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
가톨릭 교리: 고귀한 인류의 품격 |
|---|
|
[가톨릭 교리] 고귀한 인류의 품격
얼마 전 우연히 김애란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작가님은 대답했습니다. “인간한테 있고 AI에게 없는 것은 ‘망설임’이에요.” 빠르고 즉각적인 것을 바라는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이 문장만 보면, 망설임이 마치 인간의 결함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뷰의 요지는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누군가의 고민이나 아픔 앞에서 인간은 바로 답을 내놓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망설임의 시간을 갖는데, 깊은 배려가 담겨 있는 이 투박한 침묵과 주저함이 상대에게 훨씬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최근 교황님이 발표하신 AI에 관한 회칙, <고귀한 인류>와 맥락이 맞닿아 있습니다. 현대 인류는 더 많이 소유하는 것, 연약함을 제거하는 것, 예측 불가능성을 없애는 것에서 삶의 충만함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칙은 이를 하나의 유혹이라고 선언하며 지나치게 과도한 성장은 오히려 하나의 빈곤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112–113항)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효율성과 거리가 멉니다. 사랑은 계산되지 않으며, 우정은 생산성을 따지지 않습니다. 용서는 손익을 분석한 결과가 아니며, 희망은 성공 가능성이 보장될 때만 품는 감정도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다리는 시간, 이웃의 고통 앞에서 함께 침묵하는 순간, 아픈 이를 돌보며 곁을 지키는 인내는 모두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행위들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사랑하며 초월을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고귀한 인간다움이란 결함을 제거하여 완벽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과 한계를 지닌 채 서로를 향해 나아갈 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그렇습니다. 저를 성장시킨 것은 성공보다 실패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했던 경험, 사목과 학업 안에서 부족함을 절감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저를 더 깊이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AI는 빠른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잠시 멈추곤 합니다. 이 망설임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고귀한 인류의 품격입니다.
회칙은 선언합니다. “사랑하고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얽혀 있을 때, 인간의 마음 안에는 인간다움의 가장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하는 영혼의 기적들이 일어난다. 모든 한계를 초월한다는 이름 아래 이러한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모험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120항)
[2026년 6월 21일(가해) 연중 제12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0 7 0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7285 |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59: 교회 교계와 수도자 신분, 교회헌장 제45항 |
2026-06-22 | 주호식 |
| 7284 |
교회의 언어: 밋바르와 ἔρημοϛ(에레모스) |
2026-06-22 | 주호식 |
| 7283 |
가톨릭 교리: 고귀한 인류의 품격 |
2026-06-22 | 주호식 |
| 7282 | [교리용어] ‘산상설교라는 잘못 번역된 용어의 출처, 유래 및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전 ... | 2026-06-20 | 소순태 |
| 7281 | [교리용어][전고(典故)_성경용어] 마태오 9,36에서 '가엾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 | 2026-06-20 | 소순태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