교사들의 문화선교활동과 조선연구 보고서」, 한국연구재단, 2002, 65~66쪽 ; 홍미숙,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와 성과」, 『한국학연구』 63,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21, 44~66쪽
[교회사 연구 제65집, 2024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윤선자(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0 2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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