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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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5) 시느도 교회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걷는 복음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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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6-01 ㅣ No.2280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5) 시느도 교회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걷는 복음화의 길

 

 

1. 작은 만남 속에서 시작되는 복음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레지오 단원이 오랫동안 냉담 중인 교우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그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준비한 말도 있었고, 권해야 할 내용도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그 교우를 만났을 때, 그분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하고 조용히 말을 건넸고, 상대방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자기 사정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그 만남에서 대단한 결심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곧바로 성당에 다시 나오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그 레지오 단원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무엇을 해낸 것은 없지만, 주님께서 먼저 그 자리에 와 계셨구나.”

 

어쩌면 복음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화는 언제나 거창한 말이나 눈에 띄는 성과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번의 방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마음, 외로운 이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 그런 작은 만남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조용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도 복음화의 기쁨을 맛보게 되지요.

 

2024년 10월 세계주교시노드는 폐막되었지만, 시노드의 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노드의 과정은 각 지역 교회의 삶 안에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사실 시노드의 여정이 여러 해 이어졌지만, 이를 피부로 체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시노드가 강조한 상호 경청이 정말 잘 이루어졌는지 선뜻 느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교회가 친교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참여를 통해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으며, 함께 받은 은총이 사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방향만큼은 분명합니다.

 

 

2. 시노드 교회와 복음화의 주체

 

시노드라는 흐름은 교회가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복음화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때 교회는 ‘포교’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포교는 신앙을 권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때로 일방향적 설득이나 외적 성과를 앞세우는 것처럼 들릴 위험도 있었습니다. 이후 더 넓은 의미에서 ‘선교’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선교는 교회가 하느님께 파견되어 세상 안에서 수행하는 사명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바로 ‘복음화’입니다. 복음화는 단지 누군가를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이들 스스로 먼저 복음에 맛 들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한 사람의 삶과 공동체, 사회와 문화 안에 스며들어 그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전 과정을 뜻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노드 교회의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화의 능동적 주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은 평신도들은 자신을 교회의 중심적 주체라기보다 돌봄을 받는 대상이나 사목의 수혜자로 여겨 온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복음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이미 그 사명 안에 부름받은 이들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평신도 역시 복음화의 주체입니다. 시노드 교회란 바로 이 사실을 다시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함께 듣고, 함께 식별하고, 함께 복음을 살아내는 교회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시노드 교회의 출발점은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바라보게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복음화가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복음화는 먼저 말하는 데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천사가 전한 말씀 앞에서 마리아께서는 두려움과 놀라움 속에서도 차분히 응답하셨고, 이 응답 안에서 이미 복음화의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3. 마리아와 함께 걷는 복음화의 길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말씀을 자신 안에만 간직한 채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루카 복음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뒤 ‘서둘러’ 엘리사벳에게 가셨다고 전합니다. 이 장면은 복음화의 본질을 아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을 모시고 다른 이에게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 안에서 기쁨이 일어나며 성령께서 활동하셨습니다. 복음화란 결국 예수님을 모신 이가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께서는 첫 번째로 복음을 들으신 분이실 뿐 아니라,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하신 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화는 인간의 성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성령의 뜻에 민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성령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마치 내 삶의 주도권을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 내면 안에서 현존하시면서도 자신을 비우시어 우리가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마리아의 삶은 바로 이러한 순명의 자유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수태고지에서, 엘리사벳 방문에서,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리고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실 때에도 마리아께서는 언제나 성령의 역사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이 점은 오늘 레지오 단원들의 삶에도 깊이 연결됩니다. 레지오 단원들 역시 시노드 교회 안에서 이 마리아의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시노드 교회는 구조 개혁 이전에, 먼저 우리의 삶이 함께 걷는 삶이 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고, 먼저 찾아가고, 함께 듣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식별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여정 안에서 복음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쁨이 됩니다. 시노드 교회란 바로 그 작은 만남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서 성령의 발걸음을 함께 알아차리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리아와 함께, 말씀을 먼저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모시고 서둘러 이웃에게 나아가며, 성령 안에서 복음화의 기쁨을 살아가는 참된 시노드 교회의 일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5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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